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날에 떠난 남양 성모성지
마음이 쉬고 싶은 날.
여유가 없는 날이 있다. 무언가 꾸준히 해오던 일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불규칙적으로 나를 찾아오곤 한다.
어떤 특정한 이유도 원인도 모르지만, 아마 그건 날씨 탓도 조금은 섞여 있는 모양이다. 나는 유독 날씨가 흐린 날에는 뭔가 움츠러들고 다운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이 가히 좋지만은 않다.
그렇게 아침에 눈 뜨고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처음에는 멍 때리는 기분, 그냥 쉬는 기분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괜찮아. 하루쯤은 그렇게 보내도..'라고 생각한 때도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점점 마음은 복잡해진다. ' 진짜 왜 이러지? 우울증인가?'
삶의 쉼.
그래,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을 반복해서 느끼다 보면 스스로를 조금 돌아봐야 하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래서 내가 시작한 게 바로 떠남. 여행. 무작정. 걷기였다.
날씨 체크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뭘까?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 잠깐만 휴대폰 좀 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알아보는 것이 바로 '오늘의 날씨'다. 무슨 옷을 입을까? 겨울이면 오늘은 추울까? 여름이면 오늘은 더울까? 비가 올까? 눈이 올까? 등등 무언가 날씨의 체크는 아이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는 창문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날씨에 대한 정보가 다 인 반면, 역시 아이들에게는 휴대폰이 더 일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은 더욱 예민하다. 옷이 젖고 싶지 않음의 표현이겠지만, 그리 꼼꼼히 날씨를 체크해 비 예보가 조금이라도 있는 날이라면 쓰지 않을 것 같은 날씨에도 꼭 우산을 들고나간다.
물론 나가는 길에 "오늘은 비가 안 올 것 같아."라고 해도 엄마보다는 기상청이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참 날씨에 무심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간혹 든다.
나는 그리 날씨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의 준비가 더욱 필요하고 겨울의 추위가 두려울 뿐 날씨에 크게 활동 영역을 연연해하는 타입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흐리면 흐린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날이 좋으면 또 화창한 대로, 꼭 어딘가로 떠나려고 한다. 그게 삶을 쉬는 것인지 나의 고됨을 잊은 채 삶을 살고 싶은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날씨에 따라 나의 여행지를 골라서 떠나는 하루 속 장소의 발견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날씨 흐림
오전 8시 45분. 나름 오늘은 꽤 일찍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고, 집안일도 어느덧 마무리를 했다. 아침마다 틀어두는 나의 최애 라디오 클래식 FM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보는 것도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 오늘은 어디로 가보지?"
매일매일 날씨를 보며 일찍 준비하는 날은 어딜 가보나 고민을 했다. 가기 전에 미리 루트를 짜 놓는 일정도 있지만, 대부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소를 픽해서 곳곳을 다니길 좋아한다.
오늘은 날씨가 꽤나 흐리다. 며칠 걷기를 쉬어 그런지 몸이 흐물 해진 느낌에 기분도 그리 좋지는 않다. 뭔가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그러한 컨디션이 유지가 될 때 나 역시 생기가 드는 편이라 그런지, 운동도 움직임도 조용히 차 안에서만 이동하던 시간이 나와도 맞지 않았나 보다.
집 안에 철썩 붙어 늘어지는 그런 내가 싫어 아침부터 갈 곳을 찾아 버스에 오르기로 했다.
며칠 전 우연히 검색하며 알아낸 ' 남양 성모성지'가 나의 오늘 목적지다. 사실 성지를 그리 찾아가는 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가 만든 장소라 가보기로 했다.
여행은 경치를 보기도 하지만, 그 건축물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안도 다다오를 만나기 위해 원주 한솔뮤지엄을 종종 방문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유명한 화성 가볼 만한 곳으로 손꼽히던 곳이라 듣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곳이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인 줄은 처음 알았다.
그럼 오늘은 마리오 보타의 '남양 성모성지'를 만나러 가보자.
남양성모성지
남양성모성지_마리오보타 건축물
많은 사람들의 검색 여행지로 손꼽히는 '남양성모성지' 사실 왜 그리 사람들이 성지를 찾아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행지로 추천하는지 처음에는 크게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가본 성지는 안성에 위치한 '미리내성지'였는데, 그곳에 처음 주차하고 내린 순간 ' 아! 그래서 왔구나.'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단풍이 지는 가을 무렵에 갔던 안성 미리내성지는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와 함께 넓게 펼쳐지는 잔디와 웅장한 건물의 조화가 정말 새삼 장소의 힘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물론 성지에 대한 의미와 내용을 더 잘 알고 방문해도 좋지만, 종교적인 신념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편하게 방문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성지라는 곳이 천주교 박해를 받은 장소성을 띄는 만큼 그리 기쁜 마음으로 가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크게 마음이 편한 곳은 아니지만, 성지를 떠나보면 그 장소성의 의미와 더불어 편안함을 주는 산속의 조용함이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종종 혼자 있고 싶을 때, 조용히 걷고 싶을 때, 뭔가 마음이 풀리지 않는 엉킴이 있을 때에는 성지를 찾아 가만히 앉아 사람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도 좋다.
