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나는 해외에서 두번째 생일을 보냈다. 잠잠하고 고요했던 그날을 온전히 품에 안아 보관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던 날이었다. 나에게 생일이란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을 맞이함으로써 나는 내 존재를 확인했다. 항상 가까운 누군가가 잊지 못할 정도로 따뜻한 축하를 보내왔으며 나는 그 따뜻한 축하를 느낀 이후로 생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면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는 날이겠지만, 내 스스로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해 주냐에 따라서 생일은 정말 잊지 못할 날로 변하기도 한다. 문득, 나는 생일만을 기다리며 매년 버티며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스물한 살 언저리까지는 선물들을 정말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정말 친한 친구들부터 서먹하던 친구들에게까지 많은 선물들을 받았었다. 모아서 보면 방바닥이 가득 찰 정도였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선물들을 다 모아 두고는 사진을 찍고, 그동안의 인간관계에 보답을 받는 듯한 느낌을 만끽했다.
그런데 군대를 가고 그 이후로 나이를 점점 먹어감에 따라 생일의 특별함은 예전 같지 않았다. 주변 이들은 예전처럼 내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주지 않았다. 난 스스로 기대와 실망을 하기도 무색하게 주변의 그런 흐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점점 인지하게 됐다. 다들 바빠지고 품은 줄어들었으며 점점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목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원래는 1년에 몇십 명의 생일을 일일이 챙겼다. 내가 느꼈던 생일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반복되는 기념일에 무뎌지고, 여유가 줄었다. 그럴수록 메신저에 뜨는 주변 사람들의 생일 알림은 점점 무시하기가 쉬워졌다.
나이를 먹으며 나는 깨달아가는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평가를 항상 걱정해 왔지만, 사실 남들은 나에게 그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는 너무 중대한 고민과 사건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다 마주친 찰나에 불과하며, 그 사람들은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도 나의 중대한 소식을 잊어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기대와 사랑, 실망과 이별을 겪기에 앞서 나 자신과 먼저 건강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그 관계가 돈독해야 남들의 반응에 감정이 좌지우지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고로 나는 내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친구나 가까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의 축하가 탄탄한 기반으로 깔려야 우린 온전하게 존재하여 바른 시선으로 축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꼬아서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온전히 받는 것도 결국 여유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그 여유를 스스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번 생일에도 나는 스스로 생일을 기념했다. 그 방법은 2가지였다. 첫 번째는 밤 12시가 되어 내 생일이 되었을 때, 콘도 1층에 내려가 비치체어에서 한 시간가량 책을 읽었다. 누군가의 축하를 기다리거나 케이크를 써는 것이 아닌 나만의 의미부여였다. 덕분에 이리저리 퍼질 듯했던 정신이 차분하게 자리하여 기분 좋게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낮이 되었을 때,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밥을 챙겨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토마토 안에 바질과 레몬, 각종 소스로 요리한 밥이 들어가 있던 그리스 음식은 정말 내 취향이었고, 나에겐 최고의 생일 케이크였다.
생일에 대한 기념과 축하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봤던 이번 생일은 어떤 생일보다도 소박했지만, 그럼에도 난 온전하여 처음으로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