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예 Nov 16. 2024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아: 평생 들을 수 있는 위로

어쩌면 평생 젊을 우리들

 


  우리는 항상 예쁘고 깨끗하고, 좋은 것을 추구한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심리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누군가 우리보다 좋은 여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홀린 듯이 그 사람을 시기한다.     


  이런 당연한 인간의 본성은 환경, 재력을 넘어서 생물학적 나이까지 시기하기 일쑤이다. 어렸을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동생들에게 ‘나 이제 초등학생이야! 책상에 앉아서 수업도 듣는다고!’ 하며 자랑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유치원생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했고, 고학년이 되고선 저학년을 부러워했으며, 중학생이 되고선 초등학생을 부러워했다. 이 굴레는 멈추지 않고 고등학생은 중학생을, 대학생은 고등학생을, 직장인은 대학생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시기 대상이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누군가를 시기한다. 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 이쯤 돼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젊음을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젊음의 기준은 몇 살인가? 아니 애초에 숫자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 만일 숫자로 ‘육체적인’ 젊음의 기준을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그 기준이 이 문제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100년 전만 해도 50살은 이미 먹을 대로 먹은 나이였을 것이고 천년,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30살도 늙음에 속했을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누군가의 젊음을 시기하는 것은 단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젊음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내가 40대이든 50대이든 진심으로 나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뭐라고 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라고 할까? 어쩌면 우리는 평생 젊게 살 수도 있다. 오늘의 내가 나의 남은 인생 중에선 가장 젊은것은 사실이니 그런 오늘을 젊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우습게 생각할 수 있음을 알지만 고등학생인 나는 중학생 동생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이렇게 답해주곤 한다.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하지만 20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이어서 30대는 20대에게... 40대는 30대에게...  



  이처럼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보다 어린 채로 살아갈 것이고, 그 말 뜻은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거의 평생 들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포기할 때 그 이유가 자신의 나이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 


누가 뭐래도 우리는 젊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