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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Dec 04. 2018

No.No.No.

20181124_1차캠프 출발 당일. 빙하캐기

"노노노노노"

조종사칼이 소리쳤다. 그때까지 나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헬기 뒷자리의 안전요원 서강사님이 헬기 앞 문을 잡아 챘다. 그때서야 나는 헬기의 앞쪽 문이 열려 있음을 알게됐다. 재빨리 문을 잠그고 칼에게 미안하다고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에 대고 얘기했다. 괜찮다고 대답하는 칼이지만 표정이 좋지 않다. 장보고기지가 고용한 헬기팀의 리더인 칼은 평소 안전을 중시한다. 며칠전 기지에서 가까운곳에 조사를 나갔을때 처음헬기를 타는 후배 용수에게 앞자리를 양보했었다. 보통 헬기를 처음타면 간단한 안전 브리핑을 해야하는데, 아무생각없이 앞자리에 타게했다. 안전밸트를 매는 방법부터 허둥대는 바람에 칼이 조금 기분이 상했었다. 보통, 사람을 데리러오는 헬기는 시동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태우고, 안전밸트를 체결하면 바로 이륙하는데, 그사이 헬기조종수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 마련이다. 헬기 조종수들은 서두르지말것을 항상 강요하지만 부다다다 하는 헬기소음은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그 사건덕에 기지체류인원 전체에게 헬기안전교육을 다시 실시한게 불과 몇일전인데 문을 확실히 닫지 않고 출발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벌써 네번째 남극 방문이고 헬기에 탄 경험이 많은데도 실수를 하다니..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중에 칼에게 미안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해빙활주롱에 경비행기(앞-배슬러, 뒤-트윈오터) 가 서있다. 남극 이곳저곳으로 화물을 옮겨주는 고마운 비행기들이다.
우리팀을 캠프지로 옮겨줄 배슬러. 미국 맥머도기지에서 날아왔다. 만들어진지 50년도 더 된 할아버지지만, 아직 현역이다. 


드디어 경비행기 바슬러가 장보고기지에 왔다. 하늘길이 오랜만에 활짝 열려 빅토리아랜드 전체가 구름한점없는 날씨다. 이런날을 놓쳐서는 안된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짐을 활주로에 옮겼다. 나와 서강사님은 칼의 헬기를 타고 먼저 캠프지로 출발하고 나머지 인원과 뉴질랜드연구팀은 경비행기로 이동하기로했다. 헬기로 캠프지까지는 약 두시간반 정도가 걸리고 경비행기로는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경비행기가 도착해도 헬기가 없으면 활주로에서 캠프지까지 인원과 화물을 옮길 수 없다. 서강사님과 화물들을 헬기에 싣고, 서둘러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은 경비행기가 기다리는 해빙활주로로 설상차를 타고 출발했다. 헬기는 빙하지대와 해빙을 날아 북쪽 캠프방향으로 날아갔다. 중간 급유지인 마리너데포에 들러 헬기에 주유를 하고, 서둘러 다시 출발했다. 헬기에는 최대 300리터(세 드럼) 정도의 기름을 넣을 수 있는데, 가득 넣게되면 속도도 떨어지고 화물을 싣는데 문제가 있어 적당히 기름을 넣고 가다가 중간급유지에서 또 필요한 만큼만 보충해 날아가는것을 선호한다.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 두 시간을 날아 캠프지가 멀리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해빙위에는 벌써 경비행기 배슬러가 도착해있었다. 우선 캠프지로 이동해 헬기로 가져온 짐을 내리고, 헬기는 곧바로 배슬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구축한 캠프지는 다행히 큰 문제없이 잘 있다. 서강사님과 함께 캠프지 정리를 시작했다.  

헬기를 타고 캠프지에 도착. 멀리 Cape Hallett 캠프지가 보인다. 
작년에 만들어 놓은 캠프지 건물이 보인다. 잘 버티고 서 있다. 

