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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Jan 04. 2019

아델리펭귄 나라의 황제펭귄

2018.12.30. 캠프일기

황제펭귄이 나타났다. 

캠프지에서 쉬며 책을 보고있는데 서강사님이 무전으로 나를 찾았다. 캠프 복귀 예정일은 벌써 3일을 넘겼고, 오늘도 날씨가 좋지않아 헬기는 오지 못했다. 하릴없이 하늘이 뚫리기만을 바라는 중이었다. 서강사님은 촬영을 나갔는데 간혹 특이한 펭귄이나 자연물을 발견하면 무전으로 나에게 알려주곤 했다. 어제는 다친 펭귄이 있다며 연락을 했었는데 오늘은 또 어떤일일까. 

무전기를 들어 응답했다. 잠깐 뜸을 들인 서강사님이 무전으로 황제펭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보냈다. 황제펭귄이라니? 케이프할렛에 오면서 기존에 이지역에서 기록된 조류목록을 살펴본 적이 있다. 문헌에는 황제펭귄과 더불어 여러 조류가 이곳에서 기록되어 있었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때 그런 조류들을 만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세번째 방문 중에도 아델리펭귄과 도둑갈매기 이외의 다른 새들을 만나는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간혹 높게 나는 눈풀마갈매기나 저녁시간 한두마리의 윌슨바다제비를 본것이 이지역에서 관찰한 조류 목록의 전부이다. 그런데 황제펭귄이라니!

카메라를 챙겨 아델리펭귄 번식지로 향했다. 이박사도 따라 나섰다. 멀리 펭귄 번식지 사이에 초록색 옷을 입은 서강사님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니 정말로 큰 덩치의 황제펭귄이 마치 아델리펭귄인양 아델리 번식지의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델리펭귄보다는 키가 하나 쯤 더 크고 덩치는 다섯배쯤 되는 황제펭귄이 아델리 사이에 있으니 무언가 어색해보였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아델리펭귄은 신경도 쓰지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황제펭귄의 번식지는 약 20키로 떨어진 케이프로제이다. 바다를 오가는 펭귄에게 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수도 있지만 지금은 해빙이 녹지 않은 시기라 이곳에 오려면 해빙위를 걸어와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왔을까. 황제펭귄은 피곤한지 자꾸 고개를 날개죽지에 파묻었다. 그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쉴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우리때문에 휴식에 방해를 줄수는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황제펭귄의 번식지에서 아델리펭귄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황제펭귄의 번식지에는 언제나 한두마리의 아델리펭귄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아델리펭귄이 황제펭귄의 번식지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해빙위의 황제펭귄 번식지는 바다에 가까워 지나가던 아델리펭귄이 쉬어가기 나쁘지 않은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 해빙이 끝도 없이 펼쳐진 케이프할렛이 아닌가.. 길을 잃은 것인지, 아델리펭귄을 따라온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딱히 몸에 상처를 입거나 다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자리를 피해주자 황제펭귄은 부리를 날개에 끼우고 잠이들었다. 작은 아델리펭귄들 사이에서 황제펭귄은 커다란 석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하늘은 맑게 개어 기지에서 헬기가 출발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짐을 꾸리는 와중에 황제펭귄 생각이 났다. 아침일찍 서강사님이 확인하러 가보니 황제펭귄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우리 캠프가 길어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 할 인연이었다. 아마도 우리의 복귀를 기원하는 황제펭귄 대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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