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진 감정 표현이 불러온 토네이도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될까.
사실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도, 남기고 싶지도 않지만, 내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의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해프닝을 기록한다. 해프닝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나에게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 발단
아르헨티나에서 체류하던 2023년 2월 어느 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클럽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를 G라 칭한다. 어느 클럽이든 동양인 여성이 홀로 입장하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사실이다. 다가온 여러 명의 남자 중 G가 있었다. 대부분 거절 의사를 표하면 떠나곤 했다. 그러나 G는 끝까지 떠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줄곧 내 곁에서 춤을 추었다. 그날 밤 G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 날 데이트 신청을 했다. G에게서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데이트를 덜컥 수락해 버렸다. (왜 그랬을까...)
G와 서너 번 더 데이트를 한 어느 날, 그가 나에게 'Mi amor(내 사랑, 자기야)'라 불렀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못 들은 척했다. 'Mi amor'는 연인 사이에 호칭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연인도 아니었고, 나는 이성으로써 호감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G와 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이 없었다. G도 이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호감이 없는 상대와 데이트한 게 내 불찰이라면 그러하다. 어차피 내가 한국을 떠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고, 날 사랑한다는 G에게 "No te amo(난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해 굳이 그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고 안일하게 여겼다. G가 날 사랑하는 이유를 말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G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배웅하기 위해 공항까지 동행했다. 웃으며 돌아서는 나를 향해 G는 손키스를 보낸 후, 왼손은 배에 얹고 오른손으로 한 번 허공을 가르며 살짝 허리를 굽혀 목례했다(무도회식 인사). 그런 식의 인사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탱고의 나라답게 신사다운 인사구나 싶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G를 보며 나도 사실 좀 울컥했다. 해준 것도 없고 좋아한다고 표현한 적도 없는데, 내가 떠나는 게 그에게 슬픈 일이었을까. G가 왜 그토록 아쉬워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4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한국 땅을 밟았고, G에게 짤막하게 "Just arrived in Korea."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에게서 "Maybe in a few years I can say the same!"라는 답신이 왔다. 나는 그 메시지를 가볍게 넘겼다. G가 머나먼 그곳에서 한국에 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간 만나 본 그에게는 (내 편견에 불과하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의 벽이 높아 보였으므로. 나는 그저 평범한 호응으로 "Wow, I can't wait."이라고 답하며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 전개
내가 한국에 온 뒤에도 G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왔다. How are u?, How was your day? 따위의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고 대화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시차도 12시간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할 이유는 내겐 없었기에 늘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대화가 진전되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진을 보내거나,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에는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하길래 어디로 여행을 가냐고 물었더니, '한국이란 나라에 갈 거야, 너 그 나라에 대해 잘 알아?' 하고 농을 치기도 했다. 나는 그 대화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정도 한국행에 대한 생각이 진지해지면서, G는 비자에 관해 질문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구인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때까지도 큰 관심은 없었다. G를 좋아한 적이 없었기에 그가 한국에 와서 무엇을 하든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G의 한국행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2023년 가을, G가 대뜸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것은 2024년 9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었다.
G가 보내온 비행기 티켓을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부러움이었다. 한국에 온 후 취업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자괴감에 빠져가는 나와는 달리, G는 자신의 꿈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일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꽤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윽고 당혹감이 몰려왔다. G가 한국에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그가 온다고? 리턴은 언제냐고 묻자, G는 리턴행은 아직 끊지 않았다고 했다. 동시에 1년간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준비하고 있기에 비자가 승인되면 일 년, 그렇지 않으면 체류 가능 최대 기간인 3개월 동안 지낼 거라 했다. 당혹스러웠지만 최대한 침착해야 했다. G가 나를 보러 온다고 한 게 아니지 않나.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 관심을 가졌고, 경험해 보겠다는 생각은 온전히 그 혼자서 계획하고, 결정한 일 아닌가.
