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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Dec 05. 2018

바람이 분다

20181126_1차캠프 3일차

바람이 분다. 

지난해 1차 캠프때는 기온은 낮을지라도 바람이 거의 불지않아 야외활동하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올해는 전년보다 기온은 높은 편인데 캠프3일차인 오늘 10m/s가 넘는 바람이 불고있다. 펭귄 번식지에서 샘플을 채집하다 손과 발이 얼어 일찍 캠프로 복귀했다. 지난해엔 낮기온은 영하8도정도. 밤에는 영하15도까지 떨어졌었다. 올해는 낮기온 영하 5도정도 밤에도 영하 십도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바람이 부니 야외 활동시에 체감온도는 더 춥게 느껴졌다. 다행스런 것은 캠프지에 건물이 있으니 따뜻하게 쉴 곳이 있다는 것이다. 텐트만 치고 생활하던 작년에는 야외활동을 하고 복귀하더라도 따뜻하게 쉴 곳이 없어 항상 춥게 지내야했다. 자러들어간 텐트 벽에도 성에가 가득했고, 바람이 부는날엔 텐트안에도 눈이 내렸다. 당시엔 옷을 벗고 침낭에 들어가는 짧은 몇 분이 지옥같았는데 올해엔 그나마 견딜만하다.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과거형으로 얘기하는 이유는 남극을 다니면서, 아니 남극에서 캠프를 하면서 추위에 대한 생각이 바꼈기 때문이다. 더운것은 아무리 더워도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추위는 죽을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남극을 다니면서 한국 겨울의 철새들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것도 현재의 겨울을 싫어하게된 한가지 이유다.  

텐트천을 때리는 바람소리에 먼 번식지 펭귄들의 울음소리가 섞여있었다. 이 바람속에서도 펭귄들은 둥지를 지키고 바다로 나간 짝에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있다. 일년만에 만난 아델리펭귄들은 여전히 귀여우면서도 독특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텐트를 치는중에도 서너마리의 호기심쟁이 펭귄들이 궁금한듯이 다가와 쳐다보고 가곤했다. 펭귄번식지에서는 여기저기 돌을 훔치는 펭귄과 둥지를 지키는 펭귄들이 싸우는 모습이 보이고, 짝과 교대한 펭귄은 돌을 몇개 둥지에 물어다놓은 후 먹이를 먹으러 바삐 바다로 나갔다. 속속 도착하는 도둑갈매기들은 여기저기서 펭귄의 알을 훔쳐가 깨서 먹었다. 

암컷들은 알을 낳고 바다로 떠났다. 수컷들이 남아 둥지의 알을 품는다.
도둑갈매기가 시시탐탐 둥지의 알을 노린다.

이글을 적는 도중에 도둑갈매기 한마리가 텐트위로 날아가면서 꽥꽥 울어댔다. 오늘처럼 바람부는 날엔 도둑갈매기들도 바람을 이기지못하고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대부분은 해빙의 끝부분에 옹기종기 모여 바람을 피하고 있으리라. 

텐트에 들어오기전에 큰 돌 몇 개를 주워 텐트천을 눌러두었는데 바람에 날아갔는지 텐트 뒷부분의 펄럭임소리가 세졌다. 그치만 나가려면 다시 옷을 다챙겨입어야한다. 하루 쯤 어쩌랴.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캠프 삼년만에 처음으로 소변통을 텐트에 들고 들어왔다. 어젯밤엔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깼는데 그냥 참고 잤다. 다시 그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소변통을 챙기면서 다른 사람들것도 같이 챙겨주었다. 이제 3일째. 아직도 최소 5일은 더 있어야 1차캠프가 끝난다. 할 일을 생각하면 열흘도 부족하지만 추운 밖을 생각하니 얼른 끝나서 따뜻한 기지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내일은 바람이 멈추기를.. 아니 캠프복귀날까지는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래본다.  

새벽에 자주깼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고있었다. 침낭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목 언저리가 추웠다. 침낭이 감싸고 있는 배 아래로는 더워 땀이 흘렀고, 노출된 얼굴주변으로는 추웠다. 침낭입구를 닫으면 얼굴마저 덥고 열면 추웠다. 그 중간쯤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작년 11월 보다는 견딜만하다. 작년엔 자다깨면 텐트안에 작은 눈조각들이 날아다녔다. 신발은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해서 아침마다 발을 우겨 넣어야했다. 올해는 신발이 차갑지 않다. 올해 남극은 (아직까지는) 지옥은 아니다. 7시도 안됐는데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났다. 아침식사는 9시다. 이십분정도 뒤척이다 텐트를 나왔다. 바람은 멎어있었다. 얼굴이 찌푸려질정도로 강한빛이 얼굴을 찔렀다. 좋은 날씨다. 오늘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캠프지에 아델리펭귄이 놀러왔다. 궁금했던 모양이다. 캠프지에 쌓인 눈을 먹고 돌아갔다. 펭귄뒤로 간이 화장실이 보인다.
연구팀 막내 용수가 해빙위를 걷고있다. 뒤로 남극의 풍광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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