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우 Jan 12. 2019

춥지않다.

20181127.캠프일기.

작년 캠프때는 텐트안에서 일어나 침낭 밖으로 나가는 것이 죽을것같아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차가운 작업복을 걸치면 냉기가 속까지 밀려들어 왔다. 땡땡 얼어있는 신발은 내 신발이 아닌 듯 발을 밀어넣기가 어려웠다. 새벽에는 텐트벽 안쪽에 얼어붙은 성애가 약한 바람에 텐트안에서 눈처럼 내렸다. 답답해 침낭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차기운 공기가 침낭안으로 훅 들어오고, 얼음조각들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자러들어갈때와 아침에 나올때가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자는 도중 5번 이내로 깨는 날은 그나마 추위가 덜 한 날이었다. 한시간에도 여러 번 추위에 눈이 떠지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춥지않다. 침낭밖에 나와도 딱히 춥다는 생각이 안들고 결정적으로 신발이 얼어있지 않다. 오늘은 특히나 따뜻했다. 자면서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자도 별로 춥지 않고, 아침에 침낭밖으로 나와도 강렬한 햇빛에 텐트안에 온기가 돌았다. 바람없이 맑은 날에는 작업복 안에서 땀이 흘렀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이런날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극 내륙에서 여러 번의 캠프를 경험한 안전요원인 서강사님은 그곳에서의 캠프 경험을 들려주었다. 최고온도(최저가 아니다)가 영하 25도인 곳에서 침낭안에 들어가도 한시간 넘게 추위에 떨었다고 한다. 우리보다 두꺼운 침낭을 쓰는데, 침낭에는 영하 40도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써있었다. 경험해본 바로는 그 온도는 따뜻하게 자는 온도가 아니라 단지 견딜 수 있는 온도인 것 같다고 했다. 핫팩 여러 개를 뜯어 침낭에 넣고, 물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안고 잤는데, 첫날에는 하나의 물병을 들고갔다가 하나씩 늘어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는 물병을 네개식 들고 침낭안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 캠프는 그리 추운편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추위는 남극을 여러 번 다녀봐도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남극을 다니기 전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맑은 하늘.. 그리고 추워지면 날아드는 겨울 철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안경을 들고 집근처 하천에만 나가도 다양한 오리들과 겨울철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 때도 있었지만, 어디든 건물안에만 들어가면 금방 몸을 덮힐 수 있고, 추운날 먹는 오뎅국물은 또 얼마나 맛있는가. 그 때는 여름과 겨울 중 어느 계절이 좋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겨울!이었다. 남극을 다니면서, 이제는 그 물음에 나 스스로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한밤에도 30도가 넘는 기온 때문에 잠자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죽겠다!!라는 말은 진짜 죽을 것 같았던 지난 겨울의 남극 캠프에 비하면 농담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2017년 3차캠프. 많은 눈이 내린 아침에 텐트밖을 나오니 텐트가 눈에 묻혀 있었다.
2018년 1차캠프. 연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됐다. 

남극에서 번식하는 동물들도 온도에 민감하다. 아직 어린 새끼를 키우는 펭귄과 도둑갈매기도 추운날에는 어김없이 둥지에서 새끼들을 품고 바람을 막아주었다. 바람이 없고 따뜻한 날에는 새끼들이 둥지밖으로 나와 바닥에 누워 자거나, 입을 벌리고 열기를 내뿜었다. 거의 다 자란 새끼들의 경우 추운날에는 자기들끼지 모여 몸을 맞대고 서로 체온을 나누었지만, 따뜻한 날에는 모여있지 않고 번식지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도둑갈매기도 마찬기지다. 날씨가 좋은 날에 새끼 도둑갈매기는 둥지를 벗어나 병아리처럼 아장아장 걸으며 돌틈 사이를 돌아다녔다. 보호색을 띈 새끼들은 일부러 찾지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숨어있고, 둥지에 머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밤이 찾아와 기온이 내려가면 둥지로 돌아와 어미의 날개품에 들어가 밤의 추위를 견뎠다. 어미는 그자리에서 꼼짝 않고 새끼를 품어주었다. 날개 죽지 사이로 고개만 내민 새끼들을 보면, 집에있는 가족과 아이가 떠올랐다. 자기 새끼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사람이나 펭귄, 도둑갈매기가 차이가 없었다. 

눈바람이 부는날. 펭귄 어미들이 새끼펭귄을 품고 있다.
기온이 낮은날에 보육원의 새끼들은 서로 모여 체온을 나눈다. 
바람없이 따뜻한날. 펭귄 새끼들이 번식지에 널부러져 자고있다.
도둑갈매기 새끼도 추운날엔 어미 날개죽지 속에서 추위를 피한다. 얼굴만 내놓은 모습이 귀엽다. (사진은 세종기지에서 촬영. 갈색도둑갈매기다)
새끼 도둑갈매기는 둥지를 벗어나 돌아다니다, 날이추워지면 둥지로 돌아가 어미품속으로 들어간다.

춥지 않은 것은 좋지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니 좋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번식지의 배설물 냄새다. 온도가 올라가면 펭귄들이 싸놓은 배설물들이 녹아 흐르고, 번식지 곳곳에 똥 웅덩이가 생겨났다. 번식집단 사이사이는 똥물의 강들이 생겨났다. 영상의 온도에 똥들은 썩고, 그 냄새는 캠프지에 까지 날아왔다. 펭귄번식지에 다녀오면 옷에 밴 냄새가 한동안 빠지지 않았다. 세종기지에서 연구를 할 때는 매일 빨래와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캠프지에서 빨래와 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먹을 물도 간신히 빙하를 캐와 녹여먹는 상황에서 씻을 물을 만드는 것은 한정된 연료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더구나, 정화시설이 없는 남극 캠프지에서 세제나 샴푸로 환경을 오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펭귄의 냄새를 탓할 수는 없다. 일주일 넘게 캠프지에서 생활하고 나면 내 몸에서도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하니 땀도 많이 나고, 냄새도 더 많이 났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낫다. 

펭귄 번식지에 똥물의 웅덩이와 물길이 생겼다. 냄새가 지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델리펭귄 나라의 황제펭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