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라떼샷추가 May 29. 2024

매일 달라져도 네가 좋다

1722일째 육아중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독창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라는 양반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본다. 멋지다.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다.


한울이와 오후에 경마공원에 갔다가 서울랜드 야간개장을 가기로 했다. 야간개장까지는 애매하게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을 때우려고 서울랜드 근처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갔다. 한울이와 자주 방문했던 곳이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사이에 전시 주제가 바뀌었네. <Dear my forest>라는 주제로 아이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 숲 생태계에 한발 더 다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가 꾸며져 있었다.



여러 작품 중 오동나무의 색을 1년 동안 섬세하게 기록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작품 2개를 걸어놨는데 왼쪽은 여름의 오동나무 색깔을, 오른쪽은 겨울의 오동나무 색깔을 모자이크처럼 기록했다. 작가의 초록색 표현을 예를 들면, "광합성을 많이 한 것 같은 깊은 초록색" "맑고 깨끗한 여름의 느낌이 나서 수박 먹고 싶어지는 초록색" "해가 질 때의 빛을 받은 것 같은 초록색" 같은 표현들이다. 얼마나 섬세한 표현들인가!


이 작품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오동나무 잎을 초록색이라고 퉁 쳐서 인지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고유의 색깔들의 차이가 무시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둘째, 비슷한 색깔도 하나하나 세밀하게 구별해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도 알았다. 셋째, 사소한 것이라도 1년간 매일 지켜보고 기록하면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도 알았다.



작가가 작품을 만든 이유가 내가 한울이와 함께 한 시간들을 기록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에 대해 대충 보고 쉽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매일매일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울이 육아일기를 쓰면서 한울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한테 한울이가 어떤 아이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동나무 색깔이 매일 변화했듯이 내가 지켜본 한울이의 1,722일도 매일 달랐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관심 있는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쉽게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같은 대상이라도 오늘과 내일의 모습이 다르고, 그 변화무쌍한 모습 모두 그 대상의 단편이기 때문이다. 


"사랑해"라는 말이 감동적인 이유는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신의 모든 단편들까지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교육은 필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