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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Jul 24. 2024

스물두 번째 로그아웃이자
로그아웃을 그만둔 이유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뒤늦을 기록


(이 글은 6월 15일 시점으로 작성되었으며, 업로드하는 시점에 기록한 추가 내용은 괄호()에 적는다.)


근근이 지키던 사소한 루틴들 마저 무너졌다. (예를 들면 화장실 청소, 스페인어 공부, 스픽 영어회화 등) 그나마 운동이 하루 중 유일한 일과였는데, 클라이밍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일주일 동안 운동(웨이트)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더 뭉개고 있다. (지금은 허리까지 다쳐서 한 달째 제대로 된 운동을 못하고 있다.) 처방받은 약은 다 먹고 다시 병원에 가지 않았더니, 다시 밤낮도 바뀌었다.


1300 설거지

1330 열흘 넘게 밀린 일기 쓰기


1430 갑자기 네모네모 로직

재미도 없는데 시간 버리기 아주 좋다. 생각을 아예 멈춰버리기도 좋다. [힌트]없이 오로지 내 로직(이 필요한가 싶지만)으로만 완성하고 싶다는 오기가 드는 순간 몇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린다. 전날부터 계속 풀다가 막히고, 다시 처음부터 또 하고, 리셋하고 또 하는데도 여전히 완성을 못했다. 어디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 결국에는 어플을 삭제해 버렸다. (다신 깔지 말아야지)


1540 마저 밀린 일기 쓰기 (일기를 쓰다 말고 네모 로직에 빠졌었구나.)

내 일기장은 3년 치 일기장이다. 한 페이지에 3년 치 일기를 쓸 수 있도록 세 칸으로 나뉘어 있다. 일 년을 돌아 이제 모든 첫 번째 칸을 채우고, 이제 두 번째 칸에서 시작한다. 딱 일 년 전에도 나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나를 자책하는 글을 썼다. 여전히 무기력하고, 아니 더 심각한 무기력에 이성적 사고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아 절망스럽다. 일 년 동안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부정적 사고에 갇혀 일 년 전에도 부정적이던 나의 기록을 보며, 여전히 부정적인 나를 마주하는 일은 '역시나'하고 더 절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일기장의 애초 디자인 구성 목표가 이게 아닐 텐데....


1620 오이+닭안심살 샐러드

별다른 재료 없이 오이랑 삶은 닭안심살 그리고 간단한 식초 드레싱만 뿌려서 먹어도 맛이 꽤 괜찮다. (근데 뒤돌아 서면 배가 고프다.)


1730 헬스장 (최대한 허리 쓰지 않고 가슴 운동)

1900 세탁조 청소, 화장실 청소

1930 샤워

2020 청소기 돌리기

2040 가계부 작성

2125 스페인어 공부


2135 - 2240 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내 속에는 늘 똑같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은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가져다주었어.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갈증 때문에 괴로워했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할 거야. 어떤 의미로는 그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p. 308)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는 풍요 속에도 메워지지 않은 태초의 공허와 결핍이 잘 드러난다. 눈에 띄거나 하나씩 짚어가며 나열할 수 있는 결핍이 아니라 내가 늘 왜 하루키 작품에 매료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감각적이라는 표현도 너무나 모호하지만, 풍요로워 보이는 와중에 혼자일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일탈에서 불안정함을 느끼는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감정들을 적확하게 묘사한다. 




사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로그아웃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하루, 하루 중 고작 6시간을 내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그 시간들이 꽤 즐거웠다. 그런데도 고작 그 6시간을 내지 못한 건 정오가 지나 기상해 하루가 늦게 시작한 데다 야구 경기가 주 6일이나 있는 거다. 최근 보기 시작한 야구에 꽤나 진심인데 오후(평일 기준) 6시 30분부터 최소한 세 시간을 야구를 틀어놓다 보니, 빈 시간 찾기가 어려워 하루씩 미루다가 일주일 내내 시간을 내지 못했다. 물론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는데, 그날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들로 생겼다. 주를 거르니 그다음 거르는 쉬웠고, 일주일 중에 비워 시간을 미리 챙겨두던 습관을 아예 잊었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할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스타]-[카카오톡]-[유튜브]를 무한 순환 반복하는데, 제대로 된 일상생활이 맞나 싶을 정도다. 유튜브를 켜놓지 않고서는 밥도 못 먹고, 설거지도 못하고, 샤워도 못한다. '그게 뭐 어때서', '그냥 정적을 깰 소리가 필요한 거잖아'하고 심플하게 여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내가 그러지 못한다는 거다. 식사하는 시간 20분만 켜두는 게 아니라, 그 상태에서 앉은자리에서 20분이 2시간이 되고, 설거지하다가도 다른 영상으로 바꾸느라 고무장갑을 몇 번이나 벗었다 낀다. 샤워하면서 핸드폰은 늘 침수 직전 상태가 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에어팟에서는 뭔가 나오고 있다. 뭘 틀어놓은지도 모르겠다.)


시간 내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전혀 없는 일상 속에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나의 일상을, 나의 자기 통제력을, 그리고 마침내 내 뇌를 잠식했다. 이런 상황에 위급함(?)을 인지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핸드폰으로부터 해방되어 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로그아웃이었는데, 오히려 그 시간을 견뎌내고 핸드폰을 켠 이후에는 여섯 시간 동안 확인하지 못해 쌓인 콘텐츠들을 정신없이 소비하느라 더 오랜 시간을 몰두하는 거 같았다. 일상에 어떤 작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회의감이 든다. 아니 이렇게 핸드폰의 노예로 살기 싫다고!!!


물론 다시 로그아웃 6시간을 당장이라도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이 핸드폰 사용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 보다도, '과제'가 있는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중요할 거 같다. 근본적으로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의 사이클이 변화해야 한다. 다음 로그아웃은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복귀한 이후에 진행해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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