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지를 결정하는 자리이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우리나라 행정부를 이끌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직책이다. 대통령 선거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지를 결정하는 자리이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공권력의 형태는 정책 수단과 예산 배분이다. 결국 대통령은 '속 시원한 말' 혹은 '대통령 다운 이미지'가 아니라 1) 어떤 분야에서 2) 얼마만큼의 예산을 3) 어떤 정책수단으로 집행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요즘은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정치 얘기가 빠지는 법이 없다. 어떤 후보는 똑똑하고, 어떤 후보는 카리스마가 있고, 어떤 후보는 소신이 있다는 등 각 후보들의 이미지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 정치 역사를 들먹이며 이번에는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정치전문가처럼 예언을 한다. 서로 핏대를 높여가며 정치 얘기를 하곤 있지만 뭔가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적이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면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서 시행할 정책들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물론 하루하루 바빠 죽겠는데 언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겠나? 내가 살펴본다고 한들 각 정책이 어떤 의미인지 어려워서 이해할 수나 있겠나? 라는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다 보니 "지난 번에 TV에서 봤는데 저 후보가 말을 잘 하더라." 아니면 "내가 가진 이념 성향이 진보/보수니 저 사람을 뽑아야겠다." 라는 식으로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차근차근 살펴볼 만큼 시간 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대통령감'이라는 이미지로 인기투표하듯 대통령을 뽑는 경향이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를 인기투표하듯 참여하는 국민들이 많아지면 두 가지 폐해가 발생할 것 같다.
우선, 대통령 후보간 네거티브 공세가 불가피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자격조건으로 '대통령감'이라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 선거의 필승전략은 상대방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것이다. 해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지자들을 쪽팔리도록 만들어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덕분에 네거티브 공세 전략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물론 반대 상황도 발생한다. 누군가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비난한다면 마치 자기 자신이 비난받는 것처럼 흥분하여 두둔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격하는 험악한 상황이 왕왕 벌어진다. 부모자식 사이에도 정치 얘기를 삼가고,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 얘기를 삼가는 게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뭐겠는가. 니편과 내편은 서로 함께할 수 없으니 한 쪽이 꼬리를 내릴 때까지 흠집을 내는 게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정치토론 문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폐해는 각 후보들이 '대통령감'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표를 얻기 위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게 된다.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자 경제민주화는 커녕 기업들한테 돈 받아서 자기 재산 불리기에 바빴다. 지금도 대통령 후보들이 수많은 공약을 내놓고 있다. 국민들에게 뭘 해주겠다는 공약은 많다. 그런데 필요한 예산을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건지 얘기하는 후보는 없다. 5대 정당 중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도 현재 주장하는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20조~150조 예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이 400조인데, 추가로 저 정도 돈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겠나?
대선 후보들이 오랜기간 고민해 온 준비된 공약도 있겠지만, 국민들 표를 얻기 위해 급하게 내건 공약들도 많을 것이다. 과연 이들 공약들이 얼마만큼 준비된 상태에서 나온 것인지는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대통령감'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시행할 정책들을 얼마만큼 고민하고 준비했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은 정책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직책이다.
'대통령감'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로 대통령 선거에 임한 결과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로 우리 국민 모두가 생생히 경험하였다. 공권력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면 그 누구라도 부정부패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도 결국 제도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자신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부정부패하지 않는 청렴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말로만 주장하는 후보는 믿지 않는다. 과거에 올바르고 청렴하게 살았다는 후보도 권력을 갖게 되면 서서히 변질될 수 밖에 없다. 이 보다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부정부패를 방지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가 대통령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정책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직책이다.
플라톤은 «국가·政體»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대통령 선거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공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것이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한 개인이 국가 전체를 통치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삶은 스스로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할 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나은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보다는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 쓰면 누구를 뽑더라도 지금 상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인 우리들이 사회 문제와 정부 정책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대통령 후보들도 실질적인 정책을 내세워 국민들의 표를 얻고자 할 것이다. 또한 국민들도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편을 나누기 보다는 하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접근방법을 두고 정반합의 정치토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은 가까이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이해하고 참여하자.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의 정책 공약이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분명히 이해하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내 마음에 든다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내 한 표를 던지기에는 선거권은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이다. 수도권에서 집을 구매하기 막막한 상황이라면 후보들의 주택 정책 공약을 살펴 보라. 아이는 낳았는데 육아가 걱정이라면 보육 정책 공약을 살펴 보라. 은퇴 후 노후가 걱정이라면 복지 정책 공약을 살펴 보라. 그리고 각 공약들이 실현될 수 있는지 판단해 보길 바란다. 이번 선거에서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 삶을 더 낫게 바꿔줄 후보에게 투표해 보자. 그러면 적어도 내가 살아갈 대한민국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다. 그 길이야 말로 내 삶을 내가 통치하는 길이고,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에게 공권력을 맡길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