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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촌자 Jan 17. 2020

걸작의 절정, 바티칸(1)

이탈리아 사진 기행

자유여행이 좋기는 하지만 박물관은 가능하면 가이드 투어. 일찌감치 로마 일정 첫날부터 유로 자전거나라 바티칸 투어를 예약했다.  오타비아노역이 가깝지만 붐비는 까닭인지 시프로 역에서 모여서 바티칸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노란색은 바티칸 시국의 경계. 바티칸 미술관은 그 경계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미술관을 구경하고 팔각 정원으로 이동하여 조각품을 감상한 후 회랑을 지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의 걸작을 감상하고 베드로 성당을 투어하는 일정. 

입구에 도착하니 바티칸 박물관의 두 거장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모습이 보인다.  MVSEI는 MVSEO(박물관)의 복수형인데 고대 로마에선 U를 V로 표기한다. 기원후 3세기 정도 되어서야 U자 표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V가 두 개 있는 W가 더블유이고 BVLGARI(불가리) 브랜드의 V도 U로 읽는다. 역시 박물관은 들어서기도 전부터 공부하게 만든다. ^^ 

복잡하고 대기하는 줄도 엄청 길었지만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마법 같은 절차를 거쳐 박물관 내부로 들어와서 우선 미술관 관람부터 시작.

미술관이라는 뜻의 피나코테카. 고대 그리스어로 <피나>는 보드판, 태블릿이라는 의미이고 <코테카>는 박스라는 뜻. 글자를 자세히 보니 피렌체 두오모 성당 장식과 같은 대리석 모자이크. 타일처럼 붙인 것이 아니라 연필심처럼 생긴 기다란 대리석을 색상별로 구해서 세로로 집어넣은 것이니 간판부터 격조와 정성이 남다르다. 

멜로쪼 다 포를리의 <플라티나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하는 식스투스 4세>라는 작품. 무한도전에서 진행한 닮은꼴 찾기에서 박명수 닮은꼴로 소개되어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제목은 식스투스 4세인데 그림은 가운데 빨간 망토를 걸친 추기경이 주인공 같다. 그가 바로 훗날 교황 율리우스 2세인데 식스투스 4세의 조카. 작가는 이미 이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던 것이다. 차기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어야 교황청에서 그림 그리면서 밥 먹고 산다.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정도의 관찰력은 생기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명수 닮은 사람이 교황의 조카딸 아들인 라파엘레 리아리오 추기경. 로렌초 데 메디치와 줄리아노 메디치 암살을 음모하였으나 실패한 장본인. 그로 인해 식스투스 4세는 그 후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는다.

많은 작가의 회화 작품들 중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유작을 제자들이 마무리하는데 이후 성 베드로 성당 내부 벽화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작품이다.  

라파엘로 후기 작품으로 이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본 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 후여서 그림 우측 아래 정신병에 걸린 아이의 모습이 미켈란젤로식의 근육질로 묘사되고 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 출신도 아니고 독특한 작품세계는 없지만 배워서 익히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인 공기 원근법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어깨너머로 몇 번 보고 배워서 그림에 녹여내고 나중엔 미켈란젤로의 작품까지 본인의 것으로 녹여내는 CTR+C, CTR+V의 달인. 거기다가 처세술은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나이 30에 성 베드로 성당 공사 총감독 자리를 맡게 된다. 하지만 능력도 많고 인물도 좋았던 만큼 주위에 여자가 많았던 것이 결국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되는 이유. 남자도 미인박명.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미술관을 나와 팔각 정원으로 들어서니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라오콘의 군상 앞에 관람객이 붐빈다. 


트로이와 그리스의 전쟁 막바지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은 목마에 모종의 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였고, 목마의 복부에 창을 던져 속에 무엇이 숨어있는가를 확인하려고까지 한다. 이에 그리스 군의 편이었던 해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커다란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쌍둥이 아들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를 감아 죽이고 있다.

콘트라포스토 뒤틀기 자세의 최고봉으로 미켈란젤로가 감탄을 금치 못한 작품으로 1506년 발견 당시 농부가 사람이 죽었다고 신고할 만큼 그 표정이 생생하다.  당시엔 오른쪽 팔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오만가지 추측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1905년 로마의 한 석공 작업장에서 오른팔이 발견된다. 399년을 떠돌아다닌 팔이 원래 주인을 만난 것. 시나리오라면 싸구려고 우연이라면 기가 막힐 노릇. 

