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4-35 한국으로 돌아가는 44시간, 그리고 그 후 4년
드디어 남미 대륙에서 마지막 밤이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돌아와 와인 샵에 들러 와인 세 병을 구입했다. 앞서 말벡 와인에 처음 눈 뜬 이야기를 (꽤 장황하게) 했는데, 와인 샵에 들어서니 대부분의 와인이 말벡이다. 비로소 말벡이 포도 품종이고,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방이 말벡으로 유명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요전날 마신 동일한 와인은 찾지 못했지만, 적당한 가격대의 와인 세 병을 샀다. *면세 범위는 주류 2병(2리터, 400불 이하) **자진 신고로 와인 가격만큼 세금으로 냈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마지막 밤을 기념할 맥주를 사러 호스텔 앞 슈퍼로 들어갔다. 계산하는데 캐셔가 한국인이야?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왔다고 말해줬다. 엄청 잘 생겼다고 하길래 뭔가 싶었는데, 호스텔로 들어서니 시끌벅적하다. 이곳에서도 김재중 씨가 촬영 중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인 민박에 이어 이구아수의 호스텔에도 동행을 구하러 왔다. (*TMI, 우리를 알아본 작가가 다가와 그와 재회하는 그림(?)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연예인을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이나 보다니 신기했다.
우리는 촬영을 피해 뒷마당에서 마지막 밤을 조촐하게 기념했다. 고작 맥주 한 캔이었지만, 그간 술을 멀리 했던 탓에 약간에도 술기운이 올랐다. 그리고 그 어느 때 보다도 깊은 잠에 빠졌는데, 생각해 보니 지난 며칠간은 약 없이 잠에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르헨티나에 오면서부터 몸과 정신이 여행 컨디션에 적응했던 것 같다. 이제 막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이유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날은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도 몸이 개운했다. 마지막으로 짐을 점검하고, 이른 조식을 먹으며 오랜 이동을 할 채비를 했다. 전날 호스텔 스텝에게 브라질 이구아수 공항으로 갈 택시를 불러달라고 미리 요청했다. (*국경 넘을 택시는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택시가 예정 시각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마음을 조금 졸였지만,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출입국 사무소을 무사히 지나 브라질로 이동했다.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시내에서 브라질 이구아수 공항까지는 출입국 관리소를 들러야 하지만, 거리상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공항보다도 가깝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이구아수에서 브라질의 상파울루나 리우데자이네로로 이동할 때, 국제선보다는 국내선이 훨씬 더 저렴하고 비행 스케줄도 더 많아서, 브라질 이구아수 공항(Foz do Iguaçu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택시(혹은 버스)로 이동, 국내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시간 40분 비행 후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리턴 티켓의 출발이 상파울루였다. 반 시계 방향으로 도는 남미여행의 최종 마지막 도시로 브라질의 상파울루나 리우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치안에 대한 우려가 많은 도시라 나는 스킵하기로 했지만 어쩌다 보니 상파울루에서 아웃하는 티켓을 끊게 된 거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잠시 공항 밖 외출도 생각해 봤지만, 무리하지 않고 공항 내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남아 있던 현금 달러 15불과 아르헨티나 200페소를 브라질 헤알화로 환전해 공항에서 식사를 했다. (*브라질도 물가가 비싸다. 부족한 금액은 카드 결제함) 공항에서 약 10시간 대기하고(다행히 와이파이 빵빵), 11시간 30분의 비행 후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 또다시 히드로 공항에서 5시간을 대기, 11시간 비행 후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 숙소에서 나선 이후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꼬박 44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그 이틀 동안 여행이 끝나지 않고 계속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당장이라도 다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이 아닌 어디라도 내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진짜 내 공간으로 돌아가 떡볶이와 순두부찌개를 먹을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가장 컸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만 여행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은 상태라 과연 긴 비행을 잘 견디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것들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잠을 자지 못하거나 가끔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때가 있긴 했지만, 고된 여행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배낭 여행객이 종종 겪는다는 불미스러운 사건도 없었고, 우려스러운 치안 상황에 놓인 적도 없었다. (도시 내) 상황과 내 몸 컨디션에 따라 여행 일정을 수정하면서 못하게 된 것들도 있지만, 꼭 가 보고 싶었던 곳들(페루 마추픽추, 볼리비아 소금 사막, 아르헨티나 세상의 끝 등대)은 놓치지 않아서 그밖에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었다. 여행 자체의 아쉬움보다는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전혀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 정신없고 숨 막히는 출근길, 늘 초라하기만 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게 슬펐다. 그러나 내 불안과 우울의 근원지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 여행 끝에 비로소 일상에서도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의 해피엔딩은 결코 오지 않았다. 이 여행이 끝난 지 꼭 4년이 지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 연재를 이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지난 4년은 그 어느 때보다 게을렀고 무기력했기에 글 쓰기도 힘에 부쳤다. (안 써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뭔가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정말 꾸역꾸역 썼다. 종종 즐겁기도 했다.)
