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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by 와니 아빠 지니

나는 가끔 결혼에 대해 생각할 때, 내가 참 운이 좋았다고 느낀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 준 것도, 그로 인해 착한 아들이 생긴 것도 모두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와 결혼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로 탐색할 시간도 없이 결혼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듣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그냥 그랬다. 서로에게 무언가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이라면 잘 살 수 있겠다.” 그런 단순한 믿음이었다. 특별히 화려하거나 감동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무난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느낌 하나로 우리는 결혼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것도 우리가 처음부터 인연이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참 착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잘 챙기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모습이 때로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장모님께서도 그런 성품을 가지셨는데, 아내는 그런 어머니를 꼭 닮았다. 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내 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서, 나에게 필요 없는 것에는 신경을 잘 쓰지 않는다. 이 점이 가끔은 아내와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나는 배가 부르다. 더는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내는 그때도 무언가를 더 챙겨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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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너무 맛있어 보이지 않아? 한 입만 먹어봐.” 이러면서 내 앞에 음식을 놓는다.


처음엔 한두 번 받아들이다가 결국엔 못 참고 짜증을 내게 된다.


“나 안 먹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런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늘 비슷하다.


“와이프가 착해서 그렇게 챙겨주는 건데, 네가 너무한 거 아니야?”


이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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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건 아니라고요.”


사실, 이 말은 내 경험에서 나온 진심이다. 아내는 분명 좋은 의도로 나를 챙겨주는 거지만, 그 결과가 늘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운데, 아내의 호의가 오히려 내게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있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자신의 의도만으로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도 들려준 적이 있다.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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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빠, 착한 게 나쁜 거야?”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니, 착한 건 참 좋은 거지. 하지만 착한 것도 잘해야 착한 거야.”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스토리가 생각이 났다.


“아빠가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 미국의 초등학교에 어떤 선생님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연필을 자꾸 잃어버리는 게 고민이었대. 그래서 학생들이 연필을 소중히 여기도록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지. 다 쓴 몽당연필을 가져오면 10센트를 주겠다고 한 거야. 10 센트면... 130원 정도니까 작긴 하지만... 아이들이 다 쓴 연필을 가져오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연필을 아끼고 소중히 쓸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떻게 됐는데?”


“아이들이 연필깎이를 가지고 연필을 쓰지도 않고 막 깎아대기 시작한 거야.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몽당연필을 만들어서 돈을 받으려고 한 거지.”


아들은 조금 놀란 듯 말했다.


“그럼 선생님은 왜 그런 규칙을 만든 거야?”


“그 선생님도 아이들이 연필을 아끼고 잘 쓰게 하려는 좋은 의도가 있었던 거야.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지. 왜 그랬을까?”


나는 잠시 아들의 반응을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 결과는 나쁘게 나올 수 있어. 착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잘 통하도록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단다.”


아들에게 얘기하면서도 이런 착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생각했다. 앞서 얘기했던 학교에서 지급되던 물품을 마구 사용하던 학생들처럼 말이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정책이나 규제라고 해서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산하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제도’를 살펴보자.


처음 이 제도가 시행된 취지는 분명했다.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은 이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중소기업의 점유율은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국산 콩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콩 생산 농가가 큰 타격을 입었다. 중소기업을 돕자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농가와 전체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급식 시장도 있다. 관공서나 기업 구내식당 운영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막으려는 조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외국계 대형 급식업체가 차지하면서, 국내 중소기업은 그들조차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일부 입찰 조건은 하루 평균 1,500명 이상의 급식 운영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은 소규모 업체들에게는 사실상 문턱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기업의 독점을 막으려 했지만, 해외 자본에 의존하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또 다른 사례로 IT 서비스 산업, 특히 시스템 통합(SI) 분야를 들 수 있다. 한때 정부는 이 분야에서도 대기업을 배제하려 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 중소기업이 들어오면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대기업의 참여를 다시 허용하게 되었다. 이는 규제가 지나치게 의도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물론 우리가 가장 접해 있는 것은 ‘임금’이다. 정부에서 가장 좋은 취지로 진행한 것이 바로 ‘ 최저임금제’다. 최저임금제는 누구나 그 취지에 공감할 만한 제도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의도와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몇 해 전, 정부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도 최저임금제를 적용했다. 당시 월 70~80만 원 수준의 저임금을 받던 경비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일부 경비원들은 임금이 인상되는 혜택을 누렸지만, 모든 곳에서 그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관리비 부담이 늘어난 아파트 단지들은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경비원 수를 줄였다. 심지어 일부 단지는 더 젊고 체력이 좋은 경비원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이가 많거나 상대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는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속출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몇몇 경비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 셈이다.


2025년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어선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2025년 적용 최저임금 시간급 10,030원) 하루 8시간을 일하면 8만 원, 한 달 20일을 일하면 160만 원을 벌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모든 근로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편의점, 음식점, 중소기업 같은 곳에서는 이미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아예 직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편의점은 가족끼리 경영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 아르바이트들은 자리를 못 구해 발만 동동거린다. 직원을 줄인 이들은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인건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자리를 가장 먼저 잃는 사람은 고령자, 비숙련 노동자, 청소년 등 다른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다. 돕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이들이 더 큰 타격을 입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의도가 착했으니 괜찮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경제는 도덕적 명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하면 의도는 선의로 남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공산주의의 실패도 예를 들 수 있다. 함께 잘살아보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체제였지만, 결과는 생산성 감소와 경제 붕괴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인간의 행동과 경제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의도만 앞섰기 때문이다.


와이프의 의도와 나의 짜증을 이야기하다 너무 큰 얘기까지 돌아온 것 같다. 물론 와이프의 의도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 단지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경제학적 진리를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최저임금제나 다른 정책들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의도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로 인한 현실적인 결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좋은 의도는 결과가 좋아야만 그 선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경제 정책이란, 단순히 도덕적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히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개인적 삶에서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 진리를 아들에게도 또 주변 학생들에게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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