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커피숍에 앉아 사는 얘기를 하다가 내가 깨달은 것을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현재 출판 마케터가 되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내가 말하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가 문예창작학과를 들어가게 된 이유는, 세상과 대화하고 싶은 수단이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했던 시절, 나는 미니홈피에 일상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와 행복을 느꼈고 비로소 나는 글이라는 매개체로 내 세상을 그려내고 펼치고 싶었다.
나의 거대한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존감은 떨어졌고 사람, 돈, 잡념들이 나를 뒤집어놓고 흔들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귀찮아졌고 무엇보다 평가받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부정적 평가들이 따라다녔고 글을 왜 써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너무 크게 사로 잡혀 펜대를 놓아야겠다는 마음만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예술욕이 있어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자리잡아왔다.
그 예술은 자유로움에서 태어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와 무관심에 예술을 접었다.
무엇보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컸다.
나에게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예술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
엄마, 아빠에게도 기대지 못할 나이에서, 어중간한 나이로부터 벗어나 확실한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의 미래는 확실하지 않고 불안정해졌다.
2017년도 1월부터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처음에 들어갔던 커피숍은 거대한 프랜차이즈로, 밖에서 보기에는 대단히 아름다워보였다.
나에게 고급이고 허세인 이미지를 심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안은 기계부속품처럼 사람을 부리고 있었고, 거의 공장식 시스템이었다.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의 일. 끝나지 않는 일과 경쟁과 다툼.
기획자는 저 멀리 있는데 실행자들끼리 싸워댔다.
잘못되었다고 따져야 할 사람은 저 멀리 있는데도 을끼리만 싸워되는 꼴이었다.
4일만에 그만뒀다. 더 이상 미련도 희망도 없었다.
하지만 4일치 일한 돈이 나올까말까 걱정이 되었고 담당자한테 물어보니 돈은 나온다고 하였다.
돈을 받고 나니 미움이 싸그리 사라졌다.
이런 내가 싫어졌다.
돈 때문에 그깟 돈 때문에 좋다, 싫다 감정의 저울질을 느껴야 한다는 게,
거대한 자괴감이 느껴졌다.
나도 돈에 굴복하는, 속물적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말로는 돈보다 사람을 울부짖었지만 결국에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었다.
그냥 패배감이었다.
그 이후에 찾은 일도 같은 커피 일이었지만, 힘도 덜 들었지만, 감정적인 소비가 많이 들었고
감시받아야했고 무시받아야했다.
'감시'와 '무시'는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고 그 정도도 못견디면 돈은 못받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일로 옮겨갔다. 처음 커피숍을 일할 때 면접봤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조건 하에 프리랜서로 일해보라는 것이었다.
원청의 하청을 받아서 하는 업체였는데, 난 하청의 하청인 프리랜서였다.
무시와 욕받이의 산물이었고 감당해내야 했는데 그 안에서도 부속품처럼 느껴졌다.
어딜가서나 나는 부속품이었고 쉽게 교체되거나 갈아껴지는 존재였다.
고장나면 나의 쓸모가 없어지는 존재. 그리고 언제 갈아껴질지도 모르는 그런.
나에게 있어 존재란 소중한 의미였다.
쓸모보다 존재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성과를 내는 일보다 무엇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살아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했다.
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건 '돈'이었다.
돈에 의해서 좌우되는 삶이 싫었지만 내가 나가는 순간, 누군가를 만나려는 순간
그 순간 안에 돈이 들었다.
돈은 숨쉬는 그 자체였다.
엄마가 말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고.
돈은 곧 현실이었으며 꿈이었으며 부질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향해 뛰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부지기도 중요치 않은 것으로 싸웠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싸웠다.
나는 프리랜서 생활이 끝나갈 때쯤
경력 증명서를 떼어달라고 말했고, 상사인 그는 나에게
그건 경력이 될 수 없어. 청춘 낭비야."
난 그 때 이 나라에서의 희망은 없다는 어설픈 생각이 확신이 되었다.
아 낭비였구나, 내가 한 일 자체가.
그의 말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정규직이 되지도 못했다.
이미 자리가 차있었고 나를 채용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겉으로 괜찮은 척했다.
그러면 나아질 줄 알았다.
프리랜서 생활의 마지막 날, 원청의 대리는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떴다.
수고했다는 말도, 고생했다는 말도 없었다.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의 최선이었을 텐데.
내가 먼저 카톡을 보냈다.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꼭 잘 되길 바란다며,
그도 같은 뉘앙스로 대답했다.
그 때도 느낀 것이 희망은 없구나, 여긴.
정말 행복하지 않구나, 아무도.
사실 그건 나의 이야기다.
내가 희망이 없다고 느꼈고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 동안에 내가 했던 일들이 별로, 그닥, 중요치 않다고 느껴졌다.
의미부여를 하려해도 되지가 않았다.
똑같았다. 어디서나.
그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부터 프리랜서의 삶이 이어올 때까지 한결같아서 좋았다.
한결같아서 욕도 할 수 있었고, 똑같이 나쁠 수 있었다.
세상은 똑같이 나빴고 ㅈ같았다.
그게 돈이었고 현실이었다.
나는 새로 취직했다.
결국엔 돌고 돌아 책이었다.
책이라는 것을 홍보하고 마케팅업무하는 일로 구했다.
여기도 저번에 일한 곳들과 별반 차이는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그런 것들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냥 뭐 해본다.
의미를 두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또 낭비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고, 아무것도 안한 느낌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나이고 싶었다.
참으로 힘들었고 앞으로 힘들것 같다.
photo by Hwadonghwa
written by do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