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우주> 단편 애니메이션제작기 - 마무리하며

12화

by 최진욱

마무리하며,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마무리를 2년 후에 쓴다... 2년 뒤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짓는 게 좋을 것 같아 1년 전 브런치 글 서랍에 넣어두었던 글을 이어서 다시 써본다.


작품을 완성한 뒤 <인디스토리> 배급사의 단편영화 후반 제작지원 사업인 <인디꿈틀프로젝트>를 통해 DCP 제작과 컬러그레이딩 지원을 받았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배급까지 이어졌고, 첫 연락을 준 곳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었다. 이곳은 내 첫 단편 애니메이션 <선을 넘어>를 제작지원받고 상영까지 했던 영화제다. 그때의 제작지원받은 일이 지금까지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였다. 이번에 작품도 상영할 수 있게 되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자카르타 필름위크, 토론토 릴아시안영화제, 오스틴 영화제등 출품했던 영화제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중에서 오스틴 영화제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10월 말에 열리는 영화와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영화제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한 군데 정도는 직접 가보고 싶었기에 오스틴 영화제를 선택했다.


(1) 오스틴 영화제 (Austin Film Festival)

그 유명하다던 텍사스 브리스킷도 먹어보고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시니컬한 프랑스인 아내 친구도 만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내 작품 상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마침내 내 작품이 상영되기 시작할 때 기대보다는 창피한 감정이 먼저 올라와 숨고 싶었다. 부족한 나의 날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아마 내 머릿속 상상보다 못한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내가 상상한 것보다 나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 한 열 편 만들면 좀 나아지려나...(이건 여담인데 작품이 대구영상미디어 센터를 통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을 해주는 가치봄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런데 충격적 이게도 화면해설원고가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재밌었다. 글이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내가 만든 이야기니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 상상과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작품을 만들기 전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모든 작품 상영을 마친 후 Q&A 시간이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분들이 많았고 마침 그 시기 할리우드에서는 AI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던 터라 그런지 AI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당시 AI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고민해 본 적도 없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 대다 마이크를 넘겼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어딜 가나 AI얘기들이 넘쳐나서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D 애니메이션을 거의 혼자 뚝딱거리며 만들고 있는 나로서는 수많은 제작과정들 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들보단 꽤 긍정적인 면들이 많을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다루면 좋겠다.


다음 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콘퍼런스를 듣고 시간대가 맞는 장편 한 편을 골랐다. 그렇게 우연히 선택한 영화가 '아메리칸 픽션'이었다. 흑인 교수이자 작가인 주인공이 출판계를 조롱하려고 쓴 가짜 소설이 어쩌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였다. 출판계가 흑인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 즉 구조적 인종차별을 유쾌하게 풍자한 내용이었는데 너무 재밌게 봤다. 주인공이 원하지 않는데 일이 이상하게 잘 풀리는 설정은 어딘가 '극한직업'이나 '스몰 타임 크룩스'를 떠올리게 했는데 둘 다 내가 손꼽아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GV에서 “첫 장편 데뷔작이라 관객 반응이 걱정됐다”라고 털어놓던 그가 202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고 떡하니 나타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괜히 반갑고 신기했다.


영화제를 다녀와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극영화 중심의 영화제여서 애니메이션 상영작이 적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분들과 함께 어울려 작업 얘기 하며 놀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혼자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석 컴퓨터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사회성이 부족해지는데 다음번에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가서 한을 좀 풀고 싶다.



(2) 시그라프 아시아(SIGGRAPH Asia 2023)

시그라프 아시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그래픽 학회인 시그라프(SIGGRAPH)의 아시아 버전이다. 이 학회에서는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논문뿐 아니라 컴퓨터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페스티벌도 열린다.


이곳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놀랍게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특별상이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알고 보니 그게 2 등상이었다. 좀 놀라웠다. 내 작품은 내가 봐도 어딘가 좀 부족한 면들이 있어 상을 받으면 늘 특별상, 특별언급처럼 특별한? 상만 받았는데 이번엔 본상이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해 다른 수상작을 살펴보니 1등 상(Best in Show) 작품과 내 작품이 공교롭게도 실과 머리카락이라는 소재의 공통적인 면이 있었다. 또한 1등 상 작품은 SF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내 작품은 드라마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었다. 같은 소재로 다른 분위기의 내는 작품이라 함께 엮여서 상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추측일 뿐이지만, 이 얘기는 하는 이유는 영화제에 출품을 하다 보니 영화제에 공식 상영작이 되고 상을 받는 데는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그 해 연도 영화제의 주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운 적인 요소, 소위 '운빨'이 생각보다 아주 아주 많이 작용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복이라 하나보다... 결국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작품을 잘 만들고 많은 영화제에 출품해 보는 것이 최선인듯하다.




<머리카락 우주>는 사실 더 길고 복잡한 이야기다. 이를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설명되지 못한 부분이나 결말이 좀 단순해진 부분이 있다. 좀 더 준비해서 머리카락 우주를 무대로 한 판타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니 언젠간 나오겠지... 그렇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제작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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