여행(19년 12월에 돌아왔다)이 끝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고, 외출을 삼가는 대신 6개월 동안 운동과 식단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15킬로를 감량했다. (*체지방률 8%까지 뺐다. 몸무게의 25%를 줄였다.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집착이었다.) 30년 만에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을 결심하고 대출을 위해 은행에 재직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바로 전 날,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해고 이후에 어찌 회사에 계속 남게 됐는데, 회사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서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서 망연히 함께 침몰하는 심정으로 힘겹게 출근을 이어갔다. 망한 건 회사인데, 꼭 내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불안 증세에 더해 매일 자괴감에 휩싸였고, 자존감도 밑바닥을 드러냈다.
줄곧 19년도 여행 가기 직전이 가장 힘든 시기라 말했는데, 역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이 보다 힘든 시기가 또 있을까 싶지만 언제나 있고, 겪어도 면역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운동을 하다가 발목 인대를 크게 다친 날, 발목 통증을 핑계 삼아 펑펑 울었다. 절뚝이며 겨우 집으로 돌아와 옷도 벗지 못하고, 불도 켜지 못한 채 거실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한참을 울며 생각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그리고 다음 날 발목 깁스를 한 채 집으로 돌아와 별안간 아르헨티나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이전부터 고민은 하고 있었지만, 결정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지막 출근하고 이틀 후, 나는 아르헨티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22년 9월이었다.)
그곳에서 6개월을 놀고 놀고 또 놀다가, 노는 게 너무 지겨워져서 한국에 와서는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놀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 간 늘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했다. 모든 게 명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뭘 해야 행복한 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괜찮은 인간이고 싶었는데, 늘 방황하고 도피하는 삶을 사는 내가 불쌍했다. 다시 아르헨티나로 떠난 데에는 가족, 친구도 없이 오로지 혼자 있는 동안 나를 톺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또 그 먼 데까지 가서도 혼자 살아냈는데, 한국에 와서 못 할 게 뭐가 있겠나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확실해졌고, 뭘 해야 되는 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사실 그냥 일하는 거 싫어 노는 게 제일 좋아)
여행은 결코 나를 바꾸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는 행위를 현실 도피쯤으로 여기고, 인천 공항으로 돌아올 때는 짜라란 새로운 버전의 내가 도착했습니다,를 꿈꿨지만 나는 어디서나 나였다. 물론 여행은 어느 정도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일상으로 복귀하면 이내 나로 돌아갔다. 다시금 불안을 더 크게 받아들이고, 과잉된 자의식에 스스로 고립되어 갔다. 어쩌면 여행을 통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과잉된 자의식과, 그 여행이 내 삶에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매기려 하다 보니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결론: 여행도 즐거울 때 가야 더 즐겁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여행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신기하게 대자연이나 낯선 풍경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순간순간 지배했던 감정들이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새겨지는 경험, 심연의 외로움은 결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느꼈던 모순된 해방감, 그리고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많은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또 살게 한다. 나는 언젠가 또 떠나겠지만, 다음에는 새로운 버전의 나를 기대하며 떠나는 대신 그저 생의 감각을 다시금 새기기 위해 또 잊지 않기 위해 떠나고 싶다.
그럼 그때까지 또 외로이, 부지런히, 그리고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