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남자/19층 투신/의식 없음/119 이송 중/10분 후 도착‘
새벽 5시. 날카로운 메시지 알람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날라와 내 고막에 박혔다. 중증 외상 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권역 응급외상센터에서 임상 실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일같이 당직을 서며 사선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이미 수십 명이나 보아왔던 터라 외상 소생실로 달려가면서 피곤함 이외에 별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소생실에 도착했을 때, 분주한 의료진들 사이로 작고 하얀 소년이 누워 있었다. 복부의 거대한 혈반(血斑)과 떨어지면서 나뭇가지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턱 밑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외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팔다리에 꽂혀있는 여러 개의 링거 줄만 없었다면 19층에서 떨어진 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곧이어 심폐소생술이 진행되었고, 나는 소년의 위에 올라 가슴 압박을 시작하였다. 체중을 실어 힘껏 가슴을 눌렀을 때, 두 손은 예상보다 깊이 그대로 들어갔고, 곧이어 멈춰 선 심장의 물컹거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아이의 복장뼈는 두 동강 나 있고, 대부분의 갈비뼈는 산산이 조각나 있다는 것을. 폐와 심장을 비롯한 수많은 장기가 터지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가 복강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허공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 14살 어린아이의 마음이 느껴진 것은 왜였을까. 기관 삽관을 위해 젖혀진 아이의 턱 밑으로 상처가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턱 선을 따라 길게 난 상처 위로 흘러나온 검붉은 피가 굳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밖으로 터져 나온 아이의 마음 같았다. 가장 깊숙한 내면에서 서서히 자라 올라, 내부의 장기와 뼈들 모조리 부수고, 몸의 가장 바깥쪽 표피를 찢고 기어이 삐져나온 검붉은 마음. 소생술이 끝나고, 아이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진 이후로도 난 우두커니 서서 한참이나 그 마음을 바라봤다. 문득 작년 이맘때쯤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뵈었던 한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아주머님의 진단명은 ‘주요 우울 장애’ 소위 말하는 우울증이었다. 실습의 일환으로 그분과 일주일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뵙고 인사를 나누기 전 전공의 선생님과 아주머님의 차트를 검토했다. 차트에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삶이 담겨 있었다. 평생을 일궈온 사업 실패로 인해 찾아온 무기력과 우울감, 이어진 몇 번의 자살 시도. 폐쇄병동의 출입구를 지나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작고 아담한 체구의 50대 여성분이 자신의 손등을 멍하니 응시하며 앉아 계셨다. 어떻게 이런 작은 몸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 수 있었을까. 마음이 아려왔다. 한시라도 빨리 질척한 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려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오만은 아주머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 지 단 몇 분 만에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안녕하세요. 임상실습 학생 심재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씩씩하게 건넨 첫인사에 아주머님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셨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발끝부터 신경을 따라 서서히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초점 잃은 눈동자에는, 짙은 검은색의 슬픔이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처럼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내 그 시선은 천천히, 그리고 너무나 힘없게 다시 당신의 손등을 향했다. 이어지는 침묵. 우울감이 병실의 공간을 빠짐없이 채워 내 기도를 사방에서 묵직하게 조여 왔다. 그 숨 막히는 압박감에 ‘기분은 좀 어떠세요?’라는 다음 문장이 도저히 목을 넘지 못했다. 정신과 교과서에서 읽은 상담 기법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채 오 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과적 치료는 치료자가 환자가 사정없이 뿜어내는 감정의 무게를 정면으로 이겨 낼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약의 도움으로 아주머님의 상태가 호전되고 나서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시냐는 내 질문에 그분은 나지막이 대답해 주셨다. “차라리 외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난 이렇게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몸에 상처는 하나 없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해요... 정말, 이 아픔이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면...” 슬픔의 무게를 싣고 손등으로 무겁게 떨어지는 아주머님의 눈물을 보며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입학 이후로 몸 밖의 상처는 물론, 내부 장기에 보이지 않는 작은 혈흔까지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에 대해 공부해 왔다. 하지만 환자의 깊숙한 내면 한구석에 난 상처는 그 어떤 고성능의 CT 로도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최신 검사지에서도 이상 소견으로 기재되지 않는다. 상처의 깊이가 환자의 복장뼈를 관통하여 심장을 뚫을 만큼 치명적이어도 말이다. 그동안 나는 환자의 상처 받은 마음이 곳곳의 장기 터트리고, 뼈를 부수고 끝내 피부를 찢고 검붉게 나오기 전에,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해왔던가.
소년의 턱밑에 그어진 검붉은 마음 덕분에, 아주머니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말씀 덕분에 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의사는 환자의 드러난 상처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환자의 내면도 온 힘을 다해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만약 의사의 무관심으로, 혹은 감정의 무게감을 버텨내지 못해 환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내상(內傷)을 놓쳐버린다면 그것이 서서히 자라나 언젠가 손목에서, 가슴에서 혹은 턱 밑에서 외상(外傷)으로 드러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걸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