버스에 탔다. 버스는 한 번 더 멈췄다.
턱살이 두둑한 남자가 탔다.
남자는 노인보단 어려 보였고 젊은이보다는 늙어 보였다.
그의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는 타자마자
"아이, 기사양반. 사람이 그렇게 뛰어가는 데도 멀리서 세워주시나."
그때 버스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이마 주름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제가 안 세워도 되는 곳에서 타시려고 하니까 그렇죠. 세워드렸잖아요."
그도 나이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이마에 있는 주름이 도드라졌다.
턱살이 잡히고 뱃살도 두둑이 나온 남자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왜 안 세우냐고, 그니까 당신 말은 세워줬으니까 감사하라 이 말이야?"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버스 세울 자리가 아닌데 세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탔죠."
"너 몇 살 먹었어. 나보고 뭔데 당신이래. 몇 살이야. 너."
버스에는 이상한 기운이 흘렀고 이윽고 고성이 몇 차례 울렸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참, 조용히 합시다. 버스기사님 운전하시잖아요. 운전하는데 말 걸면 얼마나 위험한데요."
거대한 뱃살을 나이테로 두르고 있는 남자가
"너도 몇 살인데 나한테 난리야."
나는 생각했다.
한 평생 살아온 인간들의 대결.
서로의 나이테를 확인하고 싶은 짐승들의 웃기고도 슬픈 대결.
갑자기 실소가 터졌다.
나이가 드는 일은 자신의 자존심과 입지를 계속해서 확인받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이 둘의 기싸움이 마치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느껴져서
깔깔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