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이론, 손실회피
“그래. 결정했어.”
어렸을 때 보았던 TV 프로그램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 안의 '인생극장'이라는 코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예능 코너였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인생극장’은 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갈래 길이 주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하나를 선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길을 모두 가보며, 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직접 경험해 보는 형식이었다.
시청자로서는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저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가정이 실제로 펼쳐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이 이런 예능 프로그램처럼 두 가지 길을 모두 가볼 수 있다면 어땠을까?” 선택의 결과를 미리 경험해 본 후,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선택만을 허락한다. 두 가지 길을 모두 가볼 기회는 없다. 하나의 선택이 곧 하나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누군가 선택의 순간에서 단호히 말하는 장면을 보면 늘 멋지다고 느낀다. 망설임 없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택하는 모습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순간은 생각보다 어렵다. 선택이란 본래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서 고민한다. 무엇이 더 나은지,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직감에 의지하거나, 누군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하나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항상 이 질문은 후회의 씨앗이 된다.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의 결정을 바꾸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외친 대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 돌아갈래!“
하지만 삶은 영화처럼 되돌릴 수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후회는 더 크게 다가온다.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모든 것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 그 갈망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선택과 후회를 경험한다. 시험 점수를 받고 뒤늦게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거나, 용돈을 전부 탕진하고 새로 사고 싶은 것이 생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속상해한다. 가끔은 장난감을 고르지 못해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이 느끼는 선택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
그 갈망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들은 요즘 탭으로 게임하는 데 푹 빠져 있다. 하루 종일 눈앞에서 탭을 놓지 않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쉴 새 없이 두드린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탭을 붙들고 있었고, 엄마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게임만 하다 보면 눈도 나빠지고, 공부는 언제 하겠어?”
엄마가 말했다.
나는 아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게임 좀 그만하고 책이라도 읽는 게 어때? 너 좋아하는 책 많잖아.”
아들은 고개만 끄덕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 더 말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는 화가 났다.
“됐다, 탭은 당분간 못 쓰겠다. 일주일간 금지야.”
아들은 울며 불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지만... 이미 떠나버린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매번 혼나면서 후회를 거듭한다. 여러분도 어렸을 때 그랬을 것이다. 후회하고 다시 하고... 반복을 거듭하면서 깨우치고.. 그게 인생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보자. 어렸을 적 시험 망친날 밤이었다. 꿈속에서 마법사가 나타났다.
“시간은 되돌리지 않지만, 지금의 실패를 바탕으로 다음 시험을 더 잘 준비하는 선택 A.”
“아니면 시간 여행을 통해 시험 전날로 돌아가, 게임 대신 공부를 선택하는 선택 B.”
라고 하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떨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선택 B를 선택할 것이다. 시간 여행으로 과거를 바꿔 실패를 없애겠다는 결정을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득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본능이 훨씬 더 강하다.
이런 심리는 행동경제학의 핵심 이론 중 하나인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제안한 이 이론은, 사람들이 위험을 수반한 선택을 할 때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선택의 결과를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의 변화(이득과 손실)’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전망 이론의 두 가지 핵심 개념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이득과 손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금액이라도 이득보다는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들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같은 1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손실이 이득보다 약 두 배 정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이런 감정의 차이는 이득과 손실이 반복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득의 경우, 처음에는 매우 큰 만족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의 강도는 점차 줄어든다. 예를 들어,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돈이 늘어났을 때는 큰 기쁨을 느끼지만, 1,1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돈이 늘어났을 때는 기쁨의 크기가 훨씬 작아진다. 같은 100만 원이라도, 사람의 심리적인 반응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대로, 손실은 처음부터 강렬한 고통으로 시작하며, 이 고통의 크기는 더 급격하게 커진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잃었을 때도 아프지만, 50만 원, 100만 원으로 손실이 커질수록 느껴지는 타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손실의 감정은 이득의 감정과는 달리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커지기만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주식 시장에서 손절이 어려운 이유다.)
확률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비합리적이다. 낮은 확률의 경우, 실제보다 훨씬 높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복권 당첨처럼 현실적으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과대평가한다. 그리고는 큰 기대를 품는다.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도 “혹시 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것이다.
반대로, 높은 확률은 실제보다 작게 느껴진다. 99%의 성공 확률이 있어도 사람들은 그 1%의 실패 가능성을 크게 받아들인다. 이는 높은 확률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확실성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적 경향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같은 금액이어도 이득과 손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확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이런 심리는 행동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진다.
이제 마법사의 제안으로 돌아가 보자.
대다수는 선택 B, 즉 과거로 돌아가 실패를 없애려는 손실 회피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선택은 사람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강한 동기를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0.5의 확률로 1,000원을 얻거나, 0.5의 확률로 1,000원을 잃는 내기"를 생각해 보자. 이 내기의 ‘기댓값(Expected Value)’은 0이다. 공정한 내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내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000원을 잃는 고통이, 1,000원을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건을 조금 바꿔보자. 이번에는 "0.5의 확률로 1,500원을 얻거나, 0.5의 확률로 1,000원을 잃는 내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기댓값은 250원(1,500×0.5 - 1,000×0.5)으로 여전히 긍정적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내기는 참여할 만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이 내기를 주저한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이득에 대한 기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얻는 금액이 잃는 금액의 2배를 넘어설 때 비로소 내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1,000원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려면 최소 2,000원을 얻을 가능성이 있어야 선택을 고려한다는 뜻이다. 이런 심리가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손실에 과민하게 반응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이 손실 회피는 여실히 드러난다. 주가가 올라 이익이 생기면 사람들은 흔히 빠르게 주식을 팔아 이익을 확정 짓는다. 이득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서둘러 매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주가가 하락했을 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손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주식을 계속 보유하면서, “나중에 다시 오르겠지”라는 희망을 품는다.
이런 행동은 특히 투자한 금액이 적을수록 더 뚜렷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0만 원을 투자해 100만 원 손실이 났다면, 투자자는 손절매(Stop Loss)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반면, 1,000만 원을 투자해 같은 100만 원 손실을 봤을 경우, 손절은 비교적 쉬운 결정이 될 수 있다. 손실 금액은 동일하지만, 전체 투자 규모가 클수록 손실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폭락장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다”라는 말에 현혹된다. 그리고 손실이 나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손실은 더욱 커지고, 결국 더 큰 후회로 이어지곤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손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작은 손실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고, 손절매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때문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큰 손실을 감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심리는 단지 개인 투자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심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택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사람들은 이득을 원하면서도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법사의 선택 A와 B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를 얻을지, 아니면 과거를 바꿔 손실을 없앨지.
그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아. 아들은 후회만 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탭 금지를 외쳤을 때 아들은 울면서 항의했지만,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탭을 치워버린 나는 아들이 화가 나거나 심통을 부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일주일을 잘 견뎠다. 처음 며칠은 게임을 못 한다며 짜증을 냈지만, 조금씩 책을 읽거나 블록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던 날, 아들은 내게 와서 말했다.
“아빠, 탭을 금지시켜 줘서 고마워요. 게임만 하다가 다른 것도 하니까 더 재미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후회만 할 줄 알았던 아들이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약속대로 탭을 다시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은 다시 게임에 빠졌고, 결국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빠, 이번엔 내가 잘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선택은 늘 어렵고, 후회는 쉽게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든 어른이든 후회는 반복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후회 속에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여전히 탭과 씨름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선택의 법칙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