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다가오는 펭귄
장보고기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십여분 날아 거대한 절벽아래 넓게 펼쳐진 해빙에 내렸다. 바다에 갇힌 거대한 유빙이 햇빛을 받아 짙은 파란색 몸을 드러내었다. 바람도 없이 맑은날. 눈에 반사된 햇빛이 눈부시다. 멀리서 새로운 방문자에 호기심을 느낀 이곳의 원주민들이 열을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하얀배와 검은 등, 목부터 이어지는 노란색 무늬, 붉은색을 띤 긴 부리. 어설픈 걸음걸이. 황제펭귄이다.
황제펭귄을 처음 만났을때 놀란 것은 펭귄 중에 가장 큰 크기가 아니라 사람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태도였다. 황제펭귄은 키가 1m 정도로 크고, 몸무게는 40kg까지 나간다. 그동안 세종기지를 다니며 50cm 정도의 젠투, 턱끈, 아델리펭귄을 많이 보았지만, 황제펭귄의 크기는 가히 대단했다. 걸을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걸어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 웬만한 아이보다 많이 나가는 몸무게로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조사중에 뒤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에 돌아보면 황제펭귄 두어마리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이 남극에 본격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백년 남짓. 황제펭귄이 남극에 살았던 오랜 세월중에 그 시간은 극히 짧을 터였다. 사람을 자주 접하지 않은 황제펭귄에게 사람은 무서운 포식자라기보다는 신기한 존재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방문한 황제펭귄 번식지는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NO.173 Cape Washington)으로 지정된 지역으로 헬리콥터는 번식지에서 최소 1km 밖에서 내려야 했다. 번식중인 펭귄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렸지만, 우리는 다가오는 황제펭귄 무리에 금세 둘러싸였다. 헬기에서 내려 장비를 정리하는 중에 멀리에서부터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그 뒤에 열을지어 많은 무리의 황제펭귄들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몰려들었다. 아마도 처음 다가오기 시작한 개체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녀석들은 무슨일인지도 모르고 앞선 펭귄들을 무작정 따라오는 것으로 보였다. 방문자 주위를 둘러싼 펭귄들은 우리를 경계하는 표정이 아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슬금슬금 손 뻗으면 닿을 정도까지 다가왔다. 순식간에 동물원에서 동물을 바라보던 나와 그 대상체 사이가 뒤바뀌어 있었다. 가만히 손을 뻗으면 앞선 녀석이 다가와 내 손을 마치 신기한 물체를 바라보듯이 부리로 쪼아보기도 했다.
과거 멸종된 도도새는 처음 사람이 섬에 내렸을 때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신기한듯 다가왔으며, 사람이 잡아가더라도 도망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개체수는 순식간에 줄어들고 결국은 절멸에 이르렀다. 펭귄 또한 과거 남극탐험 초창기에는 배의 연료 또는 데려온 개의 먹이로 이용하기 위해 많은 수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역사가 있다. 사람을 처음 본 펭귄들은 멸종한 도도새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도새가 살았던 지역과는 다르게 남극은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방문자의 수도 극히 적기 때문에 사람에 의한 펭귄의 절멸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에게 너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펭귄들을 보며 이 생명체들이 나와 같이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이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기지 인근의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세종기지 주변에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많은 국가의 남극기지들이 위치해 있고, 그 때문에 주변의 펭귄들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을 접했을 터였다. 그곳의 펭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적으로 사람을 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한살배기 젠투펭귄 새끼들은 황제펭귄처럼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고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태어난 첫해에는 사람에게 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개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경계하게 되는 모습은 어찌보면 그동안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반영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의 겨울철새로 매우 희귀하게 찾아오는 혹고니는 국내에서 사람들이 접근하면 매우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경계가 심하고 금방 사람의 눈을 피해 숨거나 다른 곳으로 피한다. 그러나 동일한 개체들이 유럽의 번식지에서는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오기도 한다. 오랜 세월동안 월동지에서는 사람의 접근이 호의적이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 우리가 동물을 대함에 있어 앞으로는 많이 바뀌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황제펭귄을 방문한 목적은 황제펭귄 새끼수를 세기 위함이었다. 나는 3번째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처음 황제펭귄 새끼수를 세기 위해 방문했을 때는 적접 계수기를 들고 수킬로미터에 걸쳐 퍼져있는 펭귄 무리를 직접 걸어다니며 숫자를 세었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겨울동안에는 추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펭귄들끼리 똘똘 뭉치는데 이를 허들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극의 여름기간에는 기온이 올라가 펭귄들은 번식지 외곽으로 점차 퍼져나간다. 펭귄도 물을 먹어야하는데, 남극에는 담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물대신 눈을 먹는다. 펭귄들이 똘똘 뭉쳐있다보니 배설물이 한지역에 집중되어 쌓이고 깨끗한 눈을 먹기 위해서는 외곽으로 나가야한다. 한무리에 작게는 수십마리에서부터 수천마리까지 무리를 이루는데, 일부 무리는 번식지에서 2km 도 넘게 멀어져 있었다. 그런 무리들을 같이 간 동료 연구원들과 나누어 전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니 눈길에 쉽게 지치고 영하 10도의 기온에서도 몸에서 땀이 났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간혹 빠트리는 경우도 있어서 작년부터는 헬기에서 사진을 찍어 새끼수를 세는 방법으로 바꾸었는데, 이 방법으로 황제펭귄의 새끼수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케이프워싱턴 지역은 남극 전체 황제펭귄의 약 8%가 번식하는 남극에서도 최대의 황제펭귄 번식지중 하나이다. 2016년에는 19,402마리의 황제펭귄 새끼가 이곳에서 생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의 알을 낳는 황제펭귄이기 때문에 어미까지 계산하면 6만마리가 넘는 황제펭귄이 이곳에서 번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만의 안쪽으로 갇힌 지형이라 해빙이 늦게까지 남아있고, 북쪽의 언덕이 바람을 막아주어 황제펭귄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매년 커다란 유빙이 번식지 안쪽에 몰려와 갇혀있는데 이는 펭귄들에게 바람을 막아주는 역학을 한다. 유빙들은 매년 형태가 달라지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유빙의 모습들은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웅장하며 멋스러웠다. 수십만년동안 얼음속에 갇혀있던 공기들이 햇빛을 받아 파란 색깔을 드러내 유빙들의 모습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유빙들 사이사이에 황제펭귄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가 다가갈 때 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 주변에 모여들었다. 신기하면서도 황홀한 황제펭귄도시의 여행이었다.
