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단어가 있을 줄 알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이 없다는 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닌가.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
희망이란 존재 자체는,
어제 삼성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삼성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역시 삼성은 법 위에 있었다.
법까지도 주무를 수 있는 힘이었다.
한국에서 거대 자본으로 대표되는 삼성은, 역시나 멋지게
그리고 깔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에서는 삼성에게 안 되는 건 없었다.
그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애당초 판결의 결과는 나와있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으면 그게 더 놀라웠을 게다.
괜찮다.
그 정도의 일은.
아무도 죽거나 다치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 왔으니까.
요즘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하다.
일하던 데에서 잘렸고, 그 잘린 데를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신고했다.
대표는 나를 해고하면서 정이 더 들기 전에 내보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정이 덜 들어서 신고했다.
후회는 없는데 너무 착잡하다. 마음이.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게,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싶은 데
왜 그조차도 힘든 건지 모르겠다.
또 일을 구해야 하는데, 마땅히 일하고 싶은 의지나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어디서나 다 똑같다는 생각만 든다.
휴.
하고 깊은 한숨만 나온다.
어제는 드로잉 클래스를 갔다.
거기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여백에도 형태는 있다는 것.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여백의 형태도 결정된다는 것.
난 여백이 그저 비워두면 그 빈 공간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백에도 형태가 있었다.
어떠한 형태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다.
지금 쉬고 있는 이 과정, 어떠한 형태로 만들 건지.
고민이다.
난 어떤 길로 흘러들어갈 것인가.
과연 길로 흘러들어갈 것인가.
왜 이렇게 희망이 없게 느껴지지.
신문을 봐도, 책을 봐도, tv를 봐도
모든 게 희망 없게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