헬기는 여러 번에 걸쳐 사람과 짐들은 수송하고 우리는 바쁘게 짐들을 캠프지로 옮겼다. 어느정도 정리되자 조종사 칼이 우리가 먹을 물을 만들 빙하를 캐러 가자고 했다. 캠프출발전에 조종사에게 빙하를 캐러 가야한다는 것을 말해 놓았는데, 우리가 정신없이 짐을 정리하는 중에 잊고 있자 칼이 상기시켜준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캠프지는 해안가에 위치해있고 펭귄번식지가 가까워 주변의 눈을 녹여 먹기가 어렵다. 작년캠프때 눈을 퍼다 녹여서 먹어봤는데 물맛에 느끼하고 짭조름한 맛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헬기에게 부탁해 인근 빙하지대에서 빙하를 캐다 먹어봤는데 눈보다 효율도 좋고 물 맛도 훨씬 좋았다. 눈은 큰 가방하나를 녹여도 물이 얼마 안 만들어지는데 빙하는 거의 동일한 양이 나오는데다 맛까지 괜찮아서 그 이후에는 매번 빙하를 캐다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먹는 맛이랄까.  

빙하지대에서 식수로 사용할 빙하를 캤다. 조종수 칼이 도와주었다. 
헬기는 먼저 빙하를 네트에 매달고 기지로 옮겨놓은 다음 우리를 데릴러 왔다. 


몇 년 전 세종기지 가는길에 칠레의 국립공원인 토레스델파이네를 하루 관광코스로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빙하지역이 남아있는 걸로 유명한데 규모가 매년 큰폭으로 줄고있다고 한다. 남극의 빙하들을 많이 본 나로서는 딱히 작은 규모의 빙하를 보러 먼 거리를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버스를 운전하는 칠레기사분이 굳이 나에게 빙하까지 꼭 가야한다고 자꾸 재촉하지 않는가. 내키지않았지만 기사의 기대에 찬 눈빛을 뿌리칠 수없어 따라 나섰다. 삼십분정도를 걷자 멀리 작은 얼음계곡이 보였다. 과거에는 그곳 호수 전체가 빙하였는데 매년 백미터가 넘게 녹고있어 몇 년 후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빙하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자 기사가 비닐봉투하나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독한 양주한병을 꺼내는것이 아닌가. 그 기대에 찬 눈빛은 빙하주를 우리에게 대접하려는 그의 마음이었다. 호수가장자리에 밀려온 몇개의 얼음 조각을 집어 종이컵에 넣고 양주른 부어 내게 내밀었다. 그의 마음이 느켜져 내가 남극에서 수도없이 보고 먹어도 봤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양주에 잠긴 빙하에서 공기방울이 톡톡 터져나오고, 탄산수 투껑을 땄을때 같은 기포터지는 소리가 났다. 신기한듯이 그리고 기분좋게 한잔을 삼켰다. 기사는 버스에 남아 있는 다른 우리팀 사람들에게도 이 맛을 보여줘야한다며 비닐봉투에 얼음 몇개를 조심스럽게 담고 있었다.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 국립공원 토레스델파이네에 남아있는 빙하. 매년 규모가 작아져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2014년 12월 사진이니까, 지금가면 빙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칼과 빙하지대에 도착해 커다란 빙하하나른 골라 가져간 도끼로 잘게 잘라 네트에 옮겼다. 11명의 인원이 십일가까이 먹어야한다. 네트 가득 얼음을 싣고 기지로 돌아왔다. 서강사님은 물을 녹여 식사준비를 시작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짐을 열어 정리하고 내일부터 조사를 시작할 수있도록 준비에 바쁘다. 바람이 불지 않고 햇살이 강렬해 전혀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칼은 기지로 복귀하고 이제 정말 첫번째 캠프가 시작됐다. 모든 인월이 함께 텐트를 쳤다. 서강사님이 저녁을 삼겹살로 준비해 술도 한잔 곁들였다. 뉴질랜드 크레이그 박사님이 와인 한병을 가져와 따라주며, 올해 합동캠프가 무탈하게 끝나기를 기원했다. 

케이프할렛 캠프에 일년만에, 아니 8개월만에 다시 돌아왔다. 일년이 순식간이다. 캠프지앞에는 여전히 그림같은 남극의 풍광이 펼쳐져있다. 진짜 남극이 이런 느낌일까.. 현실감이 둔해지는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밤이 늦도록 해가지지않는다. 백야의 심야에 환한 텐트안 침낭에 누웠다. 멀리서 아델리펭귄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일은 펭귄을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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