우리가 황제펭귄을 방문한 시기는 11월초. 12월 중순이면 이곳의 해빙이 녹기 시작하고 다 자란 새끼들은 어미들을 따라 바다로 떠날 것이다. 아직은 솜털로 뒤덮여 있지만 솜털아래에서는 어미들처럼 방수깃털이 자라나고 있다. 조만간 털갈이가 시작될 터이다. 해빙이 녹을때에도 솜털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상태로 바다로 나가야한다. 자연은 새끼들이 준비가 될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솜털은 방수깃털과는 다르게 물에 쉽게 젖기 때문에 그 상태로 바다에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 영화 해피피트에서 주인공 멈블은 다른 황제펭귄 새끼들보다 털갈이가 늦어 다른 펭귄들이 털갈이를 끝내고 바다에 나갈 때 홀로 솜털을 두르고 바다로 나간다. 영화에서는 다른 펭귄들과 마찬가지로 헤엄을 잘 치는 것으로 나왔지만, 처음 바다로 나가는 펭귄들은 헤엄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많은 수가 포식자인 표범물범에게 희생된다. 이곳 번식지 앞바다에도 황제펭귄을 노리는 표범물범들이 항상 상주해 있다. 때문에 펭귄들은 바다를 살피며 표범물범이 보이지 않을 때 물속으로 뛰어든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늦게 태어나 이제 30cm도 자라지 않은 새끼들은 가혹하지만 여행의 시간에 준비를 마치지 못할터이다. 애석하지만 이들은 표범물범의 먹이가 되거나 분해되어 다시 바다를 살찌우는 영양분이 될 것이다. 어미들도 수개월간의 번식기간동안 몸무게가 많이 줄어들었다. 다시 번식을 위해 돌아오는 4월까지 바다에서 충분한 먹이를 먹고 살을 찌워야 할 것이다. 다른 펭귄들과는 다르게 가장 추운 환경에서 번식하는 황제펭귄들에게 이번 여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마지막 황제펭귄 번식지를 방문하고 오면서 황제펭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우리뒤를 쫒아오는 황제펭귄들이 혹여 헬리콥터의 바람에 다칠까바 필사적으로 막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를 향한 그들의 호기심은 우리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소리가 가까워지면 펭귄들은 모두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번식지의 이곳저곳에 죽어있는 새끼사체들이 많이 보였다. 어미가 바다에 먹이를 구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기간 동안 굶주린 새끼들 중 일부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많은 수가 죽어갔다. 그중 일부를 연구를 위해 채집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12월경 황제펭귄의 번식지에 날아온 도둑갈매기들은 이러한 새끼들의 주검을 먹이로 자신들의 새끼를 키워낼 것이다. 자연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몸으로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돌고 돌아 유지될 것이다. 황제펭귄들의 세상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아쉬운 이별의 순간이다. 다음해에 다시 돌아와 이들의 환영인사를 볼 수 있을까. 영하 40도의 강추위를 버티며 새끼를 키워내고 있는 황제펭귄들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기가 이륙해 장보고기지로 돌아오는 내내 황제펭귄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1월말. 이미 케이프워싱턴 황제펭귄 번식지의 해빙은 모두 잘려나갔다. 펭귄들은 대부분 바다로 떠났을 터였다. 불과 40km 남짓 떨어진 장보고기지이지만 기지에서 황제펭귄들을 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기지에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펭귄이 기지주변에 나타나주기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가 언제나 충족되지는 못하였다. 1월말의 어느날 통신실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펭귄이 기지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극에 와서 아직까지 펭귄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번식을 마친 황제펭귄 성체 한마리가 기지 앞 해빙위에 홀로 올라서 있었다. 많이 쇠약해진 몸으로 바다로 가기전에 털갈이를 하기 위해 상륙한 모양이다. 어미들 또한 매년 새로운 깃털로 털갈이를 해야한다. 털갈이를 하는 동안에는 바다에서 먹이활동을 하기 어렵다. 언제 떠날지 모를 황제펭귄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사이에도 홀로 떨어진 황제펭귄은 도도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약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황제펭귄은 기지앞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흔적을 남겨두었다. 눈밭에 찍혀있는 황제펭귄의 발자국을 발견할 때에는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먼발치에서 펭귄을 발견하고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황제펭귄의 나라에서와는 반대로 이제는 내가 황제펭귄을 지켜본다. 그래서 그 펭귄이 떠났을때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젠 정말로 다음을 기약해야 할 시간인 듯했다. 어쩌면 그 펭귄은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