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타큐프라임 민주주의 5부작 후기
지난 5월, EBS 다큐프라임에서 5부작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를 방송하였다.
1부: 시민의 권력의지
2부: 민주주의의 엔진, 갈등
3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선한다
4부: 기업과 민주주의
5부: 민주주의의 미래
제목으로만 봐도 제작진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권력이며 통제 권한을 나눠가지는 것을 말한다(1부). 그런 시민들 사이에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며, 오히려 갈등은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2부). 그런데 지금 사회는 자본주의가 팽배해 지면서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불평등의 심화는 대다수 민주사회 시민의 역할을 제약하고, 소수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되도록 한다. 이러한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보다 정치체제인 민주주의가 우선해야 된다(3부). 자본주의 확대로 영향력이 커진 기업은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에 일조하였지만, 종업원지주제도와 같은 형태로 민주적인 운영방법도 가능하다(4부). 자원의 분배의 결정기준을 소수의 경제/정치 권력체에 맡겨두기 보다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시장질서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5부).
이를 두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경제원은 "이념편향적인 방송"이라고 언급했고, 새누리당의 한선교 의원 역시 "EBS가 좌파의 잘못된 생각을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며 EBS를 통제해야 된다고 반박하였다.
나는 EBS에서 다룬 '민주주의' 다큐먼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지적을 했다고 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영향을 받는 제도 형성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국가가 나서서 경제/사회 권력을 재분배해야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사회 불평등이 유례없이 심각해진 지금 상황을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줬을 뿐이다. 그 해결주체는 독점권력이 아닌 민주사회의 자유시민이다.
실제로 이런 점은 민주주의 정신이 지향하는 바가 맞다. 일반시민들이 우매하다고 정치나 경제권력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이 정당화되곤 하는데,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게 되어 있다'는 가정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부패'하기 쉬운 권력은 자기 자신만 이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야할 몫을 부당하게 빼앗기 때문에 정의의 관점으로 봐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를 자청하는 자유경제원이나 전경련은 자유주의사회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경제권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자유주의의 극히 일부분을 활용할 뿐이다. 한 사람 개인이 자유를 누릴 권리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포함이 되는 얘기다. 수많은 개인들이 소수 권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면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또한 소유의 취득과 이전의 과정에서 부정함이 있었다면, 정당한 소유의 상황으로 교정해야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현재의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는다면, 민주주의 참여를 통해 사회의 룰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장메커니즘의 근간이 되는 자유주의(자본주의)와 정치메커니즘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자본주의)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무리라고 반론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자본주의)를 어느 정도로 양립시킬 것인지 역시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자본주의)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큰 무리가 없다.
시민들이 어떤 생각과 선택을 가지고 민주주의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제도가 달라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성공적인 민주주의 운영을 위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성공적인 민주주의라 함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합의한 민주적인 절차를 잘 지키면서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절차를 거쳐 나타난 결과가 최소한 바람직한 사회발전 방향에 부합해야 된다는 것이다.
EBS의 이번 방송은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적 속성인 '구성원들이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최소한의 방향성인 '불평등 해소'라는 측면을 원론적인 입장에서 제시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본다. 이 두 가지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민주주의를 잘 모르거나, 자신의 부당한 지위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원론적인 내용조차 부적절하다고 검열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주체들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정답은 없고 하나의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