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꿈이 뭐였어~?” 어느 날 갑작스런 큰 아들의 질문.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아들의 대사처럼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살면서 되도록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꿈... 갑작스런 아들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엄마를 보며 녀석은 답을 기다린다. “음... 글쎄. 엄만 거창하게 꿈을 꿔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 그냥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릴 땐 기분이 좋았었지. 잘한다는 소릴 종종 들었으니까. 만약에 그때 네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그림 공부시켜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것 같다. 어렸던 그 시절 장인어른은 막내딸이 중3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셨기에 갑자기 달라진 환경 속에서 애들 엄마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접어 넣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야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큰 품 안에 살다가 홀로 된 엄마 옆에서 본능적으로 ‘무엇이 하고 싶다’ 보다는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어렸던 딸에게 <아버지의 부재>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나이 때의 철없는 조름이나 사춘기 소녀의 작은 투정 대신 지금 그게 어떤 상황이던 일단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래서 조금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 화구통을 울러 매고 화실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던 기억도 있다 하고… 미국에 와서 고등학생 시절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맘에 혼자 미술용품 전문점엘 갔던 적도 있다 한다. 하지만 가격을 들여다보고는 모은 용돈으로는 도저히 물감까지 사가면서 미술공부를 한다는 건 어림도 없단 걸 바로 받아들이면서 스케치북과 붓 그리고 드로잉북 한 권만 달랑 사들고 나왔다고...
아직까지 갖고 있는 그때 사서 들고 나왔던 책. 애들 엄마는 쓸데없이 왜 그것들을 사들고 나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펴보지도 못할 꿈에 대한 미안함 내지는 위로였지 싶다. 암튼 그 후부터는 취미 생활로도 물감 위에 붓을 적시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더 큰 꿈을 키우고 그래서 늘 즐거운 우리 큰 아드님께서 엄마에게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물었더니 꿈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데 그래서 문득 엄마의 어릴 적 꿈은 뭐였을까 궁금해졌다고 했다. 엄마도 꿈이 있었다면 분명히 어느 정도는 이루며 살았을 텐데 그게 무엇이던 왜 계속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단다. 아무래도 녀석이 엄마를 울리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후후후
속 깊은 얘기 끝에 녀석은 말했다. “엄마~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땐 할 수 없었지만 난 엄마가 지금이라도 취미삼아 해보면 좋겠어~ 우리도 다 키웠으니 이젠 엄마가 하고 싶은 걸 그냥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잖아요” 녀석의 한마디가 머리를 돌아서 내려와 애들 엄마의 가슴을 건드린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마음이 동할까 봐 그 흔한 화실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지만 잘 못한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다. 이 나이에 눈치 볼 일도 아니고 뭣보다 이젠 물감 값에 놀라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않는가?
엄마를 응원한다며 미술용품을 위해 기꺼이 녀석들은 자기네 용돈을 털었고 이젤을 주문했다.
스케치북을 펴고 붓을 잡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마는 그림을 팔아 밥을 벌어먹어야 할 가난한 화가의 역할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단지 어린 시절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저었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집으로 배달된 붓과 물감을 바라보는 애들 엄마는 옛날 옛적 어렸던 소녀 시절이 생각나는지 가슴이 떨린다며 붓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습작을 시작한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광활함,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외계 행성스러운 신비함,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웅장함이 연습 삼아 그린 그림에 묻어난다.
빛이 만들어 내는 사진의 오묘함과 붓이 그려내는 그림의 깊이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다.
2020년 가을. 거창할 것까진 없지만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소녀의 꿈에 가족의 사랑을 담아 그렇게 한 장 한 장 스케치북이 넘어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