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KTX매거진] 배달의 민족

by 우주

요샌 커피 석 잔도 배달해 먹는다. 옛날엔 어땠는지, 어떤 음식을 시켰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찾아봤다.


울릉도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 철가방을 든 사내가 크게 외친다. “자장면 시키신 분~!” 1997년에 방영한 한 통신사 광고로 어디서든 전화 연결이 수월하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어디로든 배달해 주는 중국요리 음식점의 위력도 보여 준다. 이때만 해도 배달 음식은 자장면, 피자, 치킨 정도였다. 지금은? 안 되는 게 없다.


앞선 광고를 요즘 상황으로 재구성한다면 전화가 아닌 앱으로 다양한 음식을 주문할 터. 2010년대 초반,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앱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 왔다. 어느 순간 로봇이나 드론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데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오토바이뿐 아니라 자전거 또는 두 발을 이용해 배달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다시 생겼다. 여기서 ‘다시’라는 건 오래전에 이미 그런 방식이 성행했다는 뜻이다.


1920~1930년대 발행한 대중 잡지 <별건곤> 1932년 2월호에는 한 기자의 냉면 배달부 일일 체험기가 실렸다. 당시 사람들은 한겨울 따뜻한 온돌방에서 냉면을 자주 배달해 먹었다. 기자는 겨울밤 11시경 손전등을 든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론 냉면 그릇이 담긴 무거운 목판을 들고 자전거를 탔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육수 절반 이상을 쏟고 만다. 베테랑 배달부는 한 번에 열 그릇도 거뜬히 운반하곤 했다. 지금과 달리 놋그릇이나 사기를 사용해 몇 배는 무거울 텐데도 묘기 부리듯 해냈다. 자전거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당연히 두 발을 이용했다.


그렇다면 음식을 배달해 먹는 문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이 남긴 일기 <이재난고>를 보면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무려 253년 전인 1768년 7월에 적은 것으로, 현재로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배달 관련 기록이다. 1800년대 초반에도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은 자신의 문집 <임하필기>에 여러 신하와 달구경을 하던 순조가 “궁궐 밖에서 냉면을 사 오게 했다”라고 남겼다. 이때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누군가 가게로 걸어가 주문했을 것이다. 1926년에 발표한 김랑운의 소설 <냉면>에는 “무얼 사 오나… 냉면이나 한 그릇 시키어 오랄까?” 하고서 동생을 심부름 보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1980년대 전후 전화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익숙한 수순이었다.


사람 다리, 자전거에 이어 과거의 남다른 운송 방식을 하나 더 소개한다. 1800년대엔 냉면뿐 아니라 ‘효종갱’이라는 해장국도 배달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갱촌이란 곳에서는 버섯, 해삼, 전복 등을 넣고 하루 종일 푹 끓인 국을 솜으로 싸맨 다음, 소달구지에 실어 서울 사대문으로 보냈다. 약 30킬로미터 거리, 늦은 밤 출발한 소달구지는 새벽 4시경에야 임무를 완수한다. 효종갱은 밤새 술을 마신 양반들의

속을 풀어 주는 별미였다. 들인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호사스러운 배달 음식이다.1925년에 간행한 <해동죽지>에서는 “광주 성내 사람들이 잘 끓인다. 새벽종이 울릴 무렵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하고 해장에 더없이 좋다”라며 조선 시대 양반들의 식문화를 짚고 넘어간다.


사실 배달의 민족이란 한민족, 백의민족이란 뜻인데 이젠 이런 의미도 추가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강변이든 공원이든 주차장이든 어디라도’ ‘빵, 밥, 면, 주식이 뭐든’ ‘낮이고 밤이고’ 배달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민족이라고, 그 역사는 최소 250년에 달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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