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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우 Jun 25. 2023

어제의 나는 죽었고, 오늘 다시 태어났다.

2023년 신규임용(후보)자 기본교육

  6월 12일부터 6월 23일까지, 총 10일 동안 신규 공무원 교육 연수를 듣고 왔다. 여러 가지로 별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평생 이 직업으로 살 거라면, 아마도 퇴직까지 함께할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오래도록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두근두근 첫날 연수원 가는 길

  숙소 안 잡고 집에서 통근하려다가, 급하게 일요일에 숙소를 잡았었다. 연수원까지 가기 편할 것 같아서 광주역 쪽으로 잡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유스퀘어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나중에는 숙소를 옮겼다. 아무튼 첫날 지각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일찍 출발했더니 시간이 아주 널널했다. 막히는 차를 보며, 광주에서 통근하면 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첫날엔 개인정보보호, 교육정책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 크게 와닿는 내용은 없었고, 개인정보보호는 예전에 출장 가서 들었던 교육이랑 내용과 PPT가 똑같아서 대충 들었다. 연수원 밥이 되게 맛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다들 반응들이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퇴근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살수차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비를 때리고, 앞도 잘 안 보였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숙소까지 갔다. 다행히 비는 빨리 그쳤고, 이날 정주와 만나서 밥을 먹고 아주커 치킨도 먹었다.


  연수원에서 준 책을 훑어보다가 나쁜 말투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

  셋째 날, 교육공무직 관련 수업이 있었다. 노무사 분께서 직접 수업을 해 주셨는데, 내용이 너무 알찼다. 우리 학교는 공무직 선생님들이 적기도 하고, 내가 직접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서 그나마 업무 강도가 약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고 느끼는 업무라서 더 그랬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질문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나도 평소 헷갈렸던 부분을 물어보러 갔다. 앞에 4명 정도가 물어보고 있어서, 멍하니 창문을 보다가 문득 앞에 있는 선생님께서 뭔가 열심히 계산 중인 걸 봤다. 대충 보니까 연차 일수 계산하는 것 같았는데, 예전에 교육 갔을 때 경력이 있는 분들도 연차 일수 계산을 어려워했던 게 기억이 나서 말을 걸었다.


나: 선생님, 혹시 근무지가 어디신가요?

  - 상대 선생님: 저 OO에서 근무해요. 선생님은요?

나: 아 .. 저는 OO에서 근무해요. 발령은 언제 나셨어요?

  - 상대 선생님: 4월에 났어요. 선생님은 .. ?


  뭐 이런 대화였던 것 같은데, 몇 마디 오가다가 그 선생님 차례가 와서 질문을 해서 대화는 끝났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궁금했던 걸 노무사 분께 물어봤고,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엄청 중요한 건 아닌데, 살면서 8대 전문직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또 언제 생길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물어보러 간 것도 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아까 만난 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그분께서는 일행이 있었는데, 밥을 먹다가 그분이 그분 일행에게 말했다.


그 선생님: 오빠, 거문도 어딨는지 알아?

  - 그 선생님 일행: 거문도?

그 선생님: 이 선생님이 거문도에서 근무한대.


  그렇게 대화가 트이고, 그날 함께 연수원 근처 카페에 가서 차도 얻어 마셨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날부터 숙소를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후일담이 재밌는데, 그날 나를 본인들의 숙소로 섭외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설계를 한 거라고 한다. 밥을 먹으면서 일부러 거문도를 언급한 것도, 밥 먹고 나와서 물까치를 언급한 것도 치밀한 계획에서 나온 거라고.


그 선생님 일행: (다른 선생님에게) 물까치 조심하세요.

  - 나: 어, 저 오늘 아침에 물까치한테 습격당했어요.

그 선생님 일행: 아, 진짜요?


  연수원 근처에 물까치가 많았는데, 산란기라 예민해서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조심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설마 그러겠냐고 생각했는데, 그날 아침에 누가 뒤통수를 치고 가서 보니까 물까치였던 것이다.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일부러 밥 먹고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물까치 얘기를 함으로써 내가 또 물까치 얘기를 하게 유도한 거라고 한다. 솔직히 말이 되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이 사람들과 같은 숙소에 각자 방을 잡고,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약간은 급하게 결성된 멤버였기 때문에, 약간은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편했다.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사범대학 출신이어서 마음도 더 잘 통했다. 나를 보고는 체육이냐고 묻고, 그들에게는 물리, 생물이라고 물으며 서로에게 실수를 남발했던 첫날이었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
완성된 내 도자기(접시임)

  도자기 체험도 했다. 도예가 분께서 시범을 보일 때는 너무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 보니까 엉망진창이었다. 사실 미술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잘 만들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못 만들지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긴 했다. 둥근 접시를 원했는데, 찌그러진 모양의 접시가 되고 말았다. 굽다가 깨지는 실패작은 도예가 선생님께서 직접 구워서 보내주신다고 한다. 아마 나에게는 선생님께서 만든 명품 도자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오히려 좋아.


