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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Aug 19. 2024

[책 리뷰]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도파미네이션(Dopaminenation)>

현재 내 삶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핸드폰 사용을 줄일 수 있을까다. 이 부분은 이미 내가 핸드폰 사용을 줄이려고 일주일에 하루 8시간 동안 핸드폰과 노트북의 전원을 끄고 지내는 '로그아웃'을 스무 차례 진행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이 책을 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우리는 '도파민'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 도파민이 무엇인지, 왜 '쾌락'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직관적인 이해에서 나아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된 과학적 검토, 실증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도파민'을 긍정적인 요소로 사용할 때도 있고,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도 있는 거 같다. 최근 몇몇 기사에 따르면 도파민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SNS의 중독, 쇼츠(Shorts)나 릴스와 같은 숏폼 플랫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도파민에 중독되었다고 썼다. 반면 나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액티비티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면서 여러 차례 시도하던 무브를 성공하거나 완등했을 때의 그 '짜릿함'을 '도파민'으로 치환해 설명하곤 했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도파민이 무엇인지 정의하진 않았지만, 가볍게 '쾌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책에서의 '쾌락'을 보다 더 자극적인 섹스, 마약, 알코올 중독 등으로 예시를 들었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나의 몇 가지 중독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스마트폰 중독'이다. 


중독(Addi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강박적으로 소비/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p.27)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이 문제가 되는 데에는 첫째 비생산적으로 소모하는 시간이 실질적으로 매우 많다는 것. 둘째 비생산적인 시간을 소모했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과 정신적 스트레스. 셋째, 결국에는 해야 할 일들을 매번 미루는 게 된다는 점이다. 나아가서는 SNS에서 보이는 화려한 타인과의 삶과 비교되어 초라한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것도 들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안 세어 봤지만 어쩌면 수 백 번)도 더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이 와중에도 두 번 확인함), 유튜브에 '지속적'으로 접속하는데, 뭔가 보고 싶은 게 있거나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핸드폰이 손에 잡히면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그렇게 행동한다.


설마 이것도 중독인가 싶지만, '클라이밍'에도 적용해 볼까. 누가 봐도 건전한 취미 활동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꽤 위험 활동이다. 허리 디스크가 심각하기에 자칫 활동 중에 다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사도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우려하고, 언젠가 심각한 신체적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늘 인지하지만 차마 그만두질 못하겠다. 게다가 최근에 다시 도진 디스크 통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섣부르게 무리해서 두어 번 운동을 나갔다가 상황만 악화되어 재활기간만 늘렸다. 그럼에도 하루빨리 클라이밍장에 가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과 이렇게 운동을 쉬다가 다신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강박적'으로 든다. 모르긴 몰라도 긍정적이지 않는 '클라이밍 중독' 상태가 맞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속적/강박적으로 어떤 쾌락을 추구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쾌락과 고통이 처리되는 과정에 대립의 메커니즘이 기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뇌에 저울은 평소에는 수평을 이루고, 쾌락을 경험할 때 기울어지는데, 저울은 평형을 유지하려는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요약 p.69-71)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지는 반면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이라 부른다. 즉,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자기 조절 시스템)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라 한다. (p.72)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중략)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p. 87)


언뜻 쾌락이 고통을 동반한다는 걸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쾌락과 고통의 처리 과정에서 작동하는 자기 조정(항상성) 메커니즘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저울은 늘 쾌락 쪽으로만 기우는 게 아니라 고통 쪽으로도 기울 수 있는데, 이때도 고통이 조절 항상성 메커니즘에 의해 쾌락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통이 쾌락으로 바뀐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동 후 러너스 하이를 느꼈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 있다.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이다. (p.181)


우리의 뇌는 쾌락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내성을 갖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통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뇌는 고통 쪽에 내성을 갖게 된다. (p. 200)


