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우 Jun 02. 2018

남극을 가다

입남극

그것은 행운이고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외국도 몇 번 못 가본 나에게 남극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선배 연구자로부터 남극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다른 것들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은 내 두 다리로 남극을 밟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로부터 7년간 남극의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에 8번 방문하였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여러 번 남극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남극이 익숙해지고 처음의 기분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기적 같은 순간들이 언젠가 과거의 그냥 좋았던 기억이 돼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7년 동안 약 70번의 비행과 2번의 아라온 항해, 30회 이상의 헬기를 타며 남극을 보았다. 남극기지에서 만났던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펭귄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2017년 11월 7일 입남극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얗고 검은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발아래서 느껴지는 진동과 귀에 들어오는 소음이 엄청나 이마가 지끈거렸다. 작은 쪽창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너무 밝아 현실감이 없었다. 천국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문득 만화에서나 보았던 피라미드나 비밀기지의 문이 있지 않을까 계곡 사이를 살펴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비행기의 안은 어둡고 추웠다. 어디선가 히터가 나오는 것 같았으나, 발아래까지 온기가 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몸도 움직이기 어려운 좁은 좌석에서 어찌할 바가 없었다. 옆 좌석에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이 고개를 젖히고 잠들어 있었다. 비행기를 오르기 전 받았던 종이 백이 눈에 띄었다. 안에는 말라가는 샌드위치 두 개와 사과 한 개, 물 한 통이 들어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샌드위치를 꺼내 한입 배어 물었다. 얇게 썬 햄과 마찬가지로 얇은 양상추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였다. 그만 먹을까 하다가 하나를 꾸역꾸역 입에 다 밀어 넣었다. 비행기를 탄지는 여섯 시간쯤 지난 듯했다. 예정대로라면 이제 곧 도착할 것이다. 창 밖의 풍경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름 사이를 날고 있는 듯하다. 듣지 못했는지 안 한 것인지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의 얼굴이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5개월을 이제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두워 책도 보기 어렵고, 휴대폰의 음악도 비행기의 소음에 묻혀 버렸다. 이미 민감해져 버린 청각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전선이 어지럽게 엉킨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비행기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쿵하고 올라왔다. 짐작도 못했던 착륙이다. 모두들 놀랬는지 웅성거린다. 구름 사이에 있던 이유는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서 하강 중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밝은 빛이 한순간 비행기 안에 몰아쳤다. 잠깐 멀었던 눈이 시야를 회복하니, 밖의 풍경이 들어왔다. 하얀 얼음의 세상.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여 하나 둘 비행기를 빠져나갔다. 묘한 흥분상태가 번져왔다. 남극대륙의 해빙 위에 발을 내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일 년 여 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올해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차가운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멀리서 장보고기의 설상차가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진우입니다.

남극에서는 주로 펭귄을 연구했고,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글재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남극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편하게 남극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소통하고, 의견 받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