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KTX매거진] 겨울의 선물, 강원도 평창

by 우주

겨울바람을 맞으러 강원도 평창에 다녀왔다. 평창 관광 택시가 그 길을 안내했다.


평창, 이 도시를 생각하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남긴 뜨거운 기억 때문이다. 빙판 위 김연아 선수의 우아한 성화 봉송, “영미~”를 외치던 여자 컬링 국가 대표팀, 공식 마스코트 수호랑 등 이런저런 모습이 머릿속에 두둥실 떠오른다. 3년이나 흘렀는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사계절 아름다운 평창이지만 동계올림픽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깜짝 선물 같은 설경이 펼쳐지는 곳, 겨울엔 역시 평창에 가야 한다. 마침 눈이 왔다기에 평창으로 가는 KTX에 올랐다.


여유가 필요할 때, 평창 관광 택시 여행

평창역과 진부역, 평창에 자리한 두 개의 KTX 역 가운데 진부역에 하차했다. 수호랑과 2018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마스코트인 반다비 모형이 반기는 이곳에서 평창 관광 택시를 탈 계획이다. 6시간 동안 전용 택시를 이용해 여행지 두세 곳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으로 2019년 운영을 시작했다. 출발 전 평창군관광협의회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택시 요금에 관광지 입장료뿐 아니라 왕복 KTX 비용이 포함된다는 점도 특별하다. 기차와 택시, 관광지를 한데 묶은 다음, 서울과 평창을 오가는 KTX 시간에 맞춰 다녀오기 알맞은 6가지 코스를 모았다. 청옥산 육백마지기,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 무이예술관 등 흥미로운 곳이 많은데 두세 곳만 선택해야 하니 쉽지 않다. 긴 고민 끝에 1코스인 월정사와 대관령 삼양목장에 가보기로 했다.

진부역 앞으로 평창 관광 택시라는 여섯 글자가 또렷하게 쓰인 택시 한 대가 마중 나왔다.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갔다. 택시 앞에서 마스크를 쓴 운전사가 환하게 맞아준다. 평창군은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통과한 소수의 인원에게만 평창 관광 택시 운전대를 맡긴다. 운전 실력은 기본이고, 지역 지리와 역사, 여행 정보에 해박하면서도 여행자를 든든히 뒷받침해줄 사람으로 엄선했다(문의 033-333-5558).


천년 세월이 만든 풍경,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

진부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월정사를 향해 달리는 동안, 두런두런 소소한 대화가 오간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당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말에 귀가 쫑긋, 지역 주민의 생생한 후기를 듣고 창밖 경치도 구경한다. 거리마다 조금씩 쌓인 눈에 관심을 보이자, 며칠 새 눈이 꽤 내렸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운치 있는 겨울의 월정사를 만날 거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어느새 월정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약 1킬로미터 길이의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택시에서 내려 눈이 소복한 숲길을 걷는다. 사시사철 푸른 1700여 그루의 전나무에 안기는 기분이 호사롭다. ‘침묵은 걷기를 온전히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 다함과 집중은 즐거움과 통찰을 가져온다’ 등 몇몇 나무에 걸린 문구가 몸가짐을 차분하게 한다. 월정사는 2004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달간 스님이 되어 보는 단기 출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입학 첫날, 수행자들은 싹둑 잘라 낸 머리카락을 화선지에 싼 후 일주문 근처에 묻는다. 그러고선 사찰 경내까지 삼보일배 하며 나아간다. 그런 정성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을 다해 걷는다. 1400년 역사의 월정사만큼 오랜 시간을 버틴 길엔 수령 600년 된 나무가 2006년 태풍에 고꾸라진 모습도 고스란히 남았다. ‘쓰러진 전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흙바닥에 몸을 누인 채로 숲길의 상징물이 됐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를 간직하는 길의 끝자락, 서서히 천년 고찰에 가까워진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최고의 명당, 오대산 월정사다. 울창한 산세를 배경으로 둔 사찰에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절경을 감상하다 보면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법당인 적광전, 그 앞에 자리한 15.2미터 높이의 팔각구층석탑, 탑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모양인 석조보살좌상에 자연히 눈길이 간다. 643년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는 크고 작은 화재를 겪었다. 한국전쟁 역시 이곳에 큰 상흔을 남겼고, 이후 중건한 것이 현재 모습이다. 혼란한 와중에도 고려 시대에 지은 팔각구층석탑은 꿋꿋이 버텨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풍파를 이겨 낸 탑 곳곳의 작은 종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안부를 묻는다. 답례는 탑 둘레에 오른쪽 어깨를 가까이하고서 세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한다. 평온한 일상을 맞이하길,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을 한 걸음, 한 걸음에 꾹꾹 눌러 담는다. 1400년,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을 품은 사찰을 돌아 나온다. 주차장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타니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천천히 녹는다.


땅과 하늘, 바다가 맞닿는 대관령 삼양목장

월정사를 출발한 지 30여 분 만에 대관령 삼양목장에 다다랐다. 11월 중순에서 4월 사이엔 개별 차량을 이용하고, 날이 따뜻한 5월부터 11월 초까지는 셔틀버스로 목장을 투어한다. 1972년에 조성한 대관령 삼양목장은 규모가 1980만 제곱미터(약 600만 평)에 이른다. 낮게는 850미터, 높게는 1470미터 고도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하늘과 가까운 곳이다. 따뜻한 계절에는 너른 들판을 자유롭게 오가며 풀을 뜯는 양, 젖소가 보이지만 겨울엔 동물도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탁 트인 자연만 남는다. 그 대신 동물 체험장에서 먹이를 주며 양, 타조와 교감할 수 있다.

겨울 목장을 만끽하기 위해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다 해발 1140미터에 자리한 동해 전망대에 닿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설경이 아름다우리라 기대했건만 생각만큼 눈이 보이질 않는다. 월정사만 해도 자박자박 눈이 밟혔는데 어째서 여긴 그렇지 않을까? 이유는 차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알게 된다. 택시 문을 살포시 여닫기가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온몸을 훑고 간다. 이 정도로 세찬 바람이라면 웬만해선 눈이 쌓일 새가 없겠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인증 사진을 찍자마자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1초, 2초, 3초…. 크게 초를 세는 소리도 들린다. 30초 안에 사진 촬영, 전망 관람 같은 모든 일을 마치고 차로 복귀하자는 신호다. 둔덕에 놓인 50여 기의 풍력발전기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강원도 강릉 인구의 절반이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더니, 과연 그럴 만한 곳이다. 이렇게 추워도 될까 싶은 날씨에 도리어 웃음이 난다. 바람을 제대로 맞았다.

그래도 볼 것은 봐야 한다. 전망대로 다가서자 강릉 시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운 좋게도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맑은 날이다. 설경 대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을 선물 받았다.


겨울날의 평창을 기억하는 법

평창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진부역으로 돌아왔다. 서울 가는 KTX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다. 하루 동안 정이 쌓인 평창 관광 택시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여유롭게 열차 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3년 전 겨울,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한 도시는 여전히 힘찬 기운을 뿜어낸다. 1400년이란 장대한 시간을 견딘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은 매서운 바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연 그 자체인 대관령 삼양목장의 대지는 추운 날에도 넉넉한 마음을 건넨다. 이렇게 평창을 추억할 또 하나의 방법을 터득했다. 그사이 겨울 냄새가 깊이 밴 옷자락을 여미며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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