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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 Jul 28. 2017

달팽이처럼 산다는 것

feat) 동생

동생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봤다. 

달팽이 사진이었다. 


동생한테 외롭냐고 물었다. 

달팽이가 외로워 보였으니까. 


동생은 달팽이가 불쌍했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달팽이는 자기 몸을 밀고 나간다고 했다. 

온 힘으로 필사적으로 이동한다고 말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엎드려서 반동을 준다고 말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난 김수영이 생각났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_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발췌, 『김수영 전집 2 산문』

[출처] [민음사 리뷰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출판의 힘, 민음사) |작성자 설해목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간다. 이 말이 와 닿았다. 

동생이 한 말과 같은 맥락에 있는 지점


내가 한 일들의 실패가 생각이 났다. 

머리로만 했고, 심장으로만 했다. 

무수히 실패했고 깨졌다. 


온몸으로 하지 않아서, 

달팽이도 온몸으로 미는 데, 

온몸을 다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이윽고 그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말로는 사랑한다 했지만, 

결국엔 나 자신이 상처를 안 받기 위해 발버둥만 쳤다. 


결국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그 행위, 

머리만으로도 심장으로도 안 되는 그 행위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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