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하는 직장인의 자세
남미 여행에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과거 스물세 살에 3주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그때 얼마나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세우고, 또 철저히 지켰던 지. 계획했던 기차 노선을 시간에 맞춰 모두 탑승했다. 물론, 한국에서 가능한 모든 노선과 숙소를 모두 미리 예약하고 떠났기에 추가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면 계획을 모두 완수해야 했다. 남미 여행에도 계획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여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까지 첫 도시의 숙소 이외에 진행된 사항이 없다. 워낙 연착과 당일 취소가 빈번 남미의 교통인프라와 현지 상황 때문에 오히려 미리 계획을 세우면 현지에서 더 당황할 수 있다는 여러 후기가 대신 변명을 해주고 있다. 더 솔직해지자면 계획 세우기에 쏟을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다.
가면 다 하게 된다는 깡으로 밀어붙이기엔 그곳은 너무 멀고 낯설다. 또 나는 그만큼 여행 고수도 아니다. 여행 직전까지 출근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독 풀 시간은 고작 하루인 직장인으로 빠듯하게 준비했다. 여행 전날까지도, 아니 여행지에서도 고군분투하게 될 거 같다.
모든 여행에는 여행자의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요소가 존재하는 거 같다. 가령 패키지여행이라고만 하더라도 본인이 어딜 가고, 뭘 보고, 뭘 먹을지 결정할 수 있는데, 자유여행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때 여행자의 상황적 요소가 선택에 고려될 것이다. 나의 상황적 요소는 이렇다.
1. 35일간의 짧은 여행 기간
한 달간의 안식휴가에 남은 연차까지 챙겨서 35일의 여행 일정을 뽑아(?)냈다. 여유롭게 한 도시에서 여러 날을 머물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기에 35일은 너무 짧고, 남미대륙은 또 너무 크다. 꼭 가보고 싶은 도시들을 추려 (나름대로) 최선의 동선을 찾아냈지만 여전히 35일은 부족하다. 모든 도시에 하루쯤 휴식을 넣고 싶었지만, 나에게 다음 남미 여행이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가능한 계획한 모든 도시를 방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동에 버스보다는 비행기를 선택할 것이고, 보다 더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여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2. 다소 풍족한 예산
나는 장기 배낭여행자가 아닐뿐더러 택시비 몇 천 원, 숙박비 몇만 원을 아끼기 위해 굳이 수고로운 여행을 하고 싶진 않다. 돈을 아끼려면 이동하는 데 혹은 걷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하거나, 숙박은 치안이 좋지 못한 곳에서 묵게 될 가능성이 있다.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 두 푼 아끼려고 "안전"과 "위생"을 포기하며 위험에 나를 두고 싶지 않다. '다음 달의 나와 그다음 달의 내가 모이면 헤쳐나가지 못할 카드값은 없다'라고 믿으며... 돈 때문에 망설이는 여행은 하지 않을 거다.
3. 충분하지 않은 여행 경험
매년 한 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지만, 확실히 남미 여행은 도전이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여행해 본 적도 없고, 주변에 남미 여행을 했다는 사람도 아직 없다. 게다가 치안이 매우 좋지 못하다는 후기가 넘쳐 난다. 스페인어도 할 줄 모른다.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고 항상 경계하고, 또 여행자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해야 한다. 위험 요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가능한 검증된 후기가 많은 '현지 투어'나 '숙소' 등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아마 나는 현지인들의 삶에 녹아드는 여행자이기보다는 잠시 구경온 관광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5일 동안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보고 느끼는 것과 밟는 땅의 감촉에 내 모든 감각들을 집중할 수 있는 이 기회는 용기를 낸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