따스한 마음

  이 날, 연수가 끝나고 유독 배가 엄청 고팠었다. 마침 분임장 형이 떡을 준 게 있어서, 차 안에서 떡을 맛있게 먹었다. 분임장 형은 점심시간마다 나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먼저 다가와 주면서, 하루가 다르게 점점 친해졌다. 비교적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육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에 볼 때는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 또한 그 형을 닮고 싶어질 정도로 ‘태도’에 대해 많이 배웠다. 연수 기간 내내 그 형이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거나,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긍정적이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마지막 전체 회식 때, 장소를 섭외하고 테이블 자리를 어떻게 배치해야 모두들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러다가 정작 회식 당일날 본인은 스트레스성 몸살 기운으로 1시간 만에 숙소에 들어간 사람. 어쩜 그렇게 선할 수 있는지, 그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난다.


숙소 옮기기 전, 혼자 먹은 저녁

  위에서 언급한 사범대 출신 두 사람과, 분임장 형과 같은 숙소를 쓰기 전에 혼자 썼던 숙소에서 혼자 해결했던 저녁이다. 도시락을 배달시키면서, 나도 친해진 사람과 저녁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넷플릭스를 보며 나름 알차게 보낸 것 같지만, 그래도 아쉬운 시간들이었다.


웃긴 간판

  옮긴 숙소 바로 앞에 먹자골목 겸 도로가 있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재밌는 간판 .. 자세히 보면 하얀색 매직으로 직접 쓴 손글씨도 있다.


과오납반환 .. ? 어디서 들어본 용어인데 ..

  처음으로 멀티미디어실에서 ‘실습’ 수업을 했던 날. 대부분의 수업 내용들이 행정실에서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하는 업무들이라, 나는 쉬웠지만 아직 발령 대기 중인 분들은 업무 포털 인터페이스도 익숙지 않은 데다가 용어도 생소해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옆에 앉은 분을 성심껏 도와드렸다. 알고 보니 동향 사람이라 반가웠다. 쉬는 시간에 간식도 챙겨 주셨다.

  그런데 수업 중 ‘과오납반환’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어디서 본 듯한 용어인데 .. 하다가 깜빡하고 있었던 업무가 생각나서 그 자리에서 연습용 업무 포털을 끄고, 진짜 업무 포털에 들어가서 내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자랑스러운 오진우 조

  직장에서 스트레스 관리와 관련된 수업이었다. 그런데 이 날 지각을 하는 바람에 늦게 들어갔더니, 모둠에서 조 이름과 조장을 이미 정한 상태였다. 급하게 수업에 가는 길에 짝꿍이 ‘진우야, 어디야. 빨리 와. 너 조장이야.’라고 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들어갔던 것 같다.

  수업 내용은 다채로웠다. ‘스마트폰 중독 자가 진단’부터 해서 ‘자기만의 소확행 적어 보기’ 등등. 위에 있는 사진이 우리 모둠이 정한 ‘소확행’이다. 옆에 하트 등의 표시는 다른 모둠과 돌려 읽으면서 각자 마음에 드는 것들에 표시를 한 거다. 별 거 없었던 것 같은데, 막상 끝나고 나니 상당히 힐링이 된 듯한 기분이라서 좋았다.


숙소 앞 거리

  이곳이 바로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앞에 있는 거리이다. 오래도록 새기고 싶어서 사진으로 남겼다.


분임장 형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분임장 형이다.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깊은 얘기를 하게 되는 사람. 그래도 될 것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가끔 나오는 어른의 바이브를 볼 때, ‘아, 나보다 훨씬 형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Hotel The Araboda

  연수원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다. 숙소 이름을 따서 ‘팸’ 이름도 정했다. 교육공무직 수업에서 우연히 앞에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숙소를 옮기고, 그 덕분에 카풀까지 하게 되어 출퇴근을 함께할 수 있었던, 그래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계단 아래쪽에 있는 두 사람은 같은 학교, 학과 선후배로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서 우리 4명이 빠르게 친해지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위쪽에 잔뜩 째를 낸 형이 분임장 형이다. ENFP라서 이 형이 없었더라면 살짝 과묵한 모임이 될 뻔했는데, 사운드가 빌 때마다 형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꽉꽉 채워줘서 좋았다. 이들 덕에 연수가 끝나고도 여운이 짙었다.


