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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Nov 12. 2023

대형마트 21년 차 직장인의 퇴직준비

박수칠 때 떠나야 좋은 이별이다

나는 국내 TOP3 대형마트 중 한 곳에서 21년을 다니고 있다. 공무원도 아니고 한 직장에서 21년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중간에 한번 이직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곳이 내 머릿속의 전부인 세상이 되었다. 이곳에서 결혼하고 애들 낳고 키우며 21년의 세월을 보호받으며 살았다.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청춘을 모두 바친 곳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하지 못한 나의 소극적인 태도가 살짝 아쉽다. 


나는 유통학과를 나왔다. 처음에는 기계를 전공했으나 나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통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유통 공부를 하면 큰돈 버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유통을 선택한 이유다. 다행히 유통 과목은 재미있었고 나에게 잘 맞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을 하던 때는 대형마트가 국내에 도입되어 폭발적으로 확장하던 시기다. 국내 3사가 새로운 유통채널에 관심을 갖고 미래 먹거리로 엄청난 투자를 했다. 이때 전국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마트가 무섭게 오픈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유통 전공이 경쟁력이 되어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 당시 회사 배지를 달고 사람들한테 사기도 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그 회사에 대한 믿음과 유통 최고의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나는 그 속에서 최신 유통정보와 조직 시스템을 배우며 유통 전문인으로 성장했다. 되돌아보면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배우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회사에서 하고 싶던 강사의 꿈을 이루고 내 커리어에 한 줄 경력이 되어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한때 대형마트는 백화점보다 위상이 높은 유통 채널이었다. 막대한 매출로 해외로 진출하고 글로벌 유통회사로의 비전을 꿈꿨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간들은 지나고 대형마트는 온라인과 의무휴업 규제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지며 온라인에 많은 실적을 빼앗기며 폐점이라는 위기를 겪게 되었다. 나는 국내 대형마트가 태어나 성장하며 다시 내리막 길을 가는 과정을 한가운데서 지켜보았다. 나는 대형마트가 걸어온 길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유통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없으면 일이 굴러가지 않는다.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매출이 발생한다. 아무리 물류혁신과 디지털화로 업무 효율화를 꾀할 수 있지만 결국 현장에서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가장 큰 비용이다. 매출이 감소하면 생존을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 가장 손대기 쉬운 곳이 사람이다. 또한 절감 효과가 매우 크다. 반면에 사람이 줄어들면 일의 품질이 낮아진다. 그래서 작은 인원의 사람이 두 배, 세배 일해야 하는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나는 쉬지 않고 야근에 쉬는 날까지 나와 일하는 것이 미덕인 곳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더 이상 남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회사 이익을 위해 소모품처럼 쓰이긴 싫었다. 회사에서 워커홀릭은 대내외적으로 지양하는 것으로 홍보됐지만 여전히 모범사원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일부 리더는 이를 악용하여 고도의 심리전으로 사람을 압박하고 쥐어짜 성과를 내는 무능함을 보이기도 했다. 젊을 때는 강한 열정으로 일이 전부라 생각하고 했지만 이제는 하기 싫어졌다. 일은 주체적으로 경영하고 진행할 때 성과가 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강압적인 업무 지시와 압박은 회사와 직원에게 부작용을 일으킨다. 


마흔 나이에 나 역시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밤새워 술을 마셔도 다음날 거뜬히 일어나 일을 했다. 요즘은 알아서 자제한다. 내일 어떤 힘듦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기에 알아서 줄이는 것이다. 또한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남은 인생 목표를 세워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회사에 오래 다닌 만큼 이제 자리를 비워줘야 후배들이 올라올 수 있다. 생존을 위해 그들과 경쟁하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도 적당한 때 떠나는 것을 바라기에 손뼉 치며 서로가 기분 좋은 결별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다. 


대형마트는 다시 재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역시 인생 후반 재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생존을 위해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가 된 것이다. 나는 나다운 일을 찾아 사람들을 도우며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며 나에게 적용하며 실험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나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전문가의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 징검다리는 두 다리를 딛고 있으면 건널 수 없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다리를 떼야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떼지 못하고 있지만 용기 있게 한쪽 다리를 떼었을 때 나는 다른 삶으로의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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