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갈 수 없는, 꿈같은 시간들
힘들 것 같다.
2014년 3월 2일, 새로운 반에 쭈뼛쭈뼛 들어간다.
남들은 보통 더 일찍 하는 걸 고3이 돼서야 했다.
이공계열에서 인문계열로의 전과.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상에서 머뭇거렸고, 국어교사라는 확고한 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머리를 떨구고 말았다.
'일단 선택폭이 넓은 이공계열로 가자. 뭐,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교차지원도 있잖아?'
큰 오산이었다. 현실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나는 수학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국어는 답이 하나가 아니라서 어렵다.'고들 하던데, 난 수학이 답이 하나라서 어려웠다.
2013년 가을 쯤이었을까.
이공계열의 수학에 신물이 났던 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말도 없이 홀로 빠져나와 운동장 등나무 아래의 차가운 돌덩이 의자에 앉았다. 오늘만큼은 누구에게도 구속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작은 일탈 때문에 누군가에게 꾸지람을 듣는다면 굉장히 불합리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봤다. '남들이 꾸는 꿈을 꾸는 것이 옳은가?' 번듯한 공대를 가서 한국 도로공사에 취업하는 것도 괜찮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스쳐지나 간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수준의 이공계열 수학에도 골머리를 앓는 나다. 대학교에 간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고1 때 나를 국어교사로 꼭 키우고 싶다고 하셨던 국어 선생님도 스쳐지나 간다. 난 그 선생님 덕분에 국어에 대한 잠재력을, 교사에 대한 매력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인문계열 3학년으로 진학하는 절차를 밟았다.
다시 2014년 3월.
고2 겨울방학 때 사회탐구를 정리하고 온다던 내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우스웠다 내 자신이. 그 정도도 못할 거였던 걸까? 서로 낯설게 대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친구들, 이공계열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하찮은 향수병(?)따위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다행히도 사회탐구 수업은 첫 단원부터 꿰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구나. 이 시간들이 아니라면 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겠구나 싶다.
끝없이 수능특강을 들춰보다 어느새 책상에 놓여있는 수능완성을 들춰보고. N제를 풀고 여러 문제들을 익히고. 평가원 모의고사를 풀어대고. 그렇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거치고 사회탐구 중 1과목 1등을 했다. 하지만 국어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금껏 1등급을 받아왔지만 3등급으로 떨
어져 버렸다.
안타까워할 겨를 없이 자기소개서 작성,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가장 힘든 건, 이 대학교에 붙을 거란 보증수표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 그 와중에도 붙을 거란 희망만 가지고 수능 공부와 자기소개서 작성, 그리고 면접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는 거.
자기소개서만 2달을 썼다. 넌덜머리가 난다. 완벽하진 않지만 친구들 자소서를 봐주며 첨삭도 해준다. 재미있다. 힘든 입시 과정에서 크게 도움되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교과목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자기소개서 첨삭도 그렇고.
성큼 다가온 2014년 11월 12일.
집에 돌아와 내 최저등급에 필요한 과목인 국어와 사회탐구를 총정리한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있기로 한다. 휴대폰 데이터는 저녁이 돼서야 켜졌다. SNS에 잔뜩 올라오는 친구들의 불안감이 서로를 응원하는 글에 투영된다. 물론 나도 그 불안감에 동참하기로 한다.
2014년 11월 13일.
왔구나. 10대의 마지막 시험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마음과 분위기다. 도살장 끌려가는 분위기일 줄 알았다. 시험장이 다른 학교라 적응이 안 되는 것 빼곤 괜찮다.
어느새 시험이 끝나 있다.
재수를 운운하는 친구, 해탈한 친구, 혼이 나간 친구들 사이에 있다.
1교시 국어시간 때 너무 긴장해서인가. 정신없이 문제를 풀었는데, 과학 비문학 2 문제를 찍었다. 자신이 없다. 다시 다가오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오랜만에 친구들과 PC방에 가기로 한다.
...
2015.03.02.
OO대학교, 국어교육과 15학번 OOO. 새로운 만남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