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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Jan 25. 2017

디지털 기술이 시민을 자유케하리니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2/3)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

1.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 당신은 정치인을 신뢰하나요?

2. 디지털 기술이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3. 직접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디지털 기술이 시민을 자유케하리니..."


자유를 간략히 정의하자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거나 속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대다수 시민들은 정치영역에서 정치인들이 내리는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진정한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네요. "디지털 기술이 시민을 자유케하리라"


출처: https://www.linkedin.com/pulse/aumentare-il-giro-daffari-due-step-gabriella-rotondo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SNS 등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인간 생활 방식도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 신문 대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손 편지 대신 이메일을 보내고 있죠. 또한 전세계 흩어져서 살고 있는 친구들의 근황도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종말>을 저술한 모이세스 나임은 이런 디지털 기술을 ‘자유화 기술’(Liberalization technology)이라고 불렀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시민들이 정치인에 의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치적 자유를 찾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디지털 기술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연결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시민과 시민이 연결되면서 권력자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시민들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을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토론도 합니다. 그 와중에 의기투합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온라인에서 확산된 여론이 현실세계에서 대규모 시위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규모 시위는 또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2011년 미국 월가 점령 시위, 2014년 홍콩 우산혁명, 2016년 대한민국 촛불집회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정치적 세력화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1044.html


1990년대부터 디지털 기술이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초반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시민간 의사소통 장벽을 허물고 온라인이라는 정치적 공론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모바일과 SNS가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이를 정치적 세력화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정치인이 내리는 결정에 의존적입니다. 2016년 우리가 경험한 촛불집회야 말로 정치권에 의존적인 시민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이유는 정치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입니다.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시민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관객일 뿐입니다. 때로는 목소리 큰 관객 정도가 되겠네요. 시민들이 진정한 정치적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자유화 기술'이라 불린 디지털 기술의 역할은 여기까지 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디지털 기술에 좀 더 기대를 가져볼 수 있을까요?




저도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긴 합니다. 바로 국회의원, 대통령 등 선거를 하는 경우입니다. 2011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과 관련한 사안을 주민투표로 부치긴 했습니다만 흔치 않은 사례였습니다. 제가 투표를 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면 특정한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종이로 된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종이를 넣는 방식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법률 입안 등 여러 현안 이슈들을 처리하는 정치인들 역시 여러 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투표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하는 이상 시민들이 매번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일례로 2011년 오세훈 시장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치루는 데에 182억원 예산이 책정이 되었거든요. 서울시에서 실시한 주민투표가 이정도인데, 전국적인 규모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면 그 행정비용이 몇 배는 더 커질 것입니다. 올해 치뤄질 대선 관련 예산 규모가 1800억원을 넘는다고 하네요. 행정비용이 대부분입니다.


출처: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0/19/20161019003534.html



디지털 시대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무르익어 가는 이 와중에 정치적 의사결정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아날로그 투표 방식을 디지털 투표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손 편지 대신 이메일을 주고 받게 되면서 편지를 전달해 주는 집배원의 업무는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시민들이 투표까지도 모바일을 통해서 손쉽게 할 수 있게 된다면 시민을 대변한다는 정치인의 역할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주체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술 안주거리 같았던 정치인 욕도 이제는 못하겠네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 하나를 살펴보죠. 바로 스페인의 신생정당 포데모스의 사례입니다. 포데모스는 유권자가 중심이 되는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시민들의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는 의회 350석 중 69석을 차지하며 양당체제를 깨고 제3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포데모스 창립자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우선, 포데모스의 설립 배경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포데모스는 2011년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Democracia Real Ya)!’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시작된 조직입니다. 스페인 정부가 부채 감축을 위해 긴축 정책을 시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이 웹사이트로 모여든 것이죠. 이들은 5월 15일에 전국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온라인 여론을 정치적 행동으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공유만으로도 스페인 전국 50개 도시에서 총 13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언론에서는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이라고 불렀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은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분노했을 뿐, 운영 측면에서는 상호존중과 배려 그리고 연대라는 정신을 충분히 녹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사안을 총회를 소집해 결정했고, 다수결 투표가 아니라 전원 합의를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을 유지했습니다. 토론과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처음부터 유지한 덕분에 구성원 모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권자를 정치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포데모스의 핵심 구성 요소인 서클. 수백명이 모여서 토론하는 자발적인 조직 형태.