생각해 보니 고통이 쾌락을 동반하는 예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면서 스릴을 즐기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겁이 많다. 놀이기구는 바이킹은 엄두도 못 내고 회전목마도 못 탄다. 공포영화도 못 본다. 고스트물뿐만 아니라 범죄물, 심지어 액션 영화도 피가 낭자하면 못 본다. 높은 곳도 견디기 힘들다. 이런 '겁쟁이'인 내가 클라이밍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 놀랐다. 클라이밍 할 때면 겁이 사라지느냐고 묻곤 하지만 결코 아니다. 나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 그리고 지면 내려오기 전까지 모든 순간 떨어질까 무섭고, 다칠까 봐 두렵다. 그 매 순간 두려운 와중에 완등했을 때 느껴지는 보상이 '고통'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제자리를 찾으며 '쾌락'의 감정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게다가 항상성 메커니즘에 따르면, 고통 자극의 크기가 깊을수록 보상으로 얻어지는 쾌락이 커진다. 어렵고 무서운 문제일수록 완등했을 때의 기쁨이 커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부상의 위험도도 비례해서 높아진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도파민) 중독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자기 구속을 해야 한다.


효과적인 자기 구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강력한 강박의 마법 아래 경험하는 자발성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을 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충동을 느낄 때까지 기다린다면 쾌락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욕구가 극심해지면 결정권은 내 손을 떠난다. (p.117)


그렇다, 지금 내 '중독'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문제점으로 받아들이며 자기 구속을 실천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각의 설정값이 높아져 내성이 생긴 후, 욕구가 내 의지를 벗어나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로그오프'를 하려던 시도는 옳았던 게 맞긴 하다. 실패하긴 했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자기 구속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 물리적 전략(공간):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장애물 그 자체를 차단하거나,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몸에 해부학적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을 세이프박스(잠금박스)에 넣어 접근을 제한하거나, 체중 감량을 위한 위절제술 등이 이 전략에 해당된다.)

② 순차적 전략(시간): 일, 주, 월, 연 단위 등으로 기준을 잡아 일정 기간으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시간적 기회를 줄이고 사용에 한계를 두는 방식이다. 또는 시간보다 중요한 사건이나 목표 달성을 기준으로 자신을 구속할 수도 있다. 스스로 정한 결승선을 지날 때야만 보상받는 식으로 설계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앱 사용이 제한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혹은 목표 체지방율에 도달하면, 보상으로 밀가루 탄수화물을 섭취를 허용한다.)

③ 범주적 전략(의미): 도파민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허락하는 하위 유형, 그리고 허락하지 않는 하위 유형을 나누어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을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도 금지하는 방식이다. 허락할 수 있는 행동 목록에 무심코 계기가 되는 요소를 넣으면 범주적 자기 구속은 실패한다. (예를 들면 스포츠도박에 중독되어 있다면, 스포츠 시청/뉴스 구독 자체를 자제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p.77)


우리가 중독에서 벗어나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세상과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 세상이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하며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무언가 부족하더라도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유 있는 사고방식이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약속도 안 지킬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해 믿음을 잃게 된다. 세상은 질서 있거나, 예측 가능하거나, 안전한 곳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 된다. 우리는 경쟁적인 생존 모드로 들어가 장기간의 이득보다 당장의 이득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결핍의 사고방식이다. (p. 235)


물론 나의 사소한(?) 중독들은 개인적인 것이고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행동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비치는 스마트폰 사용만 하더라도 지나친 중독은 현실세계의 인간관계 차단하고, 가족 간의 유대감을 희미하게 한다. 지나친 비약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과 건전한 소비가 원만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서로 간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방식이고, 또다시 건강한 사회는 건강하고 예측가능한 믿음의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 내가 자칫 위험한 도파민에 중독되었을 때, 가족과 사회로부터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니 믿음을 갖게 한다. 


적정량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가 고통에 대한 면역력을 너무 낮추면 도전을 멈추게 되고, 나아가 성취의 쾌락은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즉, 쾌락이든 고통이든 지나치지 않는 수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 저울은 내 의지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저 도파민에 중독된 채 무지성으로 저울이 기우는 대로 움직이게 되는 순간 우리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내 저울은 내 손바닥 안에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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