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에 주저하는 리더
"이번 건. 제가 잘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 있어? 그럼 한번 해봐!"
여러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어요.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조직에서 '담당자의 자신감'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더라고요. 보고 내용의 타당성이나 논리보다, 보고자가 얼마나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 사항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보고자가 자신 있게 주장하면 승인이 나고, 망설이면 다시 검토하라며 반려되는 식이었죠.
그런데 자신감을 강조하는 문화일수록 오히려 리더들은 의사결정에 주저했어요. 보통 이런 조직에서는 성과에 대한 책임을 리더 개인에게 묻거나, 문제가 생기면 리더를 교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를 알고 있는 리더들은 겉으로는 자신감 있어 보이게 행동하지만, 사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요. 리스크 있는 결정은 이유 없이 미루거나, 상위 리더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등 회피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주저함과 신중함은 달라요. 신중함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요소를 꼼꼼하게 합리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의미해요. 반면 주저함은 판단에 필요한 요소들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결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결정을 미루는 태도를 의미해요. 많은 리더들이 이 둘을 착각하곤 해요. 고민이 길어지면, 스스로 신중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결정에 대한 두려움에 주저하는 경우도 많고요.
문제는 이런 주저함이 조직에 비효율을 만든다는 점이에요. 리더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다음 단계의 업무 진행은 지연되거나, 마감이 있는 업무라면 업무 시간 자체가 줄어들게 되어요. 심지어 어떤 리더는 의사결정이 미뤄지는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리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시키기도 해요. 이 모든 시간과 자원 소비는 '리더의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조직이 치르는 비용이에요.
그런데 사실 리더의 자신감은 판단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자신감은 어디까지나 결정을 내리기 쉽게 만드는 리더 개인의 감정적인 요소일 뿐이에요. 리더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고 있다 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어요. 반대로 리더가 판단에 확신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설령 결과에 확신이 없다고 해도 리더가 판단을 주저할 필요는 없는 거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판단은 합리적인 검토 과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리더의 자신감이 아니라요. 의사결정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 특히 요즘 같은 불확실성이 높고 다양한 지점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의사결정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판단에 필요한 구조를 체계적으로 갖추는 일이에요.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어떤 절차를 거칠지, 어떤 항목을 확인할지,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수집할 것인지 등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거죠. 일종의 '의사결정 알고리즘'인 셈이죠.
의사결정을 잘하는 리더는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어요.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결론을 내야 할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고, 판단의 근거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요. 이들에게 의사결정은 복잡 미묘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답이 딱딱 떨어지는 수학 문제처럼 논리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제가 아는 스타트업 대표는 "제품 출시를 1달 단축하는 데에 2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판단 기준을 세웠어요. 이 기준 하나만으로도 신규 인력 채용, 외주 업체 활용, 자동화 도구 도입 여부 등 다양한 투자 검토 건을 빠르고 명확하게 판단하더라고요. 한 번은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 절감 방안을 논의했었어요. 많은 리더들이 너무 많은 자원 투입에 대한 리스크를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대표는 오히려 1억 2천만 원을 더 투자해서 외주업체를 고용하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렇게 하면 개발 기간은 1달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모두들 그게 맞냐며 불안해했지만, 합리적인 검토가 뒷받침되니 결정은 단순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자신만의 의사결정 알고리즘을 가지고 계신가요? 결정의 순간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알고리즘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과거에 내렸던 결정을 돌이켜 보면서 어떤 요소와 기준을 따랐는지 되짚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회사에서 의사결정을 잘하는 리더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는 것도 좋고요. 그렇게 나만의 알고리즘을 갖춰놓으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리더로 성장해 나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