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선택을 고집하는 리더
심리학자들이 20명의 사람을 모아서 실험을 했어요. 가격이 같은 머그컵과 초콜릿 두 가지 상품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각각 10명에게 주었지요. 그러고 나서 물었어요. "원하시면 다른 상품으로 바꿔드릴게요" 실험 결과 평균적으로 10명 중 1명만 다른 상품으로 바꾼다는 결정을 했다고 해요. 이 실험을 통해 심리학자들은 '사람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라고 해석했어요. 설령 현재 상태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상황이라도 말이죠.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는 성향은 회사 리더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굳이 나서서 일을 벌이거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걸 꺼려하는 모습으로요.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괜히 이슈와 논란을 만들면 피곤해지니까요. 게다가 새로운 걸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고요. 위기의식을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리더들도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 하지 않을 거예요. 새해만 되면 회사 대표들이 나서서 '위기경영'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리더들한테 안주하지 말라고요.
익숙한 결정은 편할지언정 좋지 않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요즘 세상 변하는 것 보세요. 기술 발전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예요.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 사회 이슈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고요. 외부 상황이 바뀌게 되면 판단의 기준과 방식 역시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해요. 과거에 참고했던 가정과 정보는 더 이상 효력을 잃게 되어요. 이런 상황에서 과거 경험과 익숙한 방식을 대단한 자산 혹은 통찰력인 것 마냥 고집한다면, 리더로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인 거죠.
익숙한 선택을 반복해 온 조직이 망해가는 패턴은 비슷하더라고요. 참고로 저는 매출 150조 원 규모 대기업에서 인하우스 전략컨설턴트로 있으면서, 한때 잘 나갔던 4개 사업부를 정리/매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어요. 그 과정에서 각 사업의 역사를 되짚어볼 기회가 있었어요. 먼저 해당 조직에서는 과거의 성공 경험과 방식이 조직 안에서 절대 진리처럼 굳어져요. 그 이후에 경쟁 환경이 조금씩 변화하는 건 모두들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은 지켜볼 때라며 기존 방식을 고집해요. 그러다가 판도가 한순간에 바뀌게 되고 그제야 조직 내부에서도 위기감을 가지고 바뀌려는 시도가 나타나요. 그렇지만 (보통 나이 많은) 최고의사결정자들은 과거 자신의 성공 경험을 맹신하면서 원래 잘하던 방식을 더 강화해요. 그렇게 완전히 경쟁력을 잃고 나서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방식이 한 번에 효과를 발휘할 리가 없으니,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 버려요. 경쟁력을 잃어버린 조직의 선택지는 많지 않더라고요. 사업을 철수하거나 다른 주인에게 팔거나. 그때는 전략컨설팅의 할아버지가 와도 이미 손 쓰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린 뒤고요.
반대로 앞서 가는 조직일수록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아요. 게임의 룰이 계속 변한다는 걸 아니까요. 승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사람이지, 원래부터 잘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우리 인간의 본성은 익숙한 방식에 따라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리도록 진화해 왔어요. 이러한 방식은 변화가 크지 않았던 시대에는 효과적이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누구도 경험해 보지 않은 급변하는 시대에는 익숙한 방식보다는 혁신적인 방식이 더 필요해요.
그런데 혁신이 뭐 별거 있나요? 그저 현재 직면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상황에 필요한 결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 결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긍정적인 성과도 지속될 거예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천지개벽 수준의 혁신은, 편안함에 빠져 이미 때를 놓친 조직이 벼랑 끝에서 외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모순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혁신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오히려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고요.
의사결정의 순간에서 익숙함을 조심하세요. 오늘의 편안한 선택이 내일의 마음 아픈 결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그 상황에 맞는 기준으로 판단할 줄 아는 능력. 이러한 역량이야 말로 변화의 시대를 헤쳐가야 할 조직에게 필요한 리더의 자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