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나의 호구일지 5편(6월 15~22일)
(6월 19일 월 수련 후 20일 화 오전에 쓰는 일지)
빠른 동작을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몸치인 내가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다 하게 돼. 못했다는 것도 기억 안 날 걸?”이라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냈다. 서툴지만 조금씩 빠른 동작도 몸에 익혀가는 중인데 새로운 난관을 만났다. 발구름. 정확히는 밀어걷기-발구르기-이어걷기 연결 동작을 연습하는 중이다. 어색한 몸동작에 덩달아 뻘쭘해지는 표정은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수련생의 “갈수록 재밌지 않아요?”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부터 잘 못하겠다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점점 굳어가는 것 같다. “못하면 어때, 언젠가 되겠지, 그래도 재밌어!”라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해봐야겠다.
(6월 20일 화 수련 후 21일 수 오전에 쓰는 일지)
마음가짐이 달라져서인지, 반복 훈련의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발구르는 동작도 점점 몸에 익어간다. 관장님이나 사범님 모두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칭찬에 능한 사람들이다. 약간 어설퍼도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엘리트 선수를 오래 교육하셨음에도 일반인 초보자의 마음을 어찌나 잘 헤아려주시는지 놀라울 따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인반에 진도가 비슷한 초보자가 여럿이니 검도에 흥미를 붙이기 더 쉬운 환경인 듯하다. 아무리 아싸가 체질이라지만 고수들 사이에서 혼자 초급 과정을 익혀야 했다면 매우 슬펐을 것. 여러모로 운이 좋은 듯(그거슨 진짜 외로운 길이니까).
검도 시작 전에 '물집 잡히면서까지 운동하고 싶진 않은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계속해서 새로운 물집이 생기고 또 터지고 있음에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하고서 어떻게든 검도장에 나가려고 궁리 중이다. 검도하면 물집은 필연적이라 들었는데 이 정도 짧은 수련 기간 중에서는 내가 유달리 고생하는 편에 속하는듯. 물집을 대하는 자세도 점차 능숙하고 대담해지겠지, 뭐.
*월~목 저녁 수련 후 그때그때 심경을 주르륵 나열하면 의미있을 것 같았는데 실패했다.
(6월 21-22일 수, 목 수련 후 25일 일 오후에 쓰는 일지)
물집 동지가 생겼다. 나홀로 발바닥 물집과 씨름하느라 외로웠는데 다행이다(?). 수련 중 터진 물집의 아픔을 알아서 감정이입 심하게 했다.
검도 입문 한 달차, 성인 초보반에 하나 둘 부상자가 생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제 겨우 17번 수련했을 뿐인데 빠른 동작이나 발구르기를 곧바로 따라하지 못한다고 좌절했던 게 어이가 없다. 언제부터 그렇게 운동을 잘했다고. 나참. 사람이 이렇게 오만할 수가...있긴 하다. 왜냐하면 나만 못하는 것 같으니까. 하하하하하하.
검도를 등록하고나서 하루 일과가 심플해졌다. 기상-출근-퇴근-귀가-저녁 먹고 빠르게 검도장. 수련 종료 시간이 다소 늦은 탓에 초기에는 수면의 질이 조금 낮아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주 잘 잔다. 기상 후 취침 전까지 누울 틈 없이 계속 뭔가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기초대사량도 오른 게 아닐까(원래 가능한 오래, 자주 눕곤 했으므로).
이상. 아직 호구 사지도 않은 검도 한 달차 초보자의 호구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