바치오 반디넬리가 교황 레오 10세의 의뢰로 만든 작품. 원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로 보내려고 제작했으나 작은 청동 조각상만 보내고 대리석 라오콘은 보내지 않고 피렌체에 남겨둔다.  


파비아 전투에서 카를 5세한테 박살 나고 포로로 잡혀 있다가 두 아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약속하는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을 하고 나서야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던 프랑수아 1세 입장에서 트로이를 지키려다 두 아들을 잃게 된 라오콘을 보며 울컥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 루이 12세도 르네상스 예술에 반해서 이태리 사랑에 빠져 있었던 터라 그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란 프랑수아 1세가 밀라노에 처음 진격했을 때 첫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갔을 정도. 후일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해와서 죽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했다고 하니 프랑수아 1세의 르네상스 사랑도 어지간하다.  


팔이 없는 기간 동안 수많은 조각가들이 상상으로 팔을 완성하여 작품으로 만드는데 거의 대부분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처럼 오른팔을 뻗어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제작한다. 또한 신(바다뱀)의 부적절한 개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부여하며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불의에 대항하는 인간의 숭고함이라고 격찬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오직 단 한 사람 미켈란젤로만 팔은 펴져 있지 않고 접혀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며 작품의 보완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다. 그런데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란 것도 그 시대의 예술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한 발짝만 더 들어가 보자.

동일한 시대의 유물로 발굴되어 팔각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아폴론이라는 작품이다. 일단 근육의 구성 비율 자체가 다르다.

출처:https://ko.wikipedia.org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인 밀로의 비너스 또한 동시대 작품. 물론 여성의 몸을 표현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두 작품 다 몸매가 매끈하게 흘러내리는 공통점이 있다. 더군다나 라오콘은 장군이 아니라 사제의 신분인데 남성미가 넘친다. 


그렇다면 의혹의 발단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라오콘 발견시기는 1506년.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작업을 마치고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내려온 것이 1504년이니 딱 2년 뒤. 자신의 영묘 제작을 의뢰하여 미켈란젤로가 카라라 채석장에서 대리석을 준비해서 로마로 내려왔는데 영묘 제작은 잠시 미루라고 한 것이 1504~5년. 그리고 1506년 베드로 대성당 신축공사와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벽화 작업 시작. 그런데 영묘 제작을 미루고 바로 다음 작업에 진행했으면 문제가 없는데 대리석 대금도 지급하지 않고 작업을 보류하라고 해버린 것. 소문의 핵심은 젊은 미켈란젤로는 궁시렁 대면서 그때 남은 대리석으로 작업해서 땅에 묻었다가 꺼낸 것 아닌가 하는 것. 하지만 그 당시 천재를 시기하는 음해성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이후 시스티나 천장화 천지창조 작업을 마치면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작업 스타일 때문에 카톨릭 교회에서 적이 많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는 것이고 즐기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만 알면 되지 싶다. 물론 궁금하신 분은 한걸음 더 들어가면 더 재미있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팔각 정원을 나서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는 길에 긴 회랑을 지나는데 그중 첫 번째 방이 양탄자의 방. 바닥에 깔아 쓰는 양탄자를 벽에 매달아 놓았다. 참고로 한 여름 로마에선 기온이 섭씨 50도를 웃돌지만 작품 보호를 위해 이곳은 냉방 시설이 가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양탄자가 더위를 막아주어 오히려 이 방이 더 시원하다고 하는데 바깥보다는 나을 뿐 시원할 리가 없지 싶다. 

양탄자의 방 천정에 장식된 그림인데 얼핏 봐선 양각으로 조각된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정에 금이 가서 보수하려고 표시해 놓은 까만 띠 가장자리를 확대해 보면 그냥 평면이다. 깜빡 속을 만큼 엄청 잘 그린 그림. 

이 그림 또한 음영 대비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여 양각으로 조각된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진 왼쪽에서 쏘아 올린 라이팅 때문에 망한 케이스. 조명 담당의 실수에 작가는 운다. ^^

양탄자의 방을 지나면 나타나는 지도의 방. 유럽의 옛날 지도를 다 모아놓은 듯하다. 로마 교황청에서 이런 지도가 왜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니 각국의 카톨릭 교구에서 모금한 헌금을 수송할 때도 필요하고 헌금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데도 인구통계학적 지도가 필요했지 싶다. 