정말 우리가 사는 도심은 항상 복잡하고 부딪히고, 여유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항상 나는 더 조용하고 더 깊은 곳을 찾아 하루의 몇 시간쯤은 나를 온전히 풀어넣고 오고 싶은지도 모른다. 남양성모성지는 그리 멀지 않은 도심 외곽에 위치해 버스로 이동하기에도 편하지만, 로사리아 다리를 건너 성지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뭔가 도심의 복잡함과는 단절된 느낌의 차분한 마음이 들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복잡함과 가까운 듯 동떨어진 조용함, 수목이 가득 쌓여 나무속을 걷는 소리,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밋밋하면서도 매번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코 끝의 공기.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편안함의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성지를 찾아 또 떠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도심과 가까워
버스정류장 노선
남양성모성지는 사실 외곽에 위치하기보다는 도심과 연결된 외곽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하게 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장소다. 남양성모성지 앞 버스정류장에 내리게 되면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가 쉬었다. 사실 이렇게 가까이 성지가 있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나 근거리에 내려서 놀랐다. 대부분 도심에서 멀다 보니 버스가 자주 없어 자차를 이용해 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니! 그러니 또 가보고 싶은 욕심이 더 생긴다. 버스로 가는 성지 투어!
남양성모성지 이정표
정류장에 내려 맞은편에 보이는 '남양성모성지' 이정표가 보인다. 그곳을 따라 건너는 로시리아 다리. 아래에는 하천이 흐르는 자연적인 요인도 있지만, 왠지 이런 곳은 속세와의 구별을 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괜한 의미부여인가 하면서도 아래에 흐르는 하천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그렇게 다리를 건너 주차장을 지나면 조용한 남양성모성지 입구를 만난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보이는 저 멀리 서 있는 두 개의 첨탑과 같은 빨간 벽돌의 건물. 바로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성당이었다.
느긋함의 자연
남양성모성지의 풍경
참 걷다 보면 느끼는 자연의 힘이 있다. 그래서 더욱 도심에서 벗어나 나무가 있는 조금은 조용한 공간을 찾아 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뭔가 내가 핫플레이스에 와 있다는 점도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한 곳에 가면 어색함과 불안함 그리고 답답함이 들다 보니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자연 속에 오면 보는 눈이 참 시원하다. 날씨에 따라 그 모습과 색감이 조금 달라 보인다는 점 같은 곳을 또 와도 또 다른 시간과 흐름의 변화가 있어 색다른 여행지의 멋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장점이다.
기도실
심플한 건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안도다다오의 건축도 참 좋아하는 이유인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자연과 깔끔한 건축 그리고 조화, 이 세 가지를 가진 건축을 보면 너무나 매력적이다. 작지만 수직 수평의 선과 대지에 그대로 놓인 형태가 참 매력적인 기도실이었다. 내부에 반짝이는 초가 성지를 찾는 이들의 믿음을 고스란히 만나게 해 준다.
믿음의 공간
기도초
사찰, 성당 등에 가게 되면 믿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여행을 하며 단순히 장소의 멋스러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곳을 다니며 내가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에 생각이 퍼진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는 종교시설 일지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잠시 앉아 그 장소를 알아 가려할 때 종교에 대한 믿음 신념, 나의 생각도 정리해보게 된다.
사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성당과 사찰은 자주 찾는 편이다. 외곽의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고 성지는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물 , 그리고 사찰은 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도 많아서 천천히 돌아보며 자연과 공간, 그리고 종교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또 분위기에 압도당해 차분해지고 마음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 좋다.
건축물 투어
내가 건축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건축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명한 건축가의 중요한 건축요소들에 대한 스터디가 조금 더 되어 있을 뿐 특별히 사람들과 차별해 뭔가 아는 것은 없다. 다만 어떤 부분이 좋고 디테일을 조금 더 열심히 보며, 건물에 나타는 디자인이나 평면과 입면이 조금 더 머릿속에 쉽게 그려진다는 것 외에는 크게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대가의 건물에 가게 되면 정말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한다는 말이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와 디테일도 확실히 깔끔하다. 여기에 평면은 말할 것 없고, 작은 부분에도 신경 쓴 티가 많이 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건축가도 있지만. 마이 뇌피셜상) 마리오보타는 워낙 공부하면서도 많이 알았던 건축가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몇 안 되는 건축가들의 건물이다 보니 건물을 보러 한 번쯤 와보기에도 좋은 장소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붉은 건물, 다른 곳이라면 첨탑이 올랐을 자리에 두 개의 거대한 형태가 멀리 남양성모성지 입구에서부터 그 힘이 느껴진다. 숲길을 따라 마주한 입구에서의 컬러감과 머리 위로 뻗는 사선으로 쌓은 벽돌이 참 매력적인 건물이다.
여기에 높이 감과 폭, 그리고 위에서 내려지는 빛의 공간이 정말 공간의 힘을 가져다준다. 여기에 넓은 공간을 기둥 없이 채우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빛까지 더욱 성당의 힘을 가득 메우는 건물에서의 미사는 참 매력적이다.
자연, 건축, 걷기
여행이라는 것, 잠시 걸으며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주가 되기도 한다. 무언가 보는 걸 위주로 가는 날이 있기도 하고, 혼자서 생각하고 싶은 날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친목을 쌓는 방법이기도 하며,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러 떠나기도 한다.
자연과 건물이 함께 조화로운 장소를 찾아 하루의 쉼터를 찾아 생각이 잠길 수 있다면, 멀리 떠나지 않는 장소에서도 근처에 있는 곳 어디든 나에게는 새로운 여행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종교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잘 꾸며진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변화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도심의 외곽,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보타의 건축물, 자연을 만나게 되는 숲길로 조용히 보고 느끼고 산책하고 싶을 때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