그 이후에도 G는 역시나 종종 한국어를 물어보기도 했고, 틈틈이 비자 준비에 대한 상황을 공유해 줬다. 마침내 G가 비자 발급을 승인받았는데, 그가 비자 발급과 한국에서 취업을 목표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프로그래밍 아카데미 같은 것으로 추정)에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됐다. G의 한국행은 진심이었고, 나는 그의 결단력과 열정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깊은 후회를 느꼈다.
* 위기
G의 비자 승인과 함께 그의 한국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점차 G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G가 나를 보러 한국으로 오는 것이라면,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가 원하는 바를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당시) 한국에 있는 유일한 친구, 가끔 만나서 식사할 수 있는 친구 관계여야 했다. G의 애정 어린 메시지에 전처럼 반응하지 않았고, 그가 한국에 오면 하고 싶은 것들을 열거할 때, 나는 나와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G는 내가 그의 한국행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버럭 화를 냈다.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겠지만, 한국에서의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할 수는 없으며, 친구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라고 명확히 말했다. G는 내게 왜 내 마음이 변했는지 물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우리가 진전된(moving forward) 관계가 아니라고 답했다. 오해를 일으켰다면 미안하다고도 덧붙였다. 너무 늦은 내 심경 고백에 G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그때 G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틀 후 G는 한국에 도착했고 다시금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이렇게 관계를 끝낼 수 없으니 한 번 정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G와 내가 각자 원하는 관계의 형태가 명확히 달랐다. 나는 친구로서의 관계를 원했지만, 그는 더 깊은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G를 마주하기 위해 나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G와의 관계를 떠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와의 관계 문제까지 고착할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G가 한국에 온 지 보름이 지나, 드디어 만나기로 했다. 그와 대면하는 순간, 아르헨티나에서처럼 볼 키스(Beso, 아르헨티나식 인사법)를 할 생각이었지만, 한국이라는 걸 의식했는지 아니면 내가 이별 선언을 했다고 여겼기 때문인지 포옹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직전 대화에서 약간 서로 격해진 채 마무리돼서 어색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저녁식사에서는 G가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친구들도 사귀고, 구직 면접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You are right'이라며 본인의 일방적인 감정만 너무 푸시한 것 같아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G와 1년 6개월 만에 재회였는데, 아르헨티나가 아닌 이곳은 서울이었다. 서울에서는 아르헨티나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이 느껴졌다. 내가 G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시선도 있었지만, 정서적/문화적 차이 간극을 극복하기 쉽지 않겠다는 내 판단을 더욱 확신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G기 친구로서의 선만 잘 지켜준다면, 한국에 지내는 동안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했다.
더불어 G는 나를 위한 거대한 선물 꾸러미를 건넸다. 마테(Mate)티가 먹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티와 티를 마실 수 있는 컵과 빨대, 그리고 아르헨티나 초콜릿과 캐러멜을 잔뜩 챙겨 왔다. 그리고 손수 제작했다는 티셔츠를 가져왔는데 전면에 아르헨티나 지도, 국기와 함께 "아르헨티나스 말비나스"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Argentina's Malvinas'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 같다. 말비나스 지역은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영토 분쟁 지역으로 영국이 실효 지배 중인 포클랜드 제도이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도 말비나스가 아르헨티나 영토라고 설명해 준 그였는데, 이렇게 티셔츠에 한글로 프린트해서 선물로 가져올 줄은 몰랐다. (옷 소재가 좋아 가끔 잠옷으로 입음) 그리고 또 하나의 깜짝 선물은 곧 있을 내 생일까지 열어보지 말라고 연신 당부하며 건넸다. 생일 때까지 절대 열지 말라던 G의 부탁이 무색하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물을 풀어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토토로 인형이 들어있다. 내가 토토로를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 절정
서로 대면하여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G가 사과하고 나의 감정을 존중한다고 하여 나는 친구로 지내는 데 동의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G는 내게 함께 남이섬에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친구로서 동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서울 밖으로 멀리 함께 벗어나고 싶지 않아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G는 내 의사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갑자기 'I love you'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너와 친구 사이로 남고 싶지 않다. 너는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존재다. 나는 우리 관계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네 마음은 변했느냐?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개선할 기회를 달라. 이번 한국행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나는 이미 수차례 내 의사를 밝혔지만, G는 이 관계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는데, 정작 내가 그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뿐이니 그의 안타까운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의 선택이었고 내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내가 재차 거절하자 그는 마침내 한국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며 곧(2-3주 후) 한국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내가 G에게 더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그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한국에서의 기억이 좋았기를, 좋은 경험이었기를, 건강하게 잘 돌아가길 바랐다. "I wish you happiness as well." G에게서 답장이 없었다.
