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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Apr 27. 2023

대표와 먹은 설렁탕은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대형마트 부점장이다. 누구에게 부점장이라고 하면 큰 건물에 두 번째 높은 사람이라고 하니 큰 직책으로 안다. 높은 직책이지만 매장에서 다양한 업무를 한다. 매장 페인트 작업부터 월 손익 자료 분석하기까지 다한다. 한편으로 개잡부면서 고난도 업무까지 다해야 하는 고달픈 업무이다. 여기에 해결하기 까다로운 고객 컴플레인은 덤이다.


우리 매장이 2월부터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을 했다. 3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일정 챙기고 일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쳤었다. 그랜드 오픈을 이틀 남기고 매장 리뉴얼이 잘 진행됐는지 대표님께서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셨다. 깐깐하지 않고 질책 안 하는 분이지만 큰 회사 제일 높은 분이 온다는 것만으로 직원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쉬는 날이지만 오전부터 출근해 대표 동선 체크하고 보고할 자료도 확인했다. 전 직원이 자신이 맡고 있는 위치에서 상품 진열부터 청결 부분까지 혹시라도 지적받는 일이 없도록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방문 시간에 맞춰 대표님이 차에서 내리며 악수를 청했다. 힘 있게 꽉 잡아 주는 데 힘 있고 자신감이 손에서 느껴졌다. 순간 강한 악수는 대표 본인의 강한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주기 위한 의도일까 무의식적인 습관일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표님을 중심으로 여러 임원 및 팀장이 수행하며 매장을 이동했다. 매장별 질문을 하시며 점장이 답변을 드리고 나는 해당 내용을 수첩에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방문이 끝나면 방문 보고를 정리해서 관련 부서에 공유해야 하기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근데 대화 목소리가 작아 자세한 내용은 확인이 어려웠다. 이런 메모는 그 자리에서 즉시 메모하지 않으면 휘발되기에 순간 기록이 중요하다. 응대는 점장이 하지만 정리는 부점장이 하기에 이런 상황은 참 난감하다.


고객들도 높은 사람이 와서 매장을 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의전 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상황 파악이 된다. 최대한 고객 쇼핑에 불편을 주지 않고 수행하지만 눈에 잘 띌 수밖에 없고  고객들도 무리에 잘 접근하지는 않는다. 


근데 매장에서 흔치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남자 고객 한 분이 찾는 상품이 없다고 고함을 친 것이다. 

"와! 샤프란이 매장에 안 보이 노~ 한참을 찾아도 안 보이는데 높은 사람 왔다고 고객은 눈에도 안 보이나!"

얼른 뛰어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는데 고객한테서 약간의 술 냄새가 났다. 순간 술기운에 본인이 찾는 상품이 없고 높은 분을 모시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소리치는구나 판단했다.


"고객님 저희가 찾는 상품 안내드리겠습니다. 근데 말씀은 소리를 조금 낮춰 주십시오"

"와? 높은 사람한테는 잘 보이고 고객은 잘 눈에 뵈지도 않나? 나는 대통령 윤석열이 와도 안 무섭다"

"아닙니다. 저희는 고객님이 제일 무섭죠 찾으시는 상품은 여기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순간 발생한 황당한 일에 대표님은 크게 동요치 않으셨다. 상품 위치가 바뀌니 고객님들 상품 찾는데 어려움이 크신 것 같다. 상품 안내 사인물을 강화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표 방문 시 고객과의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크게 확대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장 투어 후 점심 식사를 점포 인근 해서 하시기에 전날 다양한 식당을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만두전골, 능이 삼계탕, 오리불고기, 중식요리집, 돼지국밥 등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며 최후 1시간 전 설렁탕 집을 예약했다. 설렁탕 집 사장님께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점심 식사 예정이니 테이블과 식사 준비 잘 해달라고 연신 부탁을 했다. 다행히 점심 식사 시간에 손님이 많은 집이 아니어서 예약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의전에 있어 교통수단이나 식사 예약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먹는 것만큼 원초적인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대표도 사람이기에 출장 와서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짜증 안 나고 기분 좋게 업무할 수 있다. 

대표 옆에 지역 임원이 앉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빈자리 옆에 내가 있었는데 대표가 옆에 와서 앉으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ㅇㅇ임원 자리라고 답변드리니 대표께서 ㅇㅇ임원은 자주 보는데 오늘은 부점장이 옆에 앉아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다. 부하직원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대표와의 식사는 참 부담스럽다. 


뜨거운 설렁탕을 먹는데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에 밑반찬이 부족한지 컵에 물은 비웠는지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식사하려 했지만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대표께서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설렁탕의 맛을 느낄 수 없이 기계적으로 씹어 삼켜 먹었다. 설렁탕 맛을 느끼는 감각이 나의 뇌로 전달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 나는 불편했다.


식사 후 직원들과 가벼운 대화 도중 주제가 자연스럽게 MBTI로 흘렀다. 본인들의 MBTI 성격유형은 이런데 나는 이런 부분은 용납할 수가 없다며 업무와 성격을 연결 지었다. 대표께서는 MBTI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다양한 분석과 성격 특성을 말씀하셨는데 알고 보니 예전 컨설팅업체에서 MBTI 분석 과정을 공부하고 강의를 했던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MBTI 성격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내가 직원으로서 MBTI와 관리자로서의 MBTI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근본 성격이 바뀌는 것이 아니어서 서로의 성격을 잘 알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께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의 성격을 맞춰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참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리더십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대표께서는 그러한 마인드를 갖고 계시기에 날고 긴다는 여러 인재들이 있는 본사에서 직원들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리딩을 하시리라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내기에 대표라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설렁탕을 먹었지만 재능 연결 디자이너 전문가로서 성장할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다. 사람들의 성격과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합한 업무와 사람을 연결해 주는 능력은 나에게 필수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사람이 중심이기 때문에 사람을 파악하는 분석 능력은 중요하다. 내 강점 리스트에 MBTI 분석 역량을 추가하고 공부를 해야겠다. 대표님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가신 분도 그냥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계발하고 전문성을 높여 퍼스널 브랜딩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내게 필요한 역량을 하나씩 쌓아 내 비즈니스의 대표가 되어 고객들의 특성에 맞춘 솔루션을 제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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