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다음 챕터를 고민하는 나와 당신
퇴근길 동네 식자재 마트
오늘 저녁에 먹을 야채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바구니 가득 담는다. 아... 우유랑 과자도 다 떨어졌는데... 집에가서 온라인으로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휴... 아무 일도 없는 저녁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공자님은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그 시절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마흔은 거의 다 산 어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26년의 마흔은 아직 중간도 못 온 나이다. 대한민국 평균 중간 나이에 겨우 도달했을 뿐이다.
경제적 호황기에 태어났다.
자식 교육에 혼신을 다한 부모님 아래에서, 욕망에 충실한 것이 옳다고 배웠다.
그 시절 성장하는 사회도 그 욕망을 실제로 이루어 주었다.
공부도 그랬고, 자격증도, 취업도, 결혼도.
‘열심히’는 대부분 통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 몸에 남아 있다.
그런데 마흔이 된 지금, 나는 매일 사소한 것들에 흔들린다.
차로 처음 지나가는 동네에서 처음 본 아파트 가격을 검색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잘나가는 친구의 미국 여행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저 집 아이는 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하고, 또 다른 집 아이는 영재교육원에 다닌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믿기 힘들 만큼 날씬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고르고 골랐다고 생각한 내 업이 점점 하찮게 느껴진다.
한때 사명감에 불타던 시절은 지나고, 월급날 통장에 꽂히는 돈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적어 보인다.
어딘가에는 더 멋지고, 더 많이 버는 일이 있을 것만 같다.
남의 떡이 유난히 커 보인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내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수행한다.
아이를 챙기고, 일을 마치고, 약속을 지키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가는 하루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아직 자라지 못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뿌리는 내렸는데, 키는 멈춘 것 같은 나무.
누군가의 한마디, 한 장의 사진, 한 번의 눈짓에도 그 나무는 하루 종일 흔들린다.
불혹이라 했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
하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이게 욕심인지, 성장에 대한 갈증인지, 단순한 비교인지...
다만 예전처럼 ‘열심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에 서 있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더 기회가 없기 전에.
다음 챕터를 넘겨야 할까.
아니면 사십 년 동안 노력과 운으로 쌓아 올린 이 안전한 성에 조금 더 머물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