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정주행하기도 어려운 때, 기적처럼 역주행한 노래를 살펴봤다.
“국군 장병, 예비역, 민방위분들 감사합니다.” 지난 3월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한 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수상 소감이다. 데뷔 5년 만에 첫 1위를 거머쥔 가수가 고마움을 전하는 대상이 부모님, 팬, 소속사 임직원에 이어 군인이라니,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2016년 데뷔한 브레이브걸스는 ‘하이힐’ ‘롤린’ ‘운전만 해’ 등 여러 곡을 발표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런 그들의 노래가 ‘떼창’으로 울려 퍼지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군대다. 데뷔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국군TV <위문열차> 무대에 섰다. 그래서일까. 브레이브걸스는 군인이 즐겨 듣는 노래를 일컫는 일명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차트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좋은 걸 군인만 봤다니….” 한탄을 금치 못하는 최근 반응처럼 대중적 인지도는 낮았던 탓에 브레이브걸스는 올해 초 해체를 앞둔 상태였다. 그런데 지난 2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7년 발표한 노래 ‘롤린’이 음원 차트에 진입한 것이다. 유튜브 채널 <비디터>에서 브레이브걸스의 무대와 관련 인터넷 댓글을 모은 영상을 올렸고, 이 콘텐츠가 인기를 모으면서 음원 차트에도 영향을 주었다. 도대체 어떤 영상이기에? 귀를 사로잡는 청량한 멜로디, 행복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멤버들, “전쟁 때 이거 틀어 주면 전쟁 이김” “철저한 인수인계로 군번 대대로 내려오는 곡” 같은 현장감 넘치는 댓글, 관객석에서 격렬한 응원을 보내는 군인의 모습이 어우러진다. ‘롤린’ 덕택에 군 생활을 버틴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업로드 일주일 만에 6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체 직전의 그룹이 4년 전 활동한 노래가 1위로 등극하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냈다.
2012년 데뷔한 그룹 EXID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4년 한 유튜버가 촬영한 EXID 공연 영상이 입소문 나면서 발매한 지 3개월 된 곡 ‘위아래’가 차트를 역주행했다. EXID는 이 영상으로 인기 그룹 대열에 합류했다. 반대로 인지도 높은 가수가 이런 방식의 수혜를 입을 때도 있다. 발매하는 곡마다 주목받아 온 가수 아이유가 그 예다. 지난해 연말, 아이유가 2011년 발매한 드라마 OST ‘내 손을 잡아’가 재조명됐다. 콘서트에서 이 곡을 노래하는 아이유의 잔망스러운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자, 아이유 유튜브 공식 계정에 정식 라이브 영상이 올라온다. 그 덕분에 음원 차트 순위도 급격히 상승세를 탔다. 아이유가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선보인 첫 자작곡인 데다 가사에 맞춰 달라지는 제스처와 표정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엔 그룹 2PM이 2015년에 발표한 노래 ‘우리 집’의 포인트 안무를 따라 추는 ‘우리 집 챌린지’ 열풍이 불기도 했다. 과거 무대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많은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댓글 창엔 “이걸 이제야 보다니 인생 헛살았다” “우리 집이 아니라 움집으로 가자고 해도 따라간다” 같은 살가운 댓글이 끝없이 이어진다.
인기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은 지난 4월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 줄 명곡’ 콘텐츠를 시작했다. MC 재재와 구독자가 원하는 그때 그 시절 가수와 노래를 2021년 버전으로 소환하는 기획이다. 콘텐츠에 힘입어 추억의 노래가 음원 차트를 점령할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TV나 라디오, 신문 등의 매체에서 전해 주는 소식 외에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본다.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기도 한다. 잘 만든 콘텐츠와 절묘한 타이밍이 노래의 운명을 바꾸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