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_1730_2330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오전에 운동 다녀오고, 오후에는 스페인어 공부하고, 야구 중계 챙겨봤다(KT 구장이 가장 가까워 응원하기로 했다). 지난주 초 월/화에는 각각 친구들과 브런치/클라이밍 약속이 있었는데, 그 후 3일 동안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정확히 따져보면 한국어 발화량은 거의 제로다. 스픽이라는 영어회화 앱을 통해 영어, 유튜브를 통해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영어와 스페인어로의 발화량은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그렇게 3일 내 대화다운 대화를 전혀 하지 못하고 여전히 계속 부유하되 침잠하는 무기력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오랜만에 걸려 온 엄마의 전화가 72시간의 정적을 깰 유일한 창구이었는데, 그 마저도 울적한 기분을 그대로 실어 전화기 너머로 보냈다. 아니, 오히려 전화를 빨리 끊고 싶어 부러 그랬다. 불효자식이다.
더불어 요즘 전에 없던 운동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유일한 외출이기도 하고 그나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운동 의지의 100프로를 실행한다면, 유산소로 천국의 계단을 10분씩 탔어야 맞지만 지난주도 유산소 운동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맨몸 풀업 5개를 목표로 풀업머신의 중량을 낮춰가며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풀업머신은 중량이 낮을수록 본인의 몸무게를 들어 올리는 힘이 더 많이 필요하다.) 2주 전에 45kg에서 시작했는데, 벌써 35kg까지 중량을 낮췄다. 또 푸시업도 이제 하나는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웨이트 동작에서 시작했던 중량이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만, 여전히 몸무게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날은 조금 늦은 OFF
1730 - 1800 청소기 돌리기 + 바닥 걸레질
1810 - 1830 저녁) 토스트 w. 피넛버터 + 바나나 반 개(제발 야식을 먹지 말아야 할 텐데)
1830 - 1905 명상
지난 로그아웃 시간에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마음을 비우고 개운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달리, 짧은 명상 끝에 오히려 가쁜 숨을 토해내며 숨을 골라야 했고, 끝내 눈물까지 날 뻔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였으나, 그날 저녁 조금 더 심란해졌을 뿐이었다. 오래된 침묵과 무기력은 이미 내 오랜 친구였다.
이 날은 좀 더 편한 소파에서 진행했다. 어떤 생각이 의식으로까지는 떠오르지 못하고 무의식을 건드려 눈물이 났는지 알아내야겠다. 그래서 좀 더 긴 명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15분 호흡 가이드 그리고 15분은 혼자서 명상. 호흡 가이드를 따라 온몸 구석구석 의식을 훑는다. 이내 가이드가 멈추고, 고요한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린다. 이번에는 내 의식을 한 데 집 중 할 수 있는 아몬드 크기의 어떤 창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 아몬드 크기의 창은 햇살이 비쳐 들어오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푸른빛이 그 너머에 있다. 그 빛에 집중한다. 빛이 흐려지려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의식도 흐려지려나보다. 빛이 흐려지지 않도록 계속 의식을 한 데 모으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별안간 '똑똑'하는 소리에 의식이 돌아온다.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를 깨우는 소리였다. '앗, 나는 앉은 자세로 졸았구나.' 그러고 나서는 반쯤 희미해진 의식으로 멍하니 앉아있다가 명상이 끝나고 다음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로 넘어가며 음악 소리가 커지자, 마침내 완전히 깨어났다. 마음을 비우되 의식은 깨운 채 명상하는 게 쉽지 않은 거구나.
1920 - 2030 오랜만에 호수공원 산책
오랜만에 러닝화를 신었다. Gym에 갈 때면 (러닝머신을 탈 생각이 전혀 없기에) 웨이트 하기 적합한 평편한 운동화만 신다가 오랜만에 러닝화를 신으니 다리가 한결 가볍다. 날씨도 선선해졌겠다, 이제 다시(?) 러닝을 시작해 볼까 싶어 가볍게 달려본다. 아주 잠깐.
2030 - 2110 글쓰기
호수 공원까지 도보 3분 거리에 살다가 이사했어도 고작 15분 거리에 살면서도 한동안 산책을 하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진 탓도 있고, 산책하기 여전히 추운 탓이라는 핑계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호수에서 20대 여성의 시체가 떠올랐다. 마침 섣부른 고백에 거절 당해 심란한 마음에 공원 산책이라도 가야겠다고 채비를 하고 나섰다가 생각보다 추워서 포기했던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게다가 더 며칠 전에는 근처에서 또 다른 나체의 여성 시체가 발견됐었기에 더 걱정스러운 사건이었다. 이전에 살던 집을 택한 이유의 팔 할이 공원이었고,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데도 공원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잠 못 드는 새벽에 나가 거닐어도 나와 같이 잠 못 드는 이들이 있고, 불빛이 밝아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시체가 떠오르다니. 호수에서 시체가 나오는 일이 흔한 일인지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해당 사건을 다루지도 않았다. 며칠 후 해당 사건은 타살과 자살의 혐의점이 없는 단순 변사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단순변사라니. 산책로를 이탈해 실족한 걸까. 술에 취해 있었던 걸까. 단순 변사라고만 언급할 뿐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한 커플이 가던 길을 멈춰서 호수를 돌아보며 '와 예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풍경을 담는다. 산책로의 불빛과 호수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 그리고 그 불빛이 반사된 검은 호수는 이 공원의 멋진 야경을 완성시킨다. 이 아름다운 호수가 누군가의 삶을 거두웠다라고 생각하니 잠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러다 죽음이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목격한 첫 번째 죽음에 도달한다. 할아버지는 함께 살던 집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그날의 공기와 장면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거실 소파에 큰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직감적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아차렸다. 평일 오후 시간에 큰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 계실 이유가 그뿐이라는 걸 고작 초등학교 2학년도 알았다. 당시 할아버지는 대장암 판정 후, 워낙 고령이셔서 입원과 수술을 하는 대신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려도 죽음이 드리운 그림자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태어날 때부터 조부모님과 함께 한 집에 살았고 등하교할 때면 늘 안방 문을 열어 인사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날은 어떤지 곧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할머니가 방에 들어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하러 안방에 들어갔다. 이미 염을 마쳤는지 귀에는 하얀 솜이 꽂힌 채 할아버지는 평안한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아침 등교 전 인사드렸을 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살아있을 때도 이미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건지, 육체에는 삶과 죽음의 얼굴이 다르지 않은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음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그 후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장례식장에서 충분히 뜨겁지 않은 정수기의 온수 때문에 불지 않아 딱딱한 사발면을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 묘지에 하관하고 흙을 덮고 평토가 되도록 묘를 다지며 노래 부르는 인부들을 보며 엄청나게 울던 기억. 노잣돈을 관 위로 던지라고 아빠가 손에 쥐어준 동전. (얼마 전 파묘를 보면서도 그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해 여름방학이 지나 학교에 갔을 때 학부모 면담에서 담임선생님은 내가 할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할아버지가 나오시는 꿈이 지금은 기억나진 않지만,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다는 일기를 자주 썼던 것 같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그 자리에서 나는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배를 깔고 누워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미쳐 다 드시지 못해 덩그러니 남아있던 노란 캔에 담긴 검은깨 죽을 볼 때마다 이따금씩 할아버지가 생각났을 뿐이다.
2110 - 2135 홈트레이닝 (복근운동) 크런치 100개/리버스크런치 100개/시티드니업 100개
2135 - 2215 샤워
2220 - 2320 독서 송길영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2320 - 2330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