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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우 Oct 21. 2016

너에게 씀

OO대학교 대나무숲처럼 수려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얼마 전 필요없어졌다는 아이패드를 니한테서 샀다.

태블릿PC를 들고 카페에 앉아 브런치 같은 곳에 글이나 끄적이고 있으면 누군가의 눈엔 할 일이 되게 없나보다 싶을지 몰라도 내게 있어 그건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군복무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랜 날이 남았지만 군대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너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건방져보이지만 난 사람을 고를 때 엄청 계산적인 편이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해줘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편이고, 내 틀에 대보았을 때 맞지 않으면 과감히 내쳐버린다. 물론 그렇다고 이기적인 성격은 또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특히 친구관계에서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사랑받는다는 아빠의 말을 따르는 편이다.

나는 너를 알게 된 지는 4년, 그리고 친하게 지낸지는 겨우 2년이 넘었다. 첫 인상은 늘 팔토시를 하고 다니는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고1때 네 친척인 내 친구와 함께 '인벤'이라는 사이트에서 진행했던 '롤 챔피언 일러스트' 이벤트를 위해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땐 친하지도 않았는데 니한테 가서 부탁하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어색해 죽겠을 것을 예상하고도 쭈뼛쭈뼛 갔던 것 같다. 그 때 넌 알겠다고 했지만 그림은 안 그렸던 것 같다. (^^)

내가 생각하는 내 장점, 그리고 내 자신을 가장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진국'이다. 왜 있잖아. 저 사람은 참 진국이다 하는 말.

그런 의미에서 너는 참 진국이다.

너만큼 속이 깊고 배려할 줄 아는 친구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빡치는 일이 있어도 잠깐이지 넌 금세 풀린 채 웃음으로 화답한다. 고3 때 문과로 전과해서 쉬는시간에 엎드려만 있던 내게 먼저 찾아와 주는 것도 너였다. 그리고 교복소매를 끌어당기며 매점가서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했던 것도 너였다. 지루하고 힘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도 너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 털어 놓을 수 있었고 나보다 더 감정이입해서 맞장구 쳐준 것도 너였다. 학교 축제 구경하러 간 날 밤, 쌀쌀한 날씨에 내 겉옷을 벗게 만든 것도 너였다. 확실한 건 내가 이런 오글거리는 글을 쓰게 하는 건 다 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갑자기 니 칭찬 늘어놔서 당황할 수도 있겠다. 근데 뭐 다른 뜻은 없고 참 좋은 사람이라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하지만 너에 대해 늘 365일 저런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오판은 하지 않길 바란다. 그건 아니다. 가끔 전화했는데 안받으면 빡친다. 그리고 진심어린 내 조언을 듣지 않을 때도 빡친다.

가끔 남의 조언대로 움직여주라. 넌 이미 답을 정해놓고 남의 의견을 듣고 참조만 할 뿐 결국 판단은 네가 정해놓은 답대로 한다. 웃기는 심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나처럼 상처받고 오래도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너같은 진국은 진국인 사람을 만나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난 그게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소중하다 여기는 것과 과한 간섭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미 그 불문율을 어기고 있는 듯 하지만 그게 내 복잡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카페에서 유자차나 카페모카 마시고 있으면 너 같은 진국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려나? 이 아이패드가 그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글을 마치련다. 니가 이 글을 볼 지도, 안 볼 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고마운 일등여사친그냥OO야 너나 나나 늘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가을의 옷자락을 잡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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