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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 Feb 06. 2018

애초부터 희망이란 없었다.

희망이란 단어가 있을 줄 알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이 없다는 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닌가.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

희망이란 존재 자체는,


어제 삼성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삼성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역시 삼성은 법 위에 있었다.

법까지도 주무를 수 있는 힘이었다.

한국에서 거대 자본으로 대표되는 삼성은, 역시나 멋지게

그리고 깔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에서는 삼성에게 안 되는 건 없었다.

그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애당초 판결의 결과는 나와있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으면 그게 더 놀라웠을 게다.

괜찮다.

그 정도의 일은.


아무도 죽거나 다치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 왔으니까.


요즘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하다.

일하던 데에서 잘렸고, 그 잘린 데를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신고했다.

대표는 나를 해고하면서 정이 더 들기 전에 내보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정이 덜 들어서 신고했다.


후회는 없는데 너무 착잡하다. 마음이.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게,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싶은 데

왜 그조차도 힘든 건지 모르겠다.


또 일을 구해야 하는데, 마땅히 일하고 싶은 의지나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어디서나 다 똑같다는 생각만 든다.


휴.

하고 깊은 한숨만 나온다.


어제는 드로잉 클래스를 갔다.

거기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여백에도 형태는 있다는 것.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여백의 형태도 결정된다는 것.

난 여백이 그저 비워두면 그 빈 공간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백에도 형태가 있었다.


어떠한 형태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다.


지금 쉬고 있는 이 과정, 어떠한 형태로 만들 건지.

고민이다.

난 어떤 길로 흘러들어갈 것인가.

과연 길로 흘러들어갈 것인가.


왜 이렇게 희망이 없게 느껴지지.

신문을 봐도, 책을 봐도, tv를 봐도

모든 게 희망 없게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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