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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Jan 27. 2017

내가 바로 정치인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3/3)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

1.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 당신은 정치인을 신뢰하나요?

2. 디지털 기술이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3. 직접민주주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내가 바로 정치인이다


블록체인이 등장하면서 전자투표 도입에 대한 논의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투표가 활성화되면 시민들은 투표까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5년에 한 번씩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사안 결정에까지도 참여할 수 있게 되겠죠. 시민들이 정책 소비자인 동시에 정책 결정자 역할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정치인이 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글라루스 직접민주주의 현장(출처: our new europe)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미래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첫째,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결정 기회가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까다로운 청구 조건 탓에 좀처럼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민소환제도입니다. 주민소환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서명은 ‘서면’으로 받아야만 효력이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뿐만 아니라 주민소환을 추진하는 단체 모두 서명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전자 투표를 활용할 수 있다면 개인 정보 식별은 물론 서명의 신뢰성 확인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거래 비용이 줄어든 만큼 시민들은 같은 시간과 비용으로 여러 정치인을 대상으로 동시에 주민소환 청구를 할 수도 있게 되겠죠. 그만큼 시민들은 정책 결정에 더 자주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6975


둘째, 시민들의 모임이 정당으로 발전하여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입니다. 

스페인 신생 정당 포데모스와 이탈리아 신생 정당 오성운동도 시민들의 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정당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방향성보다는 시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 문제 해결에 더 초점을 두게 될 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정당의 정책 목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포데모스는 공교육개선, 부패 근절, 주거권 보장, 공공의료 개선, 가계부채 조정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오성운동은 공공 수도, 지속 가능한 이동성, 개발, 접속 가능성, 생태주의라는 다섯 가지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두 정당 모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정책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에 따라 양분된 거대 정당 사이에서 포데모스와 오성운동은 각각 제3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 정당은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왔으며, 위를 지향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념적 방향성보다 현실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기존 정당들 역시 현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당들은 보수-중도-진보라는 이념적 위치가 아니라, 정책 전문성이 정당의 경쟁력으로 내세우게 될 것입니다.


영국 의회 토론 모습


셋째, 정형화된 정당보다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의 정당이 보편화될 것입니다.  

2016년 9월, 국내 언론사인 ‘한겨레21’과 온라인 토론 플랫폼‘빠흐띠(Parti)’가 프로젝트 정당인 ‘난 알아야겠당’을 만들었습니다. 6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당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GMO 완전표시제 법’ 제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정당은 법안이 통과되거나 올해가 지나면 해산할 예정입니다. 프로젝트 정당에서 입법을 추진할 법안을 선택하기 위해 약 18,000여명의 시민이 온라인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이후 전문가 및 시민들과 함께 ‘GMO 완전표시제법’ 관련 토론을 진행했고,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논의결과를 반영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하는 사람이 워낙 적어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현역 국회의원에 입법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도 보여주고 있죠. 다만 시민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유연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2272.html





민주주의가 확대된다고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정치인 대신 시민들이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시민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뿐, 사실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을수록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고, 민주주의는 더 완성된 모습을 갖춰갈 것입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민주주의가 확대될수록 무지하고, 이기적인 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우려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도 여러 명이 하나의 요리를 만든다면 엉망이 될 수도 있겠죠?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다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죠.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내린 선택에도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됩니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시민은 전문가나 정치인에 선동당하는 모습도 나타나곤 합니다.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EU 탈퇴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투표율은 72%에 52%(1,741만 명)가 찬성했고, 48%(1,614만 명)가 반대했습니다. 국민투표로 EU 탈퇴가 결정되었습니다. 문제는 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이 한 투표를 번복하고 싶다는 시민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주변 헝가리인들이 헝가리어를 사용한 게 못 마땅해서”, “거짓말에속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EU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사실은 EU 탈퇴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시민이 120만 명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꽤 많았는지, BREGRET이라는 용어도 나타났습니다. BREXIT에는 찬성했지만, 투표 결과 후회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네요. 영국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며 투표 결과를 번복하고 싶다는 이들의 주장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의 선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민 비중이 클수록 민주적 의사 결정의 신뢰성을 떨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또 하나의 우려는 시민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서로 신뢰하면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조하고 합의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시민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묵살하면서까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거죠. 민주주의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은 투표를 통해 집단 이기주의가 정당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가 심화되면 사회는 분열되고 집단간 갈등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념적 성향 차이가 점차 멀어져 이 두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합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을수록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이념적 거리가 좁다는 의미입니다. 2011년보다 2015년에 더 멀어졌네요.


출처: Pew Research


정치인들은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 하는 행동을 보면 분열된 집단을 바탕으로 지지 기반으로 확보하기 위해 편 가르기에 열중하며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분열된 사회를 더 분열시켜 자신의 확고한 지지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분열되고, 갈등이 클수록 집단 간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되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220.html


각자 자신이 진실을 주장한다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의견에 불과하다.


의회민주주의에 익숙한 국민은 정치인이 나서서 우리 삶을 대변하고 바꿔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떤 사람이 대통령감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대선주자, 잠룡 등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에 속보처럼 뜨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미래는 소수 정치인보다 다수 시민의 정치적 의사 결정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가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경우 앞에서 두 가지 우려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들로 인한 의사결정 신뢰성 하락이고, 둘째는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합의의 어려움입니다.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시민은 줄어들 것입니다.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집단간 갈등과 분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다수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 다극화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시민의 정치 참여를 돕고 의사 결정 방식을 바꿔줄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 시민의 덕목까지 배양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지향해야 할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고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 정치인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상호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민들 스스로도 디지털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민주주의를 혼란을 유발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위한 정치체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 이 추운 겨울에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시민들의 에너지가 향후 우리나라의 정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어디까지 바꿔나갈 수 있을까요? 박근혜 말고 다른 대통령, 혹은 단지 정권교체 수준에서 그친다면 참 아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1) 기존 지역 중심 정치인이 아닌 각계각층에서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을 확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워킹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정치인이 아니라 실제로 애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워킹맘이 정치인으로 활동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 있는 정치인들은 과연 우리 국민 중 누구를 대표하고 있을까요? 현재 상황에서는 선출 지역의 이해관계를 대표할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하는 문제들은 지역을 넘어서는 문제들입니다. 사회양극화, 노인빈곤, 청년실업, 높은 자살률, 경제성장 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법을 중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2) 시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테러방지법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습니다만, 국회에서 결정한 이상 국민들은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의회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국회가 정책의 최종 결정자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회가 아닌 국민이 최종 의사결정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민투표, 국민제안을 활성화시키고, 국회에서 결정한 사안도 국민투표를 통해서 철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3) 정치인의 신변잡기가 아닌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등을 논의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대중적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고,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을 남발하면서, 편을 가르는 이유는 시민들이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을 인지하고 투표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회에서 성공하고 대중적 이미지를 잘 쌓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인이 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입니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든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되고나서 정책을 공부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거죠. 시민들은 정치인에게 구체적인 정책방안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로 다가올 민주주의 미래,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정치인이 국민을 대변해준다는 생각은 떨쳐 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내가 직접 얘기하고, 내가 영향을 받는 정책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성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주체성을 가질 때 정치인들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 못지 않게 시민들도 정치와 정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봅시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민주주의 미래

1.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 당신은 정치인을 신뢰하나요?

2. 디지털 기술이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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