좋아하는 형님들과 함께

  맨 왼쪽은 분임장 형이고, 가운데는 내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선생님이다(아직 형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고 있다). 말씀하시는 것이 굉장히 지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화법을 구사하시는 분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다른 형들에게는 먼저 ‘말 편하게 하세요.’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선생님께는 감히 그런 말을 못 꺼낼 정도로 나를 굉장히 존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셔서, 매일 웨이트 1시간씩을 하고 있었고, 이전 직장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셔서 유산소 운동까지 매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어려 보였다. 그리고 본인의 짝꿍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의 기준에서) 말실수를 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10분 정도 후에 짝꿍 분에게 ‘선생님, 제가 아까 ~라고만 해서 기분 나쁘셨을 것 같아서 사과드려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셨다. 짝꿍 분께서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훈훈한 광경이었다. 자신이 한 말의 무게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주어진 환경을 거부하기보다는 빠르게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선생님과도 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서 사진을 남겼다. (혼자 하는 하트는 일방적(?)인 나의 마음이다.)


2분임!

  우리 분임 단체 사진이다. 카페도 두 번이나 가고, 분임 토의도 자주 했는데 막~ 친해진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장 많은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이라, 언제 어디선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2명 빼고 내향형이라서,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훨씬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날, 점심시간에 분임 사람들과 다 같이 카페에 가서 한 대화가 생각이 난다.

분임장 형: 그래도, 우리 첫날보다는 훨씬 친해진 거 같지 않아?

   - 나: (농담 조로) 근데 막~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는 것 같기도 해! (웃음)


  그래도, 같은 분임이라서 또 인상이 짙었던 사람들.


출처: Hotel The Araboda 단톡

  연수 기간 중에, 다른 분임의 어떤 분께서 발표한 내용이 매우 인상 깊었다. ‘MZ세대와 X세대 간의 갈등 해결 방안’에 대한 발표였는데, 발표를 정말 매끄럽게 잘하셔서 놀랐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이었는데, 기업의 중역 정도가 발표를 한다면 저 정도의 여유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PPT 마지막 슬라이드에 본인의 20개월 된 아들 사진을 띄웠다. 옛날 학교를 테마로 한 관광지에 놀러 간 듯 보이는, 아이가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진 위에는 ‘미리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웬 감사? 게다가 미리 감사한다니?


발표자 분(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약간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건 제가 꼭 넣고 싶어서 넣은 사진인데요. 20개월 된 제 아들입니다. (교육생들의 귀엽다는 환호성) 저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즉시 애틋한 감정이나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밖에서 일할 때, 힘들 때 사진을 꺼내 보거나 하면 너무 보고 싶고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애틋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전 수업에서 ‘내게 24시간이 남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쓸 때에도 아들 생각이 나서 울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제 앞으로 근무하시면서 전남 교육 행정 전반을 책임지실 분들이잖아요? 저희 아들도 곧 전남교육이라는 텃밭에서 자랄 거고요.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에 제 아들이 무사히 그 텃밭에서 자랄 거니까, 미리 감사한다는 말씀 전해드리면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학교 수업 때 경험했던 ‘좋은 발표’란, 미리 써 온 대본을 보기 위해 고개를 처박고 청중과의 소통은 전혀 하지 않는 발표가 아니라, 완벽하게 대본을 숙지한 채로 더듬지 않고 조리 있게 PPT에 나온 내용을 청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발표였다. 사실 발표자가 대본만 잘 숙지하고 있어도 ‘준비 잘했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발표만 봐 온 나로서는 선생님의 발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1로 대화하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달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1:다수의 환경에서 자신의 진심을 모든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발표자의 역량과 진심의 진정성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갖추어진 발표는 태어나서 처음 봤던 터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나도 모르게 발표에 빠져 들었고,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솔직히 조금 울었다. 다른 교육생들도 감탄을 보냈고, 우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수료식이 끝나고, 그분을 찾아서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진심이 느껴지는 발표는 살면서 처음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랄게요.’


여명

  내게는 다른 꿈이 있어서, 현재 상황에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날마다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내세우며 그 꿈을 위한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부끄러움에 대한 참회의 의미인지, 늘 가방에 읽지도 않을 전공 서적이나 교육학 서적을 무겁게 넣고 다녔다. 그런 이도저도 아닌 태도로,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업무를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서 처음 입직했을 때보다 건강이 훨씬 안 좋아졌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었다.

  그러다가 신규자 교육을 가게 된 것이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었지만, 처음에 갈 때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나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이 직업을 계속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친한 동기들을 만들어봤자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2주 간의 짧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환경 속에 놓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지금 하는 일도 꽤 괜찮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입직 4개월 만에 처음 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 생각이 언제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곳에 전공 서적이 놓여 있다. 현재로서는 계속해서 꿈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이거 아니어도 된다.’라는 뉘앙스의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다행이다. 결국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비웃어도 좋다. 나는 그 합리화라는 걸 못해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갈팡질팡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기대치가 낮았지만, 엄청난 것을 얻어 온 이번 신규자 교육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수업 시간에 코를 골며 존 것 덕분에 어색했던 짝꿍과 친해진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일들은 어쩌면 굉장히 뜬금없고 단순하게 풀릴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내게 주어진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보려고 한다.


  내게 이런 소중한 깨달음을 준, 이번 교육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늘 그랬듯, 나와 마주친 모든 이들의 모든 길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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