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뭘 놓치고 있던 걸까
이 글은 2021년 11월 16일에 처음 썼고, 2024년 3월 7일 다듬고 덧붙인다.
(굉장히 외향적이거나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닌데, 당시 일주일에 약속이 8개였다. 부모님 조차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주 전에 약속을 잡아야 할 정도로 매일 밖으로 나돌았다. 한창 클라이밍에 빠져서 '클친자'(클라이밍에 미친 사람)를 자처하던 시기였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곧잘 꾸던 꿈을 요샌 잘 꾸지 않았다. 아니 꿀 틈이 없었달까. 잠자리에 들어서 잠에 빠지는 데 까지 시간이 줄었고 깊은 잠에 빠졌다. 한마디로 늘 곯아떨어진다. 매일 피곤한 탓이다. 잠들기 전 잡생각이나 고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도 어째 잠을 잘 수록 더 잠이 고프고, 피곤하고, 근무시간에는 여지없이 무기력하기도 하다. 어쨌건 앞선 3주간 동안 매일 일정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클라이밍을 주 3회씩 했다. 늘 이렇게 지내는 사람처럼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활기가 넘쳤고, 긍정적으로 보여야 했고 즐거워야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외로움의 발로인 건가. 그러나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처음 발견한 양 신기하고 진심으로 즐거웠다. 물론 여지없이 집에 돌아와서는 뻗어버렸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근래 두 번의 꿈을 꾸었다. 둘 다 비행기를 놓치는 꿈이었다. 늘 꾸던 패턴(주로 미로나 창이 없는 방에 갇혀 출구를 찾아 탈출하는 꿈, 그러나 탈출한 적은 없다)과는 조금은 다른 꿈이었다.
첫 번째 꿈에서 나는 바닷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마 친구와 함께 여행을 모양이다. 친구는 어디 가고 없고 함께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곳에 좀 더 머무르겠다고 했다. 친구를 설득해 같이 떠나려고 했는데, 친구는 확고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어쩔 셈인가 속을 태웠다. 꿈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친구를 두고 혼자서라도 비행기를 타러 갔을까.
두 번째 꿈은 좀 더 간단했다.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이 촉박한데,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택시가 잡힌다고 해도 제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할 공산이 더 큰데 택시 잡는 행위가 의미가 있나. 그냥 포기하고 다른 비행기를 예약할까 고민하다가 꿈에서 깼다. 나는 택시를 타고 늦게라도 공항에 도착했을까. 혹시 비행기가 연착되어 늦게 온 나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주로 꾸는 꿈에서 늘 탈출하지 못하고 잠에서 깼던 것처럼, 나는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아마 더 오래 꿈에 머물렀다고 해도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을까. 꿈은 내 무의식을 곧잘 투영해 방영한다. 매우 직관적인 해석을 해보자면, 비행기를 탄다는 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것 즉 이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 그러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탈 수 없는 상황에 자꾸만 발목 잡힌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현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조금 다른 식의 해석도 해볼 만하다. 꿈속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택시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나. 분명 뭔가를 갈망하고 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고 놓치고 있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 떠들고, 어느 때보다도 몸을 과하게 써서 운동하며 몸과 정신을 고단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언가를 놓치기 위해 일부러 전에 없이 과하게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나에게 무의식이 꿈을 통해 시그널을 주고 있는 게 아닐지. 지금 뭘 놓치고 있는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볼 시기라고.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한국에서 제일 먼 도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내렸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는 다행히 비행기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도 일 년 반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뭐를 놓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전긍긍하고도 있지만, 뭐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생 깨닫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감이 엄습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