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온 어반스케쳐 (1)
이른 시각부터 후끈한 공기가 느껴지는 아침
레지던스 조식당에서 부랴부랴 아침을 먹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좋아하는 파스타와 감자튀김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반쪽으로 잘린 패션 푸르츠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입가심을 합니다.
앱으로 호출한 택시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고 남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두 딸과 뽀뽀를 하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조식당에서 밥을 먹던 이탈리아계 오스트레일리아인인 4학년 레아와 얼마 전 이사 온 일본인 마사코가 식사를 마치고 가방을 메는 걸 보고 큰 아이가 먹던 빵을 내려놓습니다.
레지던스 로비로 내려가니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서 있습니다. 큰 아이는 마사코 겉으로 가 몸짓으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마사코는 큰 아이의 원맨쇼가 신기한 듯 웃습니다.
잠시 뒤, 코너를 돌아 달려오는 스쿨버스가 보입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둘째의 손을 잡고 큰 아이가 차를 타는 걸 바라봅니다. 차에 타자마자 최근에 친해졌다는 영국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느라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에게 계속 손을 흔듭니다. 셔틀버스가 멀리 사라지자 둘째와 달리기 시합을 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30분 뒤, 둘째까지 유치원 셔틀버스를 태우고 주말 바베큐를 예약하러 리셉션으로 갑니다. 예약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레지던스 직원이 다가와 쇼핑백 하나를 건넵니다. 오늘내일 중에 도착한다던 소포가 조금 일찍 도착한 모양입니다. 집에 오니 메이드 링이 어제저녁 식사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를 걷고 있습니다. 링에게 빨아야 할 운동화를 일러두고 작업 테이들 위에서 소포를 확인합니다.
두어 달 동안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작업을 하며 완성한 첫 드로잉 달력입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포장작업에 돌입해야겠습니다. 일주일 뒤면 아트 마켓이 있으니까요.
달력 포장을 하다가 멈추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외출을 합니다. 오늘 10시에 한인타운 근처에서 그림 수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지던스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서 앱으로 택시를 호출합니다. 가게를 열고 청소를 하고 있는 베트남계 프랑스인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입구 바로 옆에 걸려 있는 그림에 시선이 갑니다. 몇 달 전 주인이 부탁해서 그려준 제 작품입니다. 오고 가면서 늘 보이는 그림이지만 볼 때마다 반갑습니다.
택시가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살짝 큰 길가로 걸어갑니다. 모퉁이를 돌자 깜짝 놀랍니다. 제 그림이 10배쯤 확대되어 벽에 걸려 있었으니까요. 지나가며 늘 보던 그림이지만 이렇게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는 걸 보니 살짝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레스토랑 주인에게 언제 붙인 건지 물어봐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쌤~~~ 어서 오세요~'
깔끔하고 시원한 거실로 들어서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한국인 여자분 6명과 인사를 나눕니다.
지난번 아트 마켓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 DM으로 연락해 만든 스페셜 원데이 수업입니다.
학창 시절 이후론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인 없다는 분들을 위해 준비해 간 기본 재료들을 펼쳐놓습니다. 펜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채색 도구를 다루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하며 수업을 이끌어갑니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처럼 다 함께 호호 하하 웃으며 시끌벅적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간단한 귤 그림을 손은 부들부들 떨며 그리고, 완성품을 보고 스스로 감탄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오후 1시, 2시간가량의 즐거운 수업이 끝나고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작업을 하기 위해 막내 유치원 근처 카페로 들어서는데 테라스에 홀로 앉은 프랑스인 캐리와 눈이 마주칩니다. 자연스럽게 앞에 앉아 캐리의 딸 엘리스의 국제학교 입학에 대한 고민을 듣게 됩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영어 실력까지 향상할 수 있는 국제학교과 모국어 학습을 잘할 수 있는 프랑스 학교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캐리에게 나름의 생각과 장단점을 나눕니다. 전 세계 어디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은 마찬가지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대학원 온라인 수업이 있다는 캐리를 보내고 버섯 파니니와 아이스 라테를 먹으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좋아하는 책 리뷰 팟 캐스크를 들으며 태블릿과 스케치북을 꺼내 하노이의 풍경을 그립니다. 아트 마켓에 달력과 함께 판매하려고 시작한 그림인데... 며칠 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덴마크인 마리아가 밑그림만 보고 선주문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오후 3시.
서둘러 도구를 정리하고 유치원으로 향합니다. 오늘 하원 후에 독일인 친구 에릭네에서 아이들과 플레이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니 얼른 가야겠습니다. 가방을 들쳐 매고 수많은 오토바이가 슝슝 지나가는 거리를 힘차게 뛰어갑니다.
'지금 우리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긴장 속에 밤 비행기를 탄 탓인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가 안내 방송에 화들짝 놀라 깨었습니다. 앞에는 자느라 아이들이 먹지 못한 기내식이 놓여 있고, 옆에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든 막내가 두 좌석을 가로질러 누워있습니다. 통로 너머 남편과 첫째도 머리를 맞대고 자고 있습니다.
달콤한 꿈을 꾸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