일종의 온라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치활동을 기록하고, 소통하고, 결정하고 있습니다. ‘플라자 포데모스(Plaza Podemos)’라는 온라인 정책 플랫폼은 누구나 포데모스에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플랫폼에는 시민이 포데모스의 정치인들과 직접 토론할 수 있도록 ‘레딧(Reddit.com)’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Me Anything)’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그 외에도 당내 집행부 및 유럽의회의원 후보 선출에 ‘아고라 보팅(AgoraVoting)’이라는 온라인 투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루미오(Loomio)나 ‘데모크라시 OS’(DemocracyOS)’ 같은 온라인 의사 결정 플랫폼 역시 활용하고 있습니다.


포데모스가 추구하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은 정당 내 혁신을 넘어 스페인 지방자치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2015년 치른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포데모스를 필두로 한 연합 정당 ‘아호라 마드리드(AhoraMadria)’ 후보인 마누엘라 카르메나(Manuela Carmena)가 마드리드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아호라 마드리드는 마드리드 시민이 직접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 '디사이드 마드리드(Decide Madrid)’를 구축했습니다. 16세가 넘은 마드리드 시민이면 누구나 이 플랫폼을 통해서 정책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제안된 정책 중 마드리드 시민 2%가 동의하면 해당 안건은 자동으로 시의회에서 표결에 부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5년 9월 출범 이후 2개월 만에 4,000여 개의 주민 제안이 접수되었고, 약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접수된 주민 제안은 1만2,000개를 넘어섰습니다. 이 플랫폼은 마드리드를 넘어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내 20여 개 다른 도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https://decide.madrid.es/


온라인 플랫폼에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전자 투표 기능이 필수적입니다. 전자 투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10여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안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에서 전자 투표 도입을 시도했지만,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서 중단하였습니다. 에스토니아는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전국 단위선거에서 전자 투표를 활용하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렇지만 에스토니아의 전자 투표시스템도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2014년, 미시간대학 연구팀이 에스토니아 전자 투표 시스템 역시 해킹에 취약하고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보안 전문가들은 전자 투표를 도입하기까지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출처: http://blogs.wsj.com/cio/2016/02/02/cio-explainer-what-is-blockchain/


그러나 전자 투표 도입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자 투표에서 예상되는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세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던 가상 화폐 비트코인의 거래 조작을 막기 위해 고안된 기술입니다. 기존에는 정보조작을 막기 위해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을 통제하는 폐쇄적인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반면, 블록체인은 특정한 정보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여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없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비록 비트코인은 실패한 실험으로 끝났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습니다. 정치 영역의 전자 투표로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실험 수준에 불과하지만 직접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덴마크 정당 자유연합(Liberal Alliance)에서 2014년 4월 내부 경선 과정에서 블록체인을 적용한 전자 투표 시스템을 사용하였습니다. 2016년 4월에는 텍사스 주 자유당(Libertarian PartyConvention)이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시스템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대선에서 투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투표 결과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대표발의의원 송영길)된 상황입니다. 투표소 마감 후 투표함을 이동시키지 말고 현장에서 바로 개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수작업으로 표를 계산하고 기계장치는 보조적으로 이용하도록 제안을 했네요... 인공지능, IoT 등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어 가는 이 시점에 전국에 있는 투표용지를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도록 하는 법안이네요. 뭐 지금 논의한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시스템이 보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엄청난 행정비용을 아낄 수 있을텐데 말이죠. 많은 연구자들이 뛰어들고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전자투표가 활성화되리라고 기대합니다.




디지털 기술로 시민이 정치적 자유를 얻게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네요. 과연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될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

1.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 당신은 정치인을 신뢰하나요?

2. 디지털 기술이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3. 직접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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