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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우 Mar 15. 2017

나 찾기

내 편 찾기

  우연히 메일정리를 하다 보관함에 놓여있던 네가 보냈던 메일을 보았다. 2014년 추석을 너와 함께 보내고 있었구나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찍어쓴 네 자소서를 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해 입시는 정말 잔인했구나. 원서접수 마감을 1~2주 남긴 수험생들이 민족대명절을 어떻게 보냈을 지 생각도 안해봤을 거다. 그래도 또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땐 뭐가 그리도 치열했고, 뭐가 그리도 불안했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둘 다 꿈꾸던 대학은 떨어졌는데.

  우리의 첫 만남은 특별했다. 그 때의 나는 모 입시 카페에서 여느 수험생들과 다름없이 불안을 나누고 있었다. 내신 성적과 간단한 스펙을 적어 올린 글에 뜻밖의 댓글이 달렸고, 그게 우정의 디딤돌이 됐다. 내신 성적도 소수점까지 똑같았고 학생회장이라는 스펙 또한 같았다. 지망 학과는 달랐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린 내겐 너의 댓글은 천금과도 같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입시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너와 내가 비슷한 구석이 예상 외로 많았다는 점과 비슷하다 못해 똑같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은 후 우리는 서로를 '운명'이라 여겼다.

  네 똥차 이야기, 내 똥차 이야기 등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단언컨대 난 우정과 조력자 그 이상으로 널 생각해 본 적도, 그리고 대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인간관계에 있어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렇게 장황하게 글이라도 써서 네 등을 돌리려 애써보려 하고 있다.

  이제 와서 고백하는 건데, 사실 나는 경희대에 원서 접수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희대에는 아쉽게도 사범대학이 없다. 사실 그것보다 그곳에 가서 좋은 성적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아 도망친 거라고 보면 된다. 같은 대학 같은 전형으로 써서 떨어진 척 하며 아쉬움을 나눠 미안하다. 대신 나 말고 내 친구한테 말해줬더니 경영학과 써서 떨어져 재수했다.

  인터넷 상에서 만난 것 치고 훌륭한 관계까지 발전했었다. 공모전 파트너. 번듯한 기업에서 후원해주는 멋진 프로젝트 공모전에 지원해 나름대로의 팀을 꾸려 촌놈 서울 구경도 시켜준 게 너였다. 네가 시작하자는 말 안했으면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 프로젝트 관련 파일 아직도 노트북에 남아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교보문고를 보면 아직도 그 때 그 날이 생각난다. 한 명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생각만큼 쉬운 공모전이 아니었음을 느끼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애써 웃어보이던 그 때 분위기를. 그 때 만나자마자 정수리부터 때려서 미안하다. 반가웠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어떻게 타는지 몰라서 한 번 타는데 5천원 썼던 거 말해 줬었지 아마?

  사실 예전 우리 사이에 이런 오글거리는 ~다 말투는 필요 없는데. 아직까지는 네 생각이 어떨지도 모르고 하니 경솔한 행동 하지 않으려 한다. 네 입장에서는 내가 이걸 쓰는 자체가 경솔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마음이 되게 시릴 것 같긴 하다.

  그 어떤 상황에 놓인 그 어떤 사람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속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수 있으니까. 특히 그게 너라서 굳게 믿고 싶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네가 이렇게 갑작스레 등을 돌릴 이유는 내 입장에서는 헤아리기 힘들고, 쥐어짜내봐야 하나 뿐이 안 나오는데 그건 네 연인의 오해이고 착각일 뿐이니 걱정말라고 전하고 싶다.


  요새 나는 나를 찾는 데 열중하고 있다. 내가 진정 나인가, 내 주변 사람들은 진정 내 주변 사람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그만큼 군생활이 편해져서 잡생각이 늘었다는 거다. 입대할 때 작은 수첩에 적어간 네 전화번호는 아직도 내 생활관 캐비넷에 있지만 한 번도 걸어본 적은 없다. 소중했고 편했고 재밌었던 우리였는데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바꿀 것도 못 바꾼다는 깨달음에 짤막하게나마 써봤다. 밉게 보지만 말고, 네가 아니라면 아니구나 하고 알아서 물러갈 거다. 그 때 넌 그냥 '내가 인간미가 넘쳐나서 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네 잘남에 감탄하고 말았으면 한다. 이만 줄인다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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