사진의 왼쪽 액자 프레임은 진짜로 제작한 것이고 바로 옆 오른쪽 액자 프레임은 그림으로 그린 것. 이야기를 듣고도 바로 코앞에 다가가서 보기 전엔 알 수가 없으니 그 당시 바티칸에 초빙되어 온 화가들의 그림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겠다. 정말 대단하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조합하는 유전자 코드의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림. 500년 전의 로마 카톨릭 성당의 벽에 그려진 그림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박명수에 이어 두 번째. ^^

바티칸 궁에 있는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 벽면에 라파엘로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장식한 아테네 학당.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르네상스 혁명의 철학적 근본인 신플라톤 주의의 원조 플라톤과 손바닥을 아래로 가리키는 현실주의자이자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점으로 삼고 좌우 균형과 상하 균형을 배려하여 인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인스타에선 한 번씩 다 해본다는 바티칸 뮤지엄 입장권을 장식하고 있는 두 명의 철학자를 배경으로 한 인증샷 놀이.

그림 왼편 소크라테스 옆의 알렉산더.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으나 평소 존경하던 소크라테스 옆에 서 있다. 하지만 거기서도 말을 듣지 않고 귀를 막고 한눈을 팔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라파엘로의 재치가 돋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게 된 후 존경심이 뭉개 뭉개 피어올라 원작에는 없던 헤라클레이토스를 추가하여 미켈란젤로 얼굴을 추가한다. 얼굴만 보면 미켈란젤로인지 확인이 어려울까 봐 평생 벗지 않고 살았다는 조각가용 장화를 그려 넣었다. 여기서도 미켈란젤로는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치상 계단이 없는 곳이므로 본의 아니게 (^^) 공중부양 중.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스케치하는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라파엘로의 통찰력도 대단하며 그림이 암시할 수 있는 표현의 다양성이 놀랍다.

이 그림 속에 좌우대칭 구도가 하나 더 있는데 오른쪽 기둥 뒤에서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을 투영한 아펠레스와 왼편 그룹 중간에 있는 히파티아의 관계가 그것. 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는데 이 두 사람만 관객 쪽을 보고 있다. 히파티아는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천재 수학자로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재능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당시 교회와 정치 세력 간의 대립 속에서 기독교 주교에 의해 이단이란 명목으로 마녀사냥 당하는 비운의 여인. 이 당시에 신플라톤주의를 신봉했으니 5세기부터 중세 암흑기로 들어가는 마당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을 듯. 신플라톤주의가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15세기니까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라고 할 밖에… 

히타피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이 전체 아테네 학당에서 유일한 여성이며 라파엘로의 애인. 하지만 그녀는 유부녀였고 그녀의 남편이 바로 옆 파르미네데스 얼굴이라고 하니 라파엘로도 참 어지간하다. 이 분은 라파엘로의 성당 내 다른 벽화에도 겹치기 출연을 한다. 그분에 대한 라파엘로의 애정을 알 수 있는 대목.

By Livioandronico201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aphael#/media/File:La_Fornarina_by_Raffael

라파엘로의 뮤즈라는 마르게리타 루티의 모습. 왼팔에는 라파엘로라고 새겨진 팔찌를 하고 있다. 루티를 사랑해서 추기경의 조카와 약혼을 하고도 결혼을 미뤘다고 알려져 있는데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싶다. 히타피아의 얼굴이 루티의 모습을 하지 않고 있다. “모두 다 사랑하리~~”  <송골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히파티아

영국의 찰스 윌리엄 미첼이라는 작가의 작품. 기독교 폭도들에 의해 발가벗겨져 참살당하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찰스라는 작가분의 의도는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파악을 할 길이 없다. 처음엔 작품을 보고 꽃같이 젊은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60세가 되어서 생긴 일. 사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쨌거나 옥의 티. 히파티아 죽음 이후 수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게 되어 그리스 수학은 쇠퇴하게 되고 그 명맥을 인도와 아랍이 잇게 되는 수학의 계보 흐름상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니 적어 둔다.


이제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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