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여정, 둘째 날
앞으로 남은 9일 동안 북청물장수 놀이하면서 캠핑을 하기로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한결 가벼운 마음.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와보니 동쪽 하늘에 서광이 비친다. 그저 마음에 빛이 들어왔으니 그걸로 고맙다.
기왕에 떠난 여행이니 즐거워야 할 것 아닌가. 누굴 원망할 일도 좋아할 일도 아니다.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들어가도 이 또한 여행.
몇 걸음 옮기니 나름 그럴싸한 풍경. 그래서 또 한 컷 얻는다.
잠시 스쳐가는 애리조나에서 그랜드 캐년의 기운도 느껴보고
중간중간 내리는 빗줄기는 뜨거운 대지를 식혀준다.
구름의 향연과 중간중간 내리는 빗줄기를 맞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가 저만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4UxuE0xrr0&feature=youtu.be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고 계속 달려 오후 2시 30분 즈음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
서비스센터에 도착하니 8월 말까지 예약이 꽉 차서 서비스 불가란다. 급행 수수료를 지불할 테니 방법이 없겠냐고 재차 물어보니 두 군데 사설 서비스 가능한 곳을 알려준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구글로 찾아보니 두 군데 다 진행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그중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베스트 웨이 당첨.
도착하니 날씨는 덥고 일은 별로 없는지 직원들이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들어가서 메리디안을 찾으라고 일러준다. 미국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가 시작될 때 이름이라도 알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이 클럽에 가입하고 리퍼(refer)를 주고받는 일에 열심인 것이다. 정작 당사자와의 미팅에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 그게 포인트.
리셉션 데스크에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메리디안을 찾으니 키 크고 잘 생긴 부루스 윌리스가 나온다. 설명을 듣고 상태를 둘러보더니 5분 만에 뚝딱뚝딱 끝. 아마도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열기에 호스가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역시 RV에는 로켓 사이언스는 없다. 웬만큼의 엔지니어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고칠 있는 문제들이다. 쥐꼬리만큼의 엔지니어 재주조차 없어 이 고생을 하는 것일 뿐임을 이참에 밝힌다.
데스크에서 지불할 비용을 물어보니 그냥 가란다. 잉? 아니 키 크고 잘생긴 데다가 통도 크다. 그래서 저녁에 맥주나 한잔 하라며 별도로 준비한 현금을 내미니 이걸로 충분하다며 기꺼이 받아준다. 여행 다닐 때 현금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다. 오늘은 별로 일감이 없었는지 잘 생긴 부루스 윌리스와 직원들은 이내 문을 닫고 퇴근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여행기간 내내 북청 물장수 할 뻔했다. 문득 예전에 행운과 불운은 항상 따라다니니 행운이 찾아온다고 좋아하지만 말고 숨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운을 찾아내고 또한 불운이 찾아온다고 낙담만 하고 있지 말고 행운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진중하게 기다리며 행운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물론 강물이 불어도 약속을 지키고자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결국 목숨을 잃은 미생(尾生)과 같은 고지식과 어리석음은 곤란하다.
잘 생긴 부루스 윌리스라는 제대로 된 귀인을 만난 덕에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오히려 일찍 출발한 덕분에 3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정말 정말 고맙다. 메리디안 그대여 복 많이 많이 받으시라.
그래서 일찌감치 RV Park에 도착. 예약 없이 체크인 사무실에 들어가니 요즈음은 성수기라 빈자리가 없을 거라며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이건 또 뭔가? 관광지도 아닌데 주중에 자리가 없다고? 오늘 오후 같은 분위기라면 없던 자리도 누군가 예약 취소를 하여 자리가 생길 것 같은 기운이 넘치는 상황이라 별 걱정 없이 밖에서 기다리니 매니저 왈 “너 오늘 정말 운이 좋다”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차를 세워놓고 한 바퀴 돌아보는데 멀리 몰몬교 교회 건물이 보인다. 오다 보니 이곳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발견한 교회 건물들은 모양이 다 비슷하다. 심지어 공장 건물도 저런 모양으로 지어놓고 있다. 몰몬교는 일부다처제로 많은 이야기를 남겼는데 1대 교주 조셉 스미스가 미국 정부와 맞서다 체포되어 감옥에서 사망하고 2대 교주 브리검 영이 일부다처제로 인한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하여 1847년 정착한 곳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이 당시만 해도 이곳은 멕시코 땅이어서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고 교세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1848년 미국 정부가 멕시코로부터 서부지역을 넘겨받아 미국 땅이 된다. 그래서 또다시 지속적으로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는데 브리검 영 사망 이후 몰몬교에서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미국 연방에 편입된다. 신약의 교리에 근거를 둔 미국 헌법과 맞지 않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다.
예전에 티베트 출신 여성분과 결혼한 한국 유학생이 있었는데 와이프가 지속적으로 둘째 부인을 맞이하라고 권해서 난감하다고 했다. 그 당시 친구들이 와이프도 권하는데 왜 둘째 부인을 들이지 않냐고 장난스레 물어보니 우선 자신은 그럴만한 돈도 없고 더 중요한 것은 티베트 지역이 일처다부제여서 와이프 자신이 두 번째 남편을 맞이하려고 본인한테 먼저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라고 이야기하는 거라며 자신을 절대로 그 꼴은 못 본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맞어유. 세상에 공짜는 없는겨~~”
근처에 솔트레이크 시티 공항이 있어 항공기 착륙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단체 버스도 없고 비행기도 비어있으니 여행업계는 난리가 났다. 백신 개발이 거의 완성단계에 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2002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도시답게 시내 한복판의 오설리반 봉우리 정상이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만년설로 덮여있다. 해발 고도 11,253피트 3,430미터 높이의 일명 선셋 봉우리라고 불리는데 봉우리 정상에 비친 오후 햇살을 보니 그리 이름 지어진 까닭을 알겠다.
산책하다 입구 쪽을 보니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이 캠핑장으로 들어온다. 속으로 ‘아니 어떤 찐따 같은 놈이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캠핑장에 몰고 들어온담?’ 하며 쳐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옵티머스 프라임은 맞는데 컨테이너가 아니고 RV 캠핑카. 42피트 사이즈에 시작 가격이 50만 불, 6억 정도인 레니게이드 RV 버전. 물론 옵션에 따라 가격이 바뀐다. 뭐시여 페라리 2대 값을 주고 이걸 타고 어디 가서 캠핑을 하겠다는거여? 돈을 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으니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