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남미로 이끈 영화 <해피투게더>
세상의 끝에 슬픔을 버리고 돌아오면, 그 슬픔이 다시 나를 따라오기 힘들까.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보영'과 헤어져 슬픔에 빠진 '아휘'에게 '장'은 세상의 끝에 그의 슬픔을 묻어줄 테니, 목소리를 녹음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장이 떠난 곳은 '우수아이아'였고, 내가 남미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보던 당시, 취업을 미루고 방황하던 때라 나도 '우수아이아'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서른이 되기 전,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결심과 함께 '29살 남미 여행'을 버킷리스트 가장 높은 곳에 적었다. 여기서 '29살'로 정한 데에는 당연히 '서른 전'에 있었다. 서른이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될 줄 알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져 반 뼘쯤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낯섦과 날것의 경험은 보다 포용을 넓힐 수 있을 거란 야심 찬 포부를 가졌었는지도 모르겠다. 멀게만 느껴졌던 서른이 이제 정말 코 앞이다. 어른이 되기는커녕 어른의 정의조차 모르겠다. 배 째라. 어른되기 싫다. 투정하는 스물아홉 살이 여기 있다.
어린애라고 투정했다간 핀잔받기 쉽고, 어른인 척했다간 애송이 취급받을 수 있는 애매한 나이. 그러나, 애매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눈치 보지 않으며, 다른 건 몰라도 제 몸 하나는 책임질 수 있는 나이. 떠나기 지금보다 적당할 때가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지난 4년 간 나는 스물아홉이 되면 남미로 떠날 거야,라고 줄곧 말해왔기에 부모님도 '이 딸내미는 어떻게든 떠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고, 또 대내외적으로 많이 말해둔 터라 안 가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약속 못 지키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더욱더 다행스러운 것은 현 회사에서 3년 근무자에게 한 달의 안식휴가를 주어, 삼박자(의지, 돈, 그리고 시간) 고루 갖춰 이젠 정말 떠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처음 우수아이아를 포함해 남미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올릴 때의 마음가짐과 지금은 전혀 같지 않다. 여행 준비를 하며 마냥 설렐 줄만 알았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리면 설레지만은 않는다.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하루 걸러 최소 4시간에서 최대 10시간 야간 버스까지 타야 하는 이동 스케줄, 듣기만 해도 괴로운 고산병, 열악한 도로 사정과 숙박시설, 스페인어 능력 없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라고 말하기엔 너무 편하고 쉬운 여행에 길들여졌고, 심각할 정도로 바닥난 체력은 여행이 2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답도 없다. 여행이 다가올수록 점차 걱정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떠난다.
"남미까지 왜 가요? 마추픽추 보러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가야 될 거 같아요."
떠나야 비로소 내가 그토록 떠나려 했던 그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어떤 걸 찾거나 깨달으려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일상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의 회피일 수도 있겠으나, 슬픔과 역경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어른이 되는데 한 발짝 다가가고 싶다.
'춘광사설(春光乍洩)', 영화 <Happy Together>의 홍콩 원제다.
'잠깐 비치는 봄 햇살'이라는 뜻으로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찰나였고, <Happy Together>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사랑에는 아픔이 따랐으며, 함께 있어도 고독했다. 모든 삶, 사랑과 행복에는 필연적인 역설이 따른다. 그렇지만 잠깐 비치는 봄 햇살처럼 찰나의 그 순간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앞으로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 햇살 속 내가 지나온 뜨거웠던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떠나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