* 결말
G와 끝난 줄 알았지만, 그는 간간히 무의미한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G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날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미 돌아가는 티켓을 끊어 놓은 상태였고, 마지막 배웅까지 하면 정말 확실하게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수락했다. 나를 보러 지구 반 바퀴를 건너온 그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때의 만남도 유쾌하지 않았다. G는 이제 검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졸랐다. G에게 상처 주고 싶진 않았지만, 내 마음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로맨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도 한국으로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진짜로 한국에 왔을 때도 나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다만 내 소극적인 무대응이 너를 오해하게 만든 거였다면 내 잘못도 있지만, 나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내 마음은 여전하며 앞으로도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G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상처받긴 했어도 두 달간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니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다독여 주었다. 또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덧붙여 농담으로 마음에 없는 남자에게 한국에 놀러 오라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우리가 친밀했던 그때(부에노스 아이레스)처럼 다시 되돌아갈 가능성은 늘 열어두라고 했다. (아니, 그런 마음 없다고 결코 네버!!!!!!) 끝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G를 이해시키길 포기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다신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막차 시각에 맞춰 그를 겨우 달래 보내며,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Goodbye Forever'였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날 G가 다시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분명 어제가 마지막이었잖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고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서로 시간 낭비만 할 뿐이기에 연락을 그만하자고 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로도 충분히 상처받았는데 연락마저 끊는 건 두 번 상처 주는 거라며 연락만이라도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을 했다. "더 이상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talk anymore)." 그리고 G가 뭔가 더 얘기하기 전에 차단해 버렸다.
*그 이후
그는 나와의 마지막 만남 일주일 후에 떠났다. (아마도 떠났겠지, 차단해서 소식은 알 수 없다.) 그와의 관계는 마치 끝나지 않는 드라마 같았다. 처음에는 그의 진심에 고마웠고, 나를 만나기 위해 생업도 마다하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그의 열정에 감명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집착은 나에게 큰 정신적 피로를 안겼다. 매일 이어지는 메시지와 만남의 압박은 나를 지치게 했고, 결국 나는 그와의 관계를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쉽고 허무하게 관계가 끝났다.
최근 그가 선물한 초콜릿(아르헨티나 초콜릿과자인 알파호르)의 포장을 뜯었을 때, 하얀 곰팡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이었다. 그 초콜릿을 보며 나는 우리의 관계가 그리고 고마웠던 아르헨티나에서의 추억이 어떻게 이렇게 변질되었는지를 되새겼다. 처음에는 G가 보여준 애정과 열정에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았다. 그의 지나친 집착과 일방적인 애정은 결국 곰팡이로 남아버렸다.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 속에서 느꼈던 작은 즐거움이 곰팡이처럼 썩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제때 내 감정을 고백했더라면 그를 오해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그 점이 미안하다. 앞으로는 누굴 만나든 내 감정을 미루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겠다고 다짐한다. 상대에게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더 큰 상처만 남겼다. 그러나 후회만 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아르헨티나와 한국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는 온전히 평안한 내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삶도 평온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내가 G를 세상 밖으로 꺼내줬다면, 지금의 나를 깨워 줄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우리의 삶은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다고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