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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Jan 03. 2019

펭귄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2018년 12월 21일_캠프일기

펭귄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펭귄의 둥지조사를 다니면서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둥지가 잘 보이는 곳에 5미터 정도 떨어져서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아델리펭귄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나에게 다가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자 한걸음 내게로 가까이 오더니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 하면서 나를 쳐다보고있다. 

아델리펭귄을 조사하다보면, 이런일이 흔한데 이 펭귄은 호기심이 많아서 다가온 것일 수도, 어쩌면 잠재적 포식자가 될지도 모를 사람에게서 콜로니를 지키기위해서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델리펭귄에서 콜로니를 지키는 일은 포란을 하지 않는 개체들이 주로 담당하는데 나름대로 규칙이 정해져 있다. 둥지에 있는 녀석들은 자기 둥지 주변 1미터정도에서 자신의 알과 새끼를 지킨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도둑갈매기에 대항해 모든 펭귄이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경계음을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데 이를 모빙이라고 한다. 날아오던 도둑갈매기는 여러마리의 펭귄이 공격하는 것처럼 보여 콜로니로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도둑갈매기가 지상을 통해 접근하는 경우 가장자리에 있는 둥지만 방어를 해야한다. 이때 콜로니에서 빈둥거리던 개체들이 둥지에 있는 녀석들을 대신해 방어에 나서는데(이를 놈팡이펭귄이라고 부르겠다), 콜로니 내에 이런 놈팡이들이 여러마리가 있을지라도 한마리가 앞장서서 다가오는 도둑갈매기를 향해 달려나가면 주변에 있던 녀석들은 가만히 콜로니에 남아 그 상황을 지켜본다. 앞장선 펭귄이 달려나가 도둑갈매기가 멀리 달아날때까지 뒤를 쫒다가 도둑갈매기가 콜로니에서 멀어지면 잠깐 지켜본 후 다시 콜로니쪽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나에게 다가온 녀석은 이 콜로니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자 또 몇 걸음 나에게 다가오더니 어느정도 떨어진 다음에 몸을 돌려 콜로니로 돌아갔다. 

이 녀석은 아마도 콜로니 방어를 위해 다가왔겠지만 어떤 녀석들은 단순히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다. 펭귄은 태어나서 번식할 수 있을때까지 약 3년간이 걸리는데, 이때까지는 번식지에 돌아오더라도 번식을 하지 않고 번식지 주변을 돌아다닌다. 이 녀석들은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데 사람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때론 캠프지에 놀러오기도 한다. 번식지에 없던 새로운 물체가 보이면 호기심이 발동하는 모양이다. 

어떤 녀석들은 가만히 다가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부리로 쪼아보기도 하고 내가 뒤돌아서 걸어가면 갑자기 달려들어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콜로니 근처를 지나다닐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언제 어떤 녀석이 뒤에서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은 단순히 다가와서 지켜보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돌아가기도 한다. 펭귄을 조사하는 일은 펭귄들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도 수만마리의 펭귄들의 서식지에서 다양한 펭귄을 만났다. 예측하기 어려운 펭귄들이 재미있고, 매번 조사때마다 어떤 펭귄을 만나게 될지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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