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철도의 날을 맞아 한국 철도 초창기 모습을 그린 여러 기록물을 살펴봤다.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 “바람을 타거나 구름에 솟은 듯한 황홀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각각 1800년대 후반 출간된 기행문 <일동기유> <서유견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일까. <일동기유>의 저자 김기수는 1876년 일본에 갔다가 한국인 최초로 기차에 탑승했다. 불을 내뿜는 수레인 화륜거가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비와 바람같이 날뛴다며 신기해했다. 188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던 유길준 역시 <서유견문>을 통해 기차의 규모와 속도에 경탄했다. 그 시절 증기기관차는 하늘 높이 하얀 증기를 분출하며 시속 20~40킬로미터로 달렸다. 이들이 시속 300킬로미터의 KTX를 탔다면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후기를 남겼을지 궁금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인 1899년 9월 18일, 한국 첫 철도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인천역인 제물포역에서 서울 노량진역까지 약 30킬로미터 구간에 놓인 경인선이다. 석탄이 연료인 증기기관차의 속도는 시속 2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하나, 마차나 자전거, 도보가 최선이던 당시로선 획기적 교통 수단이었다. 개통식 다음 날 <독립신문>은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라는 탑승기를 게재했다. 도보로 8시간 걸리는 거리를 1시간 40분 만에 주파하게 됐으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어서 1905년 경부선과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 등이 개통했다.
기차가 등장하면서 대규모 물자 수송과 지역 교류가 활발해졌다. 1908년엔 열차 풍경을 노래한 ‘경부철도가’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수원역, 천안역, 김천역 등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하루 간의 여정을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천 리 길을 하루에 다다른 것” 같은 가사로 보여 준다. 경부선이 지나는 역과 그 주변 여행지도 짚어 준 덕분에 지금은 폐역이 된 증약역, 미륵역도 언급된다. 살면서 한 번쯤 흥얼거려봤을 법한 노래도 있다.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랑이하네.” 1936년에 발표한 ‘유쾌한 시골 영감’이란 곡이다. 3등석 푯값을 깎으려던 시골 영감이 멋모르고 2등석에 앉았다가 오히려 비싼 운임을 물었다는 내용이다. 열차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승객의 모습을 재치 있게 그렸다.
이렇듯 서서히 일상에 스며든 기차는 여러 소설에서도 제 몫을 단단히 한다. 1918년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 대표적이다. 여러 인물이 그간의 묵은 감정을 털어 내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장소가 바로 기차와 기차역이다. “이제 머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짚신을 신은 소년은 이미 죽었다. 뺑 하는 화륜선을 볼 때 이미 죽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껍데기에 전혀 다른 이형식이라는 사람이 들어앉았다.” 일상 풍경을 바꾼 기차 안에서 주인공 역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3등 객차 안 소란을 그린 최명익의 1941년 작 <장삼이사>처럼 처음부터 열차 안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여럿이다.
마지막으로 1947년에 나온 동요 ‘기찻길 옆’을 불러 본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푹/ 칙칙푹푹 칙칙푹푹칙칙푹푹.” 여기서 칙칙푹푹은 증기기관차에서 증기가‘칙칙’ 새어 나가고, 석탄을 태운 연기가 ‘푹푹’ 빠져나가는 것으로, 1960년대 들어 증기기관차 운행을 종료하면서 이제는 듣기 어려운 소리다. 이후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시속 20킬로미터의 증기기관차에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KTX까지 100년이 걸렸다. 증기기관차의 등장도, KTX로의 발전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