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답답한 교통복을 편한 생활복으로 갈아입고,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페이스북 메시지와 지구본에 붙어있는 빨간색 숫자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한 명 한 명에게 생존신고를 하고 있던 찰나였을 것이다.
너와 알게된 지 별로 되지 않았다. 너를 봄으로써 느낄 수 있었다. 우정의 깊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사귀었느냐 따위의 질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행복했다. 고등학교 반 단합대회라고 펜션을 빌려 밤새도록 술파티를 벌일 때도,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날리러 3.1m 깊이의 도랑물에 몸을 던질 때도, 큰맘먹고 입대 전에 놀러나 가자고 해서 간 제주도도 잊지 못할거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너보다 나는 주말에도 민족대명절에도 늘 피시방가자고 초췌한 모습으로 만났던 네가 참 잊혀지지 않을 거 같아서 걱정이다. 대학다니다 힘들어서 니 자취방 찾아갔을 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니 자취방 앞 피시방으로 찾아갔을 때 담담하게 '롤 하자.'고 했던 너를 말이다.
지금 안 보면 죽을 것처럼 호들갑떨고 막상 만나면 하루종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게임만 한 이유가 이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경 공짜로 맞춰주기로 해놓고 아까워서 도망간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얼굴도 더럽게 비싸서 입대하고 한 번도 안비춰주더니 계속 비싼척하려고 하는건가 싶기도 하다. 뭐가 그리 급했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널 잊지 못할거야. 거기선 키도 더 크고 머릿결도 적당히 반곱슬하고 김세정닮은 여자친구 사귀렴.
이 짤막한 글이 네게 보이기를 바라며